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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인터뷰 게임... 프로스트 vs 닉슨
ldk209 2009-03-12 오후 5:48:56 1079   [1]
흥미진진한 인터뷰 게임... ★★★☆

 

기본적인 줄거리는 간단하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대통령 역사상 최초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프랭크 란젤라). 그러나 그는 국민에게 최소한의 사과와 자신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물러난다. 1974년 그의 사임장면 생방송이 엄청난 시청률을 올리자, 한물간 토크쇼 MC 데이빗 프로스트(마이클 신)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시하며 닉슨에게 인터뷰를 제의한다. 프로스트는 뉴욕의 방송가로 복귀하기 위해 닉슨과의 인터뷰를 추진하는 것이었고, 닉슨 역시 풋내기로 보이는 프로스트를 제압하면서 정치계로 복귀하기 위해 인터뷰를 승낙한다. 1977년, 드디어 4일간의 역사적인 인터뷰가 시작된다.

 

줄거리도 간단하거니와 이야기의 결말인 프로스트 대 닉슨의 인터뷰 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리라는 것도 뻔하다. 그럼에도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은 촘촘한 구성과 절묘한 대사, 클로즈업된 배우들의 표정과 적절히 편집된 속도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후반부 4일 동안의 인터뷰 장면은 매우 정적인 장면임에도 집중도는 높아진다. 굉장히 재밌는 <100분 토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많은 미국 영화들이 그린 닉슨 전 대통령의 모습은 대게 정치적 음모의 차원에서였다. <프로스트 vs 닉슨>도 큰 틀에서는 악당, 악역으로서의 닉슨이지만, 그 내면의 인간적 면모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영화들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닉슨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이라는 오명을 쓰고는 있지만, <프로스트 vs 닉슨>에서의 닉슨은 풍부한 유머감각과 재치를 지니고 있으며 큰 풍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한 매력적 정치인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심약한 면모를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TV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여기엔 엄청날 정도의 콤플렉스와 열등감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닉슨은 술에 취한 채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열등감을 극적으로 표출한다. 닉슨의 전화는 닉슨의 무게감과 노련미에 눌리던 프로스트가 닉슨 역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며, 해볼 만한 상대(?)라고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영화로만 보면, 닉슨의 강한 권력욕과 의심은 열등감의 소산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이런 닉슨의 인간적 면모가 그의 죄과를 덮어주거나 옹호해주는 것으로 활용되어선 곤란할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나라의 전두환도 리더십 강하고 유머감각 뛰어난 매력적 인간임을 그의 주위 사람들이 여러 차례 증언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죄악을 덮어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 인물이 가지는 개인적 매력과 특정 직책에서 행하는 행위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선 <프로스트 vs 닉슨>은 정치영화라기보다는 TV시대에 대한 일종의 소묘로 보인다. 닉슨은 자신과 케네디의 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유권자는 자신의 승리라고 인정했지만, TV로 본 유권자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이건 무슨 말일까? TV 시대에 들어오면서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정치도 컨텐츠가 아니라 이미지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프로스트의 공세에 당황한 닉슨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된 순간, 닉슨 진영에선 한숨이, 프로스트 진영에선 환호가 터져 나온다. 전반적으론 닉슨이 인터뷰를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 장면으로 승패는 결정 난 것이다. 이게 바로 TV 시대를 증언하는 극적인 순간이다.

 

한편,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영화는 <미스트>다. 혹평을 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나는 <미스트>가 대단히 복잡하고 다층적, 다면적 해석이 가능한 걸작 영화라고 본다. 여러 해석 중 하나는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으며, 심지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미스트>에서 주인공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은 매번 최악의 결과를 동반한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반대로 그다지 좋지 않은 의도(나쁜 의도는 아니다)가 좋은 결과,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말한다. 그러니깐 프로스트가 대단한 신념과 정의감으로 닉슨과의 인터뷰를 추진한 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는 전적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인터뷰를 추진했으며, 심지어 닉슨의 사과를 받아내려는 마음조차 없었고, 단지 팀에 필요한 팀원의 강력한 요구를 수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프로스트의 이런 점이야말로 대단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면모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한다. 개인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사회적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걸 강조하게 되면 마치 강요받는 것 같아서 좀 불편해지고 거북해진다. 그래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보곤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는 동의했지만,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강요받는 느낌 때문이었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선 그토록 굳센 결의가 필요한 가 싶은 불편함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 특히 프랭크 란젤라의 뛰어난 연기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쉽게 동화되지 못했다. 감동도 없었고, 아무튼 좀 이상했다. 긴장이 서서히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승전결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생뚱맞게 툭 튀어나온 듯한 느낌. 이건 결론을 미리 써놓고 (그건 역사적인 사실이니깐) 거기에 맞춰 인터뷰를 하다 인터뷰 시간이 거의 끝나가자 급작스럽게 결론을 말하고 광고로 넘어가는 듯한 찝찝함 같은 것. 거기에 닉슨은 한국 정치인에 비하면 너무 순진했다. 그 정도 가지고 자신의 범법 행위를 인정하다니. '기억나지 않는다', '오해다' - 이 두 가지 문장만으로도 수많은 가시밭길(?)을 헤쳐가는 우리네 정치인들이 보면 웃을 일이다. 어쨌거나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트 vs 닉슨>이 분명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인터뷰 게임의 생중계임은 분명하다.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26 17:04
powerkwd
잘 읽고 갑니다 ^^   
2009-05-28 13: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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