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버라이어티 “패밀리가떴다” 미공개 영상에서 김수로는 갯벌 바닥에 앉아 이젠 영화를 안 찍겠노라며 울부짖었다. 그 때 멤버들이 심심치 않은 위로를 해줬는데, 개인적으로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고 싶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현재도 네이버 영화평점에서 9점대를 유지하고 있다. 극단적인 사이트 특성이 있다지만 참여자가 수 천 명인 걸 감안할 때, 평점알바라든지 팬덤문화라든지 10대위주라든지의 핑계를 대기에는 어느 정도 9점 이상 평점 영화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연휴나 추석연휴는 한국 최대명절이면서 극장가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즉 연휴특수를 타는 영화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한국영화고 그 중에서도 코미디영화였다. 그런데 [울학교이티]는 개봉 전부터 불안불안하더니 박스오피스 결과는 암담했다. [신기전]과 [맘마미아]의 뒷심에 밀려 상위권 진입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같이 개봉한 복병 [영화는영화다]한테까지 계속 밀린데다가 개봉한지 한 달도 채 못 되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불운을 맞이해야만 했다. 결국 대박흥행은커녕 100만도 넘기지 못했다. 어찌 보면 [과속스캔들]도 이렇게 조용히 스러질 수도 있었고, [울학교이티]가 예상 밖의 흥행을 할 수도 있는 영화적 성격이 분명 있다. 역시 영화의 흥행은 한 가지 기준만으로 장담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분명 운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 같다. 작은 영화나 작품성 위주의 영화들의 흥행실패는 차치물론하고, 상업영화 중에서도 평과 흥행이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2006년엔 [타짜], 2007년엔 [사랑]) [조폭마누라]로 시작돼 [가문의영광] [오!브라더스] [귀신이산다]를 거쳐 [가문의위기]로 이어졌던 ‘추석에는 5자 제목의 코미디영화가 1위’라는 공식을 다시 한 번 재현하겠다는 의미로 제목도 [울학교이티]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그 공식이 징크스가 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 [원스어폰어타임]으로 지난 설연휴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배급의 신흥강자로 떠올랐던 SK텔레콤(주)이 또 한 번 야심차게 준비한 [울학교이티]인데, 이번엔 쓴 맛을 보게 됐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재밌는 사실이다.
이번 설연휴를 노리는 [유감스러운도시], 이미 시사회 및 선입견으로 인해 평이 바닥을 치고 있다. 이미 깨져버린 연휴특수를 노리려는 심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궁금하다. 한국극장가가 불황이다. 게다가 우려먹는 것 싫어하고 조폭코미디에 질려 버린 한국관객들에게 얼마나 다른 요소로 어필할 수 있을지 의뭉을 떨어본다.
무엇보다 학원물이라 하면 영화라는 걸 떠나서 10대 위주의 유치찬란함으로 무장했다는 미명으로 인해 선입견을 갖고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간혹 너무 10대들의 폭력적인 면이나 방황, 비행만을 그리면서 일명 겉멋(!)과 X폼(!)을 잡는 영화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만든 학원물은 오히려 20, 30대 혹은 그 이상의 세대 공감을 어느 정도 아우를 수도 있으리라. 그네들도 학창시절이 없었겠는가! 물론 있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분명 소통 가능한 정서는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울학교이티]는 보기보다 아우름에 있어서 꽤 성공한 케이스로 비춰진다. 다소 튀거나 부조화와 불균형이 허다한 학원물에 비해 진득하게 러닝타임을 밀고 나간다. 코미디 영화치고는 다소 긴 2시간이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고자 했기 때문에 충분한 상영시간은 학원물 특유의 얄팍함을 피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아 좋았다. 다채로운 소재적 요소를 잘 살린 [울학교이티]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학원물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치부하는 바이다.
[울학교이티]를 보면서 여러모로 다르긴 하지만 또 꽤 비슷한 구석이 많아 향수어린 만화시리즈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굿모닝티처”(서영웅著)다. 10년이 넘게 흐른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청소년기 감수성을 자극한 만화다. 긴 시리즈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학교생활 속의 소소한 담론이 넘쳐나는 만화였다. 당시 유행하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학원액션로망을 피했다는 점도 훈훈하게 다가왔다. [울학교이티]를 보면서 잊고 있었던 이 만화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참 고맙다.
[울학교이티]가 최근 뒤늦게 회자되고 있는데, 최근 폭발적인 뒷심을 발휘하며 예상치 못한 엄청난 흥행을 하고 있는 [과속스캔들]의 박보영과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으로 5회 만에 25%를 꿰찬 TV드라마 “꽃보다남자”의 이민호가 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두 작품과도 [울학교이티]는 닮은 구석이 있다. “꽃보다남자”처럼 학원물이고 신예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나 어찌 보면 [울학교이티]도 [과속스캔들]처럼 흥행 롱런할 요소를 비슷하게 갖추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흥행실패가 의외고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는 떠오르는 신예들이 즐비하여 풋풋함을 더해주는데, 박보영과 이민호와 더불어 아역 출신 백성현 그리고 TV드라마 “바람의화원”에서 문근영과 로맨스를 펼친 문채원도 등장한다. 먹통으로 나오는 김기방은 [과속스캔들]에서 PD역으로 박보영과 함께 공연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꽃보다남자”에서는 구혜선이 일하는 죽집 주인으로 이민호와도 같은 작품에 출연중이다. 그밖에 김수로의 첫사랑으로 나오는 오연서도 근래에 [여고괴담5] 주인공으로 낙점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울학교이티]는 풋풋한 신예들과 농익은 감초들의 조화가 영화의 재미를 살려주고 있는데, 가장 큰 공치사가 필요한 분은 아무래도 이한위다. 언제나 어떤 작품에서든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주지만 이번에도 역시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교장 이한위와 부부사이로 등장하는 이사장 김성령도 까칠하지만 둘의 관계와 캐릭터가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그밖에 김수로의 체육관 친구는 물론 간사하고 재수 없는 영어선생역의 김형범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도 존재감을 발휘해 주었다. 또한 몇몇 까메오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한민국의 개탄스러운 교육현실이야 어디 하루 이틀이랴. [말죽거리잔혹사]에서 70년대 후반 교육계를 비틀면서 권상우는 쌍절곤을 휘두르며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라는 명대사로 21세기 점점 곪아가는 교육계에 뺨따귀를 후려갈긴다. 물론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잔혹사]는 당시 유신정권과 사회전반의 폭압성에 대한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그 본질이 달라졌겠는가. 모양만 바뀌었을 뿐이지 보이지 않는 폭압으로 인해 21세기 대한민국 교육현실은 흔들리고 있다. 언제나 교육은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정부패와 폐단을 피할 수가 없나보다.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교육정책은 꾸준히 역기능을 낳고 있고 그 아래서 더욱 세차게 꺾이며 고통 받는 것은 학생들이다. 그러다보니 입시위주의 학교현실에 학생들조차 세뇌당하여 어른들의 잇속을 따라 학업의 순수성을 변질시키게 되는 것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결국 모두 흐려져 악순환이 반복될까 두렵지만 이미 명징하게 정화되기에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어 공개수업을 멋지게 마치고 박수갈채를 받은 체육선생 출신 ET는 아이들의 수업 후 인터뷰를 보며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은 유능한 영어선생을 원했던 것이다. 아니 세상이 원했던 것이다. 열심히 잘 가르치고 선생님다운 선생님 보다는 자신들의 수능점수를 한 점이라도 올려주고 좋은 대학에 보내주는 입시강사가 더 절실해 보였다. 결국 훌륭한 선생님은 학원스타강사라는 것이 안타깝게 만들었다.
감독의 의도 같아 보였지만 시종일관 등장하는 학교는 빌딩숲에 둘러싸여 그 교정의 자태가 너무도 외롭고 초라해 보였다. 실제로 도시의 학교 중에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도 있단다. 체육이라는 과목을 터부시하는 것에 있어서 단순히 반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학교가 네모반듯한 건물에 네모반듯한 책상에만 앉아 네모반듯한 칠판과 책만을 번갈아 쳐다봐야하는 곳이라는 것이 너무도 서글펐다. 엔딩에 나오는 드넓은 하늘 아래 확 트인 경관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학교의 모습은 그야말로 배움의 터전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앞의 교정과 사뭇 달라 보였다. 솔직히 신식 학교가 뭐 그리 크게 다르겠는가, 그만큼 다가오는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영화는 작위적인 해결책조차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소 씁쓸함이 있지만 그래도 희망과 정화의 결말로 해피엔딩 된다. 아쉬운 것은 실제 현실은 이런 희망조차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웠다. 힘들겠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교육현실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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