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리 삶이 너무 진지한 건 아닌가요???... ★★★☆
바구니에 담겨 성당 문 앞에 버려진 패트릭은 여장 남자, 혹은 여자인 척 하는 남자다. 신부와 사제 숙소의 가정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는 누나의 옷을 입고 양엄마의 화장품을 바르고 한껏 멋을 낸다. 아이들이 전쟁놀이를 할라치면 일찌감치 자살로 놀이에서 빠져 버리고, 학교에 가서는 체육 대신에 가사와 바느질을 대신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패트릭은 친엄마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뒷모습과 배우 미치 게이너를 닮았다는 정보 하나만을 의지해 런던으로 친엄마를 찾으러 떠난다. 영화는 이후 국경 기사대, 밴드, 마술사,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는 패트릭의 사연을 쫓아간다.
어떤 면에서 일종의 로드 무비라고도 할 수 있는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세상과 맞서 싸우는 방식 또는 살아가는 방식으로 가벼움, 유희, 엉뚱함, 곁눈질하기 등도 꽤나 괜찮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영화다. Why so serious? 패트릭은 도대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진지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영국과 아일랜드 분쟁, 성 정체성 등 대단히 무겁고 진지한 문제들이다. 패트릭은 카톨릭 학교에 다니면서도 섹스에 대한 시를 발표한다거나 IRA가 숨겨 놓은 무기를 호수에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무기를 버린 자기를 죽이려는 IRA 대원들에게 ‘왜 이렇게 진지하냐?’며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아 IRA 대원들을 어처구니없게 만들고, 테러 용의자로 몰려 영국 경찰에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사랑해 달라며 매달린다.
그렇게 밝고 유쾌하고 엉뚱한 패트릭이건만 그의 삶은 너무나 기구하다. 아버지를 밝힐 수 없는 아픔이 있고, 외형은 남자지만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여자 인디언 복장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관객의 야유를 받기도 한다. 마술사를 만나 무대 위 보조 출연자로 돈을 벌기도 하고, 테러 피해자이면서도 여장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용의자로 몰려 고문당하고 감금당한다. 그런데도 그는 감옥을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방’이라며 더 묵게 해달라고 경찰들에게 사정한다. 억압을 당하는 당사자가 억압이 아니라고 비껴갈 때 억압자는 당황한다.
그런데 이건 자칫 매우 위험한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태도야 말로 권력자들이 가장 반기는 태도가 아닐까? 억압당하는 자가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고 환상 속에 머무는 것만큼 권력자가 바라는 게 있을까? 그럼에도 가벼움과 유희가 진지한 저항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며, 이건 2008년 대한민국을 돌이켜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물론 대체로 권력자들은 유희를 유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유희적 태도는 그 대상으로 인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가벼움이나 유희가 상황에 따라 정답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게 언제 어디서나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혹시 내가 너무 진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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