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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보다는 원작자에게 경배를...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ldk209 2008-08-26 오후 7:36:17 4613   [14]
감독보다는 원작자에게 경배를... ★★★☆

 

공포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면서도 잔인한 영화는 꺼리는 편이다. <쏘우 시리즈>는 2편까지 봤지만 3편부터 더 잔인해졌다는 평가에 안 봤으며, <한니발 시리즈>는 아예 볼 생각도 안했고, 극장에서 관람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비기닝>은 후회막급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잔인하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MMT :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을 보려고 결심한 건 원작에 대한 짜릿한 기억 때문이었다.

 

공포영화 <헬레이저>의 감독이기도 한 클라이브 바커가 쓴 단편 모음집 <피의 책>은 스티븐 킹이 ‘호러의 미래’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엉터리 영매의 몸에 죽은 자들이 글을 써놨다는 <피의 책>은 일종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데, 그 이후에 나오는 단편은 결국 죽은 자들이 영매의 몸에 쓴 글인 셈이다. 이 단편 모음집에는 일종의 오컬트부터 좀비, 살인마 등 온갖 다양한 공포 장르들이 선보인다. 게다가 스스로 공포영화의 감독을 지낸 경험이 있다 보니 읽다보면 눈앞에 그려지는 영상이 선명히 떠오른다. 이건 그만큼 잔인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꺼려지면서도 왠지 궁금해서 힐끗 쳐다보게 만드는 힘. 무섭다며 이불 속에 들어가서는 눈만 내놓고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 아마도 그게 공포문학, 공포영화 장르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피의 책>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대체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 <로헤드 렉스>, <피그 블러드 블루스> 등이 거론된다. 이 중에서 <로헤드 렉스>는 1986년에 영화로 제작되었고,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이번에 개봉되었으며, <피그 블러드 블루스>는 제작 예정이라고 한다. 괴력을 가진 끔찍한 괴수가 등장해 <MMT>를 능가할 정도로 잔인하게 사람을 헤치는 <로헤드 렉스>는 1986년에 제작된 George Pavlou 감독, David Dukes 주연의 영화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기본적인 시놉시스라든가 스틸 컷 한 장 찾아보기가 어렵다. 일설에 의하면 영화 <로헤드 렉스>에 대한 클라이브 바커의 실망감은 거의 분노에 가까웠다고 하고, 평론가나 관객으로부터는 허접 쓰레기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로헤드 렉스>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이번 <MMT> 제작과정에서 클라이브 바커는 원작자라는 지위를 넘어서서 월권으로 표현될 만큼 깊숙이 관여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영화화하는 경우 소설의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버려지거나 축약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MMT>의 경우는 단편 소설이기 때문에 반대로 장편 영화로 만들기 위해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빈 공간을 창조적으로 채워 넣고 있다. 우선 주인공 레온 카우프만의 직업은 야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밤마다 도시의 추악한 모습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로 변모하였고, 원작에는 없는 여자 친구와 아트 갤러리스트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중년 남성인 마호가니는 겉모습만으로도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살인마 이미지로 재창조되었다. 채식주의자였던 레온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고기를 먹고 거친 섹스를 시도하는 등의 폭력적 변화를 보이는 것으로 묘사한 것도 꽤 흥미로웠다.

 

이 영화는 기대(?)했던 대로 첫 장면부터 잔인함의 미학을 선보인다. 지하철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핏물에 미끄러진 남자의 머리를 강타하는 은빛 망치. 마호가니가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눈알이 튀어나오며 머리가 박살난다. 튀어나온 눈알을 밟고 미끄러지고 잘려진 머리가 자신의 몸통을 바라보는 등 화면은 온통 핏빛으로 물든다. 마호가니는 쓰러진 피해자의 옷과 신발을 벗겨 비닐봉투 안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털을 깎고, 눈알과 손톱 발톱을 뽑는다. 그리고는 마치 도축장에 걸려 있는 소고기처럼 지하철 손잡이에 시체를 거꾸로 매달아 피를 뽑아낸다. 정말 잔인하고 역겨운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마호가니의 움직임은 마치 엄숙한 제의 행위를 치르는 것만 같다.

 

대체 마호가니는 무엇 때문에 매일 밤 뉴욕 지하철에서 끔찍한 도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원작 소설에는 어느 정도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조금 애매하게 처리된 느낌이 있다. 클라이브 바커는 소설에서 뉴욕 내지는 도시를 일종의 유기체, 살아 움직이고 감정이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마호가니는 이 도시를 창조한 아버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숭고한 도살행위를 한다. 이는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도시의 본질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존경 내지는 존중의 의미가 강했던 도살이 영화에서는 비밀의 엄수, 타협이라는 의미가 좀 더 강하게 부각된다. 즉, 도살은 인육을 먹는 존재가 한정된 공간을 벗어났을 때의 혼란과 공포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위라는 의미.

 

독창적인 공포영화인 <REC>는 2007년 영화로 국내에서 개봉이 늦은 것이고, 2008년 영화중엔 뚜렷이 기억에 남거나 성과를 인정받은 공포영화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개봉한 <MMT>는 뛰어난 원작의 존재와 함께 독창적 아이디어로 무장, 특히 하드고어 슬래셔 무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 같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한 동안 고기 먹기가 좀 찝찝해질 듯.

 

※ <MMT>에는 80년대 하이틴 스타 브룩 쉴즈가 간만에 모습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브룩 쉴즈를 스크린에서 보는 게 반가울 지도 모르겠지만, 난 브룩 쉴즈가 나온다는 이유 때문에 이 영화를 봐야 하나 고민을 했다. 왜냐면 브룩 쉴즈가 나온 영화치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브룩 쉴즈는 아주 잠깐만 나온다.

 


(총 0명 참여)
jhee65
좋은 리뷰 입니다. 잘 봤습니다... ^^   
2009-06-2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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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미트 트레인(2008, The Midnight Meat Train)
제작사 : Lakeshore Entertainment, Lionsgate / 배급사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주)누리픽쳐스 / 공식홈페이지 : http://www.mmt2008.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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