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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산다는 것 또는 올바르게 산다는 것....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ldk209 2009-03-30 오후 5:14:31 1773   [4]
성실하게 산다는 것 또는 올바르게 산다는 것.... ★★★★


10대 중반의 소년 마이클(데이빗 크로스, 성년 마이클은 랄프 파인즈)은 비가 쏟아지는 귀가 길에 열병으로 심하게 토한다. 30대 중반의 여인 한나(케이트 윈슬렛)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 마이클은 3개월 뒤 감사를 표하러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둘의 만남은 언제나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고, 목욕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순서로 진행된다. 책 낭독은 사랑을 나누기 전에 치루는 일종의 의식행위와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아무런 말없이 사라진다. 세월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을 다루는 재판정에서 피고인 신분이 된 한나를 다시 만난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는 한 편의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읽을 수 있다. 어쩌면 평생에 걸쳐 사랑한 단 한 명의 여자였을 한나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 그 여자에 대한 애증의 감정들.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던 마이클의 눈앞에 살짝 모습을 보이고 사라진 한나. 마이클은 한나와의 관계를 친구들에게 숨겨 왔고, 한 때는 100%였던 한나의 비중은 서서히 줄어들어 그 빈자리는 친구 또는 여자친구의 몫이 되었다.


때문에 마이클은 한나가 떠난 이유를 자신의 배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의 짐이 되었던 여성이 나치의 전범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배신에 대한 감정과 한나가 준 배신감이라는 양 감정에서 느껴지는 혼란들. 다시 만났을 때, 둘은 서로 다른 과거를 이야기한다. 둘이 가장 좋았던 한 때를 얘기하는 한나와 수용소의 철저한 감시원으로서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마이클. 이러한 차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온다.


한나(케이트 윈슬렛)가 문맹이라는 사실이 스포일러일까? 만약 이 영화가 한나의 문맹을 중심으로 한 추리 또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스포일러였겠지만, 영화가 그다지 이 사실을 숨기는 것으로 보긴 힘들다.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영화의 중반 정도에 재판정에 앉아 있던 마이클(데이빗 크로스)의 깨달음으로 공식화되는데, 초반의 몇 장면은 한나가 문맹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그것을 알아채는 게 그리 어려운 미션은 아니다. 그러니깐 둘의 자전거 여행길에서 메뉴판을 들고 당황해하며 마이클에게 선택을 넘기는 장면이라든가 버스 차장 일을 잘했다며 사무직 승진을 제안하자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들.


그런데, 이 영화를 단지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보기에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는 매우 복잡하고 의미심장하다. 재판 과정을 돌이켜보자. 한나는 몰아붙이는 판사에게 당당하게(?) 응수한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했나요? 취직하지 말아야 했다는 말인가요?” 한나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매우 미묘한 존재였음에 분명하다. 수용소에서 한나는 아픈 유대인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그들을 돌보았으며, 고된 일에서 제외시켜주었고, 대신 그들은 밤에 한나를 위해 책을 읽어주면 되었다. 그렇지만 한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로 유대인을 보내는 일에도 철두철미했다. 한나는 말한다. “10명이 새로 들어오면 10명이 나가야합니다. 수용할 장소가 부족합니다.” 또 말한다. “문을 열어주면 그 혼란은 누가 책임집니까? 죄수들이 도망칠 수 있습니다”


언뜻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한나의 행동을 꿰뚫고 있는 원칙이 하나 있다면 그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다. 한나가 죄수들을 돌본 것도 불에 타는 교회의 문을 열지 않은 것도 감시원으로서의 직책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과연 성실하게 산 것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대학살 또는 우리로 치면 친일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더 리더>는 극단적 예이긴 하지만, 성실하게 산 것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즉, 성실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올바르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나는 단지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힘없는 개인일 뿐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는, 자신의 책임을 더 높은 누군가에게로 전가하려는 자들이 주도한다면, 이건 불순하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일까? 최소한 한나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자기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의 희생을 아파했다.(는 건 명백하다) (원작 소설에선 한나가 글을 배운 후 교도소 측에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자료를 요청, 탐독했다고 나와 있다.)


※ 영화는 일부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원작 소설의 거의 대부분을 가져왔다. 영화에서도 시선은 마이클의 것인데, 원작 소설은 더 철저하게 마이클의 것이다. 예를 들면, 한나가 교도소에서 문자를 깨우치는 장면은 원작소설에서는 마이클이 교도소장으로부터 듣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쨌거나 한나는 마이클의 시선에 의한 객체로서 존재하는 데, 오히려 이런 점 - 객체로서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 때문에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더 돋보인 것 같다. 한 후배는 평소 케이트 윈슬렛의 ‘주는 것 없이 싫다’며 무조건 미워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선 ‘케이트 윈슬렛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그 동안 안 봤던 그녀의 기존 출연작들을 챙겨보기 시작했다.


※ 그깟 글 좀 못 읽는다는 걸 얘기하기 싫어, 대신 징역, 그것도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치부가 있을 수 있다. 한나에게 그것은 자신이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문맹자를 위한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으면, 문맹자가 자신이 문맹자인 걸 감추기 위해 쏟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을 받으시는 분들도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 집 근처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와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치 독일의 당시 분위기도 한나가 얘기하지 못한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당시 독일은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을 역설하며 전쟁을 치르던 중이었고, 민족의 위대성 과시 지표의 하나로 문맹률이 거의 제로인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따라서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구성원이 문맹이라는 사실은 자칫 사회적 제거를 당할지도 모르는 범죄였을지도 모른다.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25 15:01
powerkwd
기회되면 볼께용~   
2009-05-27 19:21
kimshbb
힘들어요   
2009-05-22 14:1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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