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적 결혼의 억압에 짓눌리는 신여성... ★★★
연애 없는 결혼, 그리고 아들을 낳아 가문을 잇게 하는 것이 여성에게 주어진 최고의 미덕인 시대, 그런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여성이 당하는 고통은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선 풍경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 더 익숙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남아 선호사상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아, 서구에서도 저런 시기가 있었구나’하는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공작부인 : 세기의 스캔들>은 18세기 영국, 만인이 우러러보는 화려한 삶을 즐겼던 데본셔 가문의 공작부인 조지아나의 삶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사망한 다이아나 왕세자비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공작부인>은 우선 18세기 당시 영국 상류층의 충실한 재현을 통한 화려함으로 인해 시각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촘촘한 내러티브에 의한 드라마적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거기에 연기자들, 특히 조지아나(왠지 이름도 다이아나 느낌이 난다)를 연기한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데본셔 공작(랄프 파인즈)이 생각하는 결혼이란 아들을 낳아 가문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인과의 섹스도 2세를 임신하기 위한 동물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전희와 애무가 생략된 단지 삽입만이 존재하는 섹스, 그래서 조지아나가 경험한 섹스는 고통, 불쾌함과 동일한 의미다. 데본셔 공작은 다른 여자들과의 외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사전 협의도 없이 밖에서 낳은 딸을 데리고 들어와 키우라고 하며, 심지어 조지아나의 유일한 친구인 베스(헤일리 앳웰)마저 자신의 여자로 만든다. 그런 남편의 만행에 절망한 조지아나의 작은 저항조차 시대는 수용하지 못한다. 조지아나의 어머니는 시골에 내려온 조지아나에게 말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을 낳도록 노력해라’ 조지아나는 결국 남편, 베스와 함께 기이한 동거 생활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 셋이서 긴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장면은 묘하게 그로테스크하다) 자신이 남편과 베스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처럼 자신의 찰스에 대한 감정도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당연하게도 폭력적으로 거부당한다. 결국 아들을 낳은 조지아나는 열정적인 외부 생활과 기이한 동거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의 영화가 그러하듯 조지아나도 시대에서 요구되는 여성으로서의 지위보다 조금은 열린 사고방식, 즉 신여성이라는 위치로 인해 더욱 고통 받는 존재로 묘사된다. 조지아나는 명랑하고 쾌활하며 활동적인 여성이다. 후원은 하지만, 어울리지 않으려는 데본셔 공작과 달리 조지아나는 상대적으로 친자유와 친서민적인 휘그당(자유당 전신)의 정책에 공감하며 활발한 정치활동을 병행한다. 역설적이게도 토리당(보수당 전신)에 비해 진보적이었던 휘그당을 지원하는 데본셔 공작이 가지고 있는 가문이나 아내에 대한 인식을 보면 당시 영국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영화 <공작부인>는 전적으로 조지아나, 즉 키이라 나이틀리의 영화이다. 이 영화가 당시 시대상을 잘 조명하고, 긴장과 잔잔한 재미를 주는 이야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 - 희망과 절망,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어머니로서의 모성애, 집안에서 남편을 내조해야 하는 아내라는 위치와 외부에서의 활발한 정치 활동,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남편의 정부에 대한 증오 등 상반되는 감정들을 표현하는 - 는 그녀를 비슷한 동년배의 여배우들 중 연기력면에서 독보적으로 두드러지게 한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 약 5분의 라스트신은 영화의 가치를 50%는 깎아 먹고 있어 아쉽다. 취향 차이일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조화롭게 평생 잘 살았다는 식의 디즈니 영화스러운 결론은 어찌보면 당시 영국 상류층의 현실일지는 모르지만, 못내 실망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조지아나와 찰스 그레이가 파티장에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수준의 열린 결말로 마무리를 짓는 게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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