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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원작의 힘..... 루인스
ldk209 2008-08-26 오후 7:35:13 2055   [0]
실종된 원작의 힘..... ★★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빼 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폐허/루인스>는 영화 <심플 플랜>의 원작자인 스콧 스미스가 13년 만에 호러 장르로 선보인 두 번째 소설이다. 이 소설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며 매력적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두꺼운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빠져들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일부러 읽는 속도를 조금 늦출 것이다. 종말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물론 이건 내 경험이다. 그만큼 소설을 재밌게 읽었고, 영화에 대한 기대도 컸더랬다. 원작을 둔 영화가 실망을 준 건 한 두 번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감안한다고는 해도 <폐허/루인스>는 원작 소설이 보여준 서서히 조여드는 느낌과 서늘함, 그리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들의 변화하는 세밀한 심리 묘사가 완전 거세된 채 평범한 청년 남녀의 호러물로 탈바꿈해 버렸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의대 입학을 앞둔 제프와 여자 친구 에이미, 그리고 에이미의 친구인 스테이시와 그녀의 남자친구인 에릭, 이 네 명의 미국인들은 멕시코의 휴양지에서 휴가를 만끽하고 있다. 이들은 우연히 독일인 마티어스와 그리스 여행자 파블로를 알게 되고, 인근의 마야문명 고대 유적지 발굴에 참가했다가 사라진 마티어스의 동생 헨리히 찾기에 동참하게 된다. 알려지지 않은 마야 유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마야인들에게 둘러싸인다. 에이미가 사진을 찍기 위해 뒤로 물러서다가 유적지를 덮은 녹색 식물을 밟는 순간, 마야인들은 총과 화살로 이들을 위협하고, 이에 항의하는 파블로를 활로 죽이고는 일행의 탈출을 막는다. 놀란 일행은 텐트가 있는 언덕 위로 피신하고, 이곳에서 이들은 덩굴에 덮인 헨리히의 시체를 발견한다. 마티어스는 지하에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를 듣고는 지하 갱도로 내려가다가 줄이 끊어져 크게 다치고, 구하기 위해 내려가던 스페이시도 뛰어 내리면서 다리를 다친다.

 

하룻밤을 보낸 일행은 아침이 되자 뜻밖의 사태를 맞는다. 언덕을 덮은 덩굴이 마티어스의 하반신과 스페이시의 상처를 뚫고 들어와 있었던 것. 일행의 리더 역할을 하는 제프는 하반신 마비가 된 마티어스의 다리를 잘라내는데, 떨어진 다리를 덩굴이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기겁한다. 이 때 다시 지하에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를 따라 에이미와 스페이시가 지하에 들어가 보지만, 녹색식물에 핀 빨간 꽃이 핸드폰 소리를 내면서 이들을 유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갑작스럽게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일행들의 죽음과 영화의 마지막을 고속 플레이로 보여주듯 후다닥 끝내 버린다. 마치 이미 할 얘기는 다했고 더 할 말은 없다는 듯이.

 

소설이나 영화의 아이디어는 일단 신선하다. 어디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영화 속 식인 식물은 대단히 무서운 번식력과 지능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마야인들이 이 식물의 번식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언덕 주위에 소금 뿌리기와 식물에 접촉한 모든 것들의 반출 금지. 이들은 에이미가 항의하기 위해 던진 식물이 어린 아이의 몸에 닿자 가차 없이 아이를 죽인다. 사람의 상처 등을 통해 몸으로 들어와선 빠른 속도로 사람을 먹어 치우는 이 식인식물은 소리를 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낸 소리를 기억해 뒀다가 필요한 상황에서 활용한다. 핸드폰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말소리도 따라한다. 그리고 덩굴을 손처럼 활용해 물건을 감추거나 끌고 다니기도 한다. 물론, 식인 식물이 나온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무수히 많은 하이틴 공포물의 변종이다. 어떤 식으로든 빠져 나올 수 없는 공간에 밀어 넣고는 무시무시한 존재(여기에선 식인식물)에 의한 공포의 확산 또는 낯선 환경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설정.

 

사실 원작 소설은 공포/호러물이라기보다 심리물로서 더 기능한다. 소설은 미국의 네 젊은이의 시각을 계속 교체해가면서 서서히 공포에 짓이겨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냉철하고 리더십과 생존력이 강한 제프가 공포로 인한 판단 미스로 죽는 과정, 제프의 온정을 기대했다가 외면당한 에이미의 내면, 상처를 입고 서서히 미쳐가는 에릭의 광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스페이시의 마지막. 그리고 파블로의 추락과 하반신 마비에 따른 고통, 독일인 마티어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등의 과정. 그러면서 식인식물이 어떻게 주인공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분열시키며 죽음에 몰아넣는지를 끔찍하게 그린다.

 

그러고 보면 영화는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소설의 각 캐릭터를 이리저리 뒤바꿔 놓고 혼합해 놓았다. 에이미와 스페이시의 캐릭터는 거의 정반대로 뒤바꿔 놓았고(소설에서는 스페이시가 바람기가 다분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소설에선 하반신 마비로 오랫동안 살아남는 파블로를 초반에 언덕 입구에서 바로 죽여 버린다. 그리고는 그 역할을 마티어스가 대행하게 한다. 그리고 다리를 다쳐 미쳐가는 에릭의 캐릭터는 스페이시에게 옮겨 놓고는 독일인의 죽음을 에릭이 대신하게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원작자도 참여했다는 걸 보면, 아마 이렇게 하는 게 영상으로 표현하기에 더 적합했다고 판단한 듯하다.

 

캐릭터가 새롭게 설정된 것이 이 영화의 단점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원작 소설이 주는 서서히 조이는 공포의 느낌과 서늘함을 영화는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영상으로 소설에서 표현한 심리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는 아무래도 힘들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영화에선 식인식물이 대단히 두렵게 그려지지도 않았다. 제프가 마티어스의 다리를 절단하는 장면과 스스로 몸을 절개하면서 덩굴을 찾는 스페이시의 모습은 꽤나 끔찍하고 선연한 이미지를 남기지만, 이것 말고는 특별히 볼거리도 없다. 아무래도 내가 원작 소설을 읽어서 더 그런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관객이 주인공들의 심리를 쫓아 공포를 체감하기엔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리고, 너무 일찍 죽어 버린다. 2008년 4월 첫째 주에 미국에서 개봉한 <폐허/루인스>는 첫 주 2,812개 극장으로부터 주말 3일 동안 800만 불의 저조한 수입을 벌어들이며 흥행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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