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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적응자들의 수다로 푸는 집단 삽질... 미쓰 홍당무
ldk209 2008-10-17 오후 2:12:50 13861   [15]
사회 부적응자들의 수다로 푸는 집단 삽질...★★★★

 

최근 들어와 극장에서 이렇게까지 웃고 즐긴 영화가 있었나 싶다. <우린 액션배우다> 정도? 코미디 영화, 특히 한국 코미디 영화를 신뢰하지 않았던 나에겐 가히 신비한 경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웃었으니깐.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적절한 리듬을 타고 터지는 코믹 코드는 조폭의 이미지만을 소비함으로서 관객의 외면을 받고 있는 한국 코미디 영화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해 줄만하다.

 

영화는 양미숙(공효진)이 어떻게 안면홍조증을 앓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수학여행을 가서 단체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양미숙을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자 양미숙은 점프해 사진 속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카메라는 잔인하게도 점프한 양미숙을 잘라내고 가운데 환하게 웃고 있는 학생들만을 비춘다. 이 때 담임이었던 서종철(이종혁)의 시선은 카메라가 아닌 양미숙에게 향해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많은 게 설명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왕따는 스스로가 주눅 들어 숨어 있기 마련인데, 양미숙은 우악스럽게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잘 보며 주류로 편입되려고 노력하는 인간형은 아니다. “1등에 목맬 바에야 차라리 그냥 목을 매겠다”라거나 “사회는 공평하지 않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는 그녀의 인생관을 잘 대변한다. 거기에 유일하게 양미숙을 향해 있는 서종철의 시선은 그로부터 10년 이상, 양미숙의 오해를 사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양미숙은 온갖 콤플렉스가 집결되어 있는 비호감 캐릭터다. 그녀는 남자의 행동이나 말은 ‘그냥 의미 없이 하는 것’이라며 주위에 조언하지만, 정작 자신은 ‘9시 12분에 보낸 음성메시지를 9시 14분에 확인’한 것이라든가, ‘재재작년 회식 장소’ 또는 ‘재재재작년 티코에서의 접촉’, 심지어 ‘문자 메시지 뒤에 붙은 이모티콘’에도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는 스스로 도취되어 살아간다. 절대로 짝사랑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서종철 선생에 대한 사랑은 예쁜 외모와 친근한 태도로 인기 높은 이유리 교사(황우슬혜)로 인해 위기가 닥친다. 이유리 교사는 고등학교 러시아어 교사였던 양미숙을 중학교 영어교사로 밀려나게 한 원수 같은 존재. 질투에 사로잡힌 양미숙은 서종철의 딸인 중학생 서종희와 연대하여 서종철과 이유리의 관계를 깨기 위해 작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양미숙과 서종희의 작전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작전, 즉 일종의 삽질이라고 할 수 있다. 양미숙은 흔히 우리가 삽질한다고 표현하는 말을 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삽질하는(ㅋㅋㅋ) 성격으로, 어떤 면에서 보면 솔직하다는 장점을 부여할 수도 있는 캐릭터다. 문제는 그것을 뭔가 그럴듯하고 멋지게 포장하는 재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건 서종희도 마찬가지다. 서종희는 같은 반 학생들이 정성들여 만든 리본을 가차 없이 폄하하여 미움을 자초한다. 즉 둘이 왕따 당하는 이유는 외모 때문이 아님에도, 양미숙은 그것을 자신의 안면홍조증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피부과에 다니고 저녁이면 마사지에 좌욕까지, 열심히 자기 몸을 챙긴다. 그러면서 항상 부스스한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회색 외투로 몸매를 덮는다. 그러나 영화 내내 그녀의 안면홍조증을 지적하거나 화제로 올리는 경우는 단 한 차례로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면홍조증은 맘에 있는 생각을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양미숙의 성격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끝난 서종철과 이유리의 관계는 양미숙, 서종희의 삽질로 인해 꼬여만 가고, 결국 서종철의 부인인 성은교(방은진)까지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려고만 하는 서종철(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고, 직접 찾아가 대화를 시도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의 대부분은 어학실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다섯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부분은 짧게 끊어 치는 영화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길게 이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난삽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는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건 사실이다. 여기서 여성들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유치함과 상대에 대한 오해,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집착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향한 삽질 속에서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양미숙, 서종희는 두말할 나위 없고, 캔디 같은 이유리조차 알고 보면 매번 남성들에게 버림 받는 사회 부적응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양미숙과 서종희는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일까? 영화는 일반적인 기대를 비껴간다. 사회는 이들을 끝내 감싸 안지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비호감의 대상일 뿐이고, 이 둘이 펼치는 고도로 난해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학생들의 야유와 밀가루 세례 속에 막을 내린다. 그리고 알고 보면 양미숙의 삽질은 뚜렷한 목적도 없다. ‘4년 동안 유부남을 좋아해서 어떻게 하려고 했냐’는 성은교의 질문에 대답이 고작 ‘바빠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이다. 그래도 이 둘은 좌충우돌 삽질을 거치며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자신감이라는 무기를 획득한다. 그리고는 그 무기를 원천으로 새로운 삽질을 시작한다.

 

※ 이 영화에서 제일 불쌍한 캐릭터는 피부과 의사다. 영화의 처음 부분에서 검은색 화면 뒤로 자신이 왜 안면홍조증을 앓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기피하는 이유 등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양미숙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연하게도 관객은 양미숙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런데 그 상담의 대상자는 피부과 의사 박찬욱(!) 이다. 그 얘기를 왜 하냐는 피부과 의사의 항변에 양미숙은 당당하게 ‘그래야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답변한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자신의 삽질을 소상하게 털어 놓는 양미숙을 피해 피부과 의사는 결국 도망치듯 이사가 버린다. 그러나 양미숙, 서종희, 두 삽질 커플은 끝내 피부과 의사를 찾아낸다.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쉽게 포기도 하지 않는 두 커플의 우악스런 삽질의 대상은 이제 피부과 의사가 되었다. 두 명의 얼굴을 바라보는 의사의 표정은 거의 정신 나간 표정이다.

 

※ 이 영화로 인해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지 않을 러시아 단어 하나를 배웠다. 라이터를 의미하는 ‘좌지깔까’. 실제로 이경미 감독이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외설적 단어를 찾다가 퍼뜩 떠올라 사용했다고 한다. 이유리 선생이 ‘좌지깔까’를 연달아 발음하는 장면에서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공효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대체 공효진이 아니면 양미숙 캐릭터를 어떻게 살려냈을지 도대체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공효진은 완전 양미숙이다. 그리고 공효진을 양 옆에서 보조하는 서우와 황우슬혜도 맞춤옷을 입은 듯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 이 영화에는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어 대사까지 있어서 찾기가 아주 쉽다. 양미숙이 새벽에 다니는 영어 학원의 수강생으로 등장한다. 박찬욱 감독은 자칫 놓치기 쉽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양미숙의 고교 수학여행 사진 촬영에서 모르고 카메라 앞을 지나가려는 행인으로 등장하며, 피부과 의사의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총 1명 참여)
ooyyrr1004
봉준호 감독 까메오 출연 빵빵 터짐 ㅋㅋㅋ   
2010-01-08 23:29
ldk209
공효진의 인터뷰 내용 중에 아는 언니가 이 영화 출연을 위해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전작에서도 워낙 이상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아마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인 듯....   
2008-11-01 10:57
hc0412
혹시 평론가 ???   
2008-10-23 02:17
dbwkck35
ㅋㅋㅋㅋㅋㅋㅋㅋ공효진바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8-10-22 14:53
1


미쓰 홍당무(2008)
제작사 : (주)모호필름 / 배급사 :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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