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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함으로 뒤덮은 부실함.. 실종
ldk209 2009-03-24 오후 5:48:38 1372   [0]
잔인함으로 뒤덮은 부실함.. ★★


<실종>은 감춰 놓은 패가 없다. 그러니깐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긴 하지만 두뇌게임이라든가 스포일러 같은 거하곤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연쇄살인범인 판곤(문성근)의 정체를 감추지도 않고, 판곤의 집의 위치라든가 현정(추자현) 현아(전세홍) 자매가 숨겨져 있는 창고의 위치도 상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납치 과정과 현아에게 가해지는 각종 고문도 세밀히 재현한다. 시간도 건너뜀이나 플레시백 없이 정상적인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


시놉시스도 간단하다. 판곤은 닭백숙을 먹기 위해 들른 현아를 납치해 온갖 성폭행과 고문 끝에 죽이고, 실종된 동생의 흔적을 찾아 온 현정도 납치해 끔찍한 죽음의 게임을 벌인다.


전남 보성에서 발생한 어부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실종>은 일단 너무 잔인하다. 잔인한 면으로만 보자면 일종의 고문 영화로 여겨질 정도다. 칼과 도끼로 머리를 찍어 죽이고, 살아 있는 사람의 생니를 뽑으며, 사람을 분쇄기에 갈아 죽여 닭 모이로 사용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런 잔인함 외에 볼만한 게 있다거나 별다르게 평가할 만한 무엇인가를 찾기 힘들다. 워낙 출중한 배우인 문성근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내는 걸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우선 <실종>의 등장인물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전형적이다. 현아, 영화감독, 동네 사람들, 개장수, 경찰, 그리고 사건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다방레지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캐릭터 상의 묘사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전형적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대화 같지 않고 미리 예정된 말을 그냥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다방레지는 이 영화가 유지되는 가장 중요한 배역이다. 얼마나 열심히 커피 배달을 다니는지 다방레지의 눈에 모든 상황이 다 체크가 된다. 이 도시에 다른 다방레지는 없다. 다방레지는 우연히(!) 길에서 현아를 보고, 찾으러 온 언니 현정과 우연히(!) 길에서 만나 그 얘기를 해 준다. 우연히(!) 현정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파출소에 차 배달을 갔다가 경찰들의 말을 우연히(!) 듣고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전해준다. 너무 중요한 역할을 연이어 하는 걸 보고 난 혹시 이 다방레지가 마지막에 현정을 구해내는 건 아닌가 했을 정도다.


그리고 현정이 판곤을 왜 의심하게 됐는지도 아리송하다. 동생을 찾으러 다니는 현정에게 다방레지는 동생을 개장수 집 근처에서 봤다며, 그 개장수는 이상한 놈,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해댄다. 당연히 개장수가 의심이 가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고는 현정은 파출소에서 판곤이 의심스럽다며 조사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대체 왜???? 혹시 내가 영화를 보다가 잠깐 졸거나 해서 놓친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실종>을 보면서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면 이건 분명 연출과 편집의 문제다. 물론 잔인한 장면으로 인한 긴장감은 빼고 말이다. 대표적으로 침대 위에 꽁꽁 사지가 묶인 현정이 줄을 푸는 장면은 아무런 설명 없이 결과로만 주어진다.(어떻게 풀었을까???) 이 장면을 좀 더 다듬었다면 충분히 긴장감을 높일 수 있었음에도 허투루 낭비해 버린다. 즉, 긴장감을 높일 좋은 장면들은 놓쳐 버리고선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여기저기 잔인한 장면을 심어 놓았다. 당연히 아주 징그럽고 잔인한 장면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움츠러들거나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런 식으로(!) 얻어지는 긴장감이라면 이건 스릴러가 아니라 고문 영화라고 칭해야 마땅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문성근의 연기를 보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엔딩 장면(이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어부 연쇄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을 포함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 어민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면에서(친족 살해, 아내 실종, 개 사육, 범죄에 사용된 차량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몰고 가 버리는 등의) 강호순이 연상된다. 강호순 사건이 터지기 전에 영화를 완성했다고 하니 김성홍 감독의 뛰어난 예지력은 칭송해야 마땅할 것 같다.


※ 사람을 분쇄기에 갈아 닭 모이로 준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김형욱 사건과 관련한 증언을 참고한 듯싶다. 박정희 정권에서 막강한 2인자로 군림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자 미국으로 도피, 박정희와 유신정권을 비판하고 김경재 전 국회의원(15, 16대)에게 회고록을 집필토록 한다. 1979년 10월 7일 김형욱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볼 때 김형욱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직접 지시인지 아니면 암묵적 동의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에 따라 중앙정보부가 납치해 죽인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일부의 증언을 보면,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김형욱을 파리 인근으로 납치, 분쇄기에 갈아 닭 모이로 주었다고 한다.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25 16:57
powerkwd
기회되면 볼께용~   
2009-05-27 22:3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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