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나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적당한 거리' 로 부터 파생되는 관계의 균형이 불가능한 관계이기도 하다. 어쩌면 가족은 피를 나누었다는 점만 빼고 보면 같이 살기에는 꽤나 낯선 존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아온 환경이 다른 남남이고 부모와 자식은 성별도 세대도 문화도 다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도 '가족' 이라는 구성체는 별반 달라 진 것이 없다. 그러나 최근 가정 폭력이나 살인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하고 근본적인 단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쥔 양익준 주연/감독의 [똥파리]는, 가정이라는 곳에서 잉태된 '폭력' 이라는 것이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성장해서 다시 폭력의 대를 잇고 그걸로 모자라 그 씨앗이 사회 곳곳에서 새롭게 뿌리 내리는 과정을 찐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상훈은 동생을 죽이고 어머니를 죽게 만든 죄로 15년 만에 출소한 아버지를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가 폭력을 휘두른다. 그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신을 용역 깡패로 매일 빌어먹고 사는 더러운 똥파리로 만든 똥 같은 존재이자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입힌 원수다. 상훈은 영화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기 전까지도 속 마음을 표현하는 법이 없다. 아버지가 가족 안에서 분출했던 폭력성은 그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끊임없는 욕설과 주먹을 배설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초지일관 폭력과 욕설 뿐인 그도 이복누나의 조카에게 만은 평범한 외삼촌이고 싶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로 부터 지켜줄 수 없었던 어린 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은 하나뿐인 조카 에게는 책임감으로 변한다. 조카를 대하고 있으면 인간 쓰레기, 인간 똥파리로 살아가는 자신도 집안의 어른이다. 사회에서 허접 쓰레기로 살아가는 하찮은 인간일지라도 자기 집대문에 들어서면 그 안에서는 가장 높은 존재이자 나머지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을 갖게 마련이다. 가족을 부정하고 증오하는 그 이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한 집안에서 어린 조카의 삼촌이라는 위치에 놓여지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한명의 가정폭력 피해자인 연희도 가족이라면 지긋지긋 하다. 정신질환으로 식칼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잉태된 또 한명의 똥파리인 동생 영재. 그 틈에서 어린 나이에 맏딸의 역할을 해야하는 연희는 길에서 만난 상훈과 서로 끌리게 된다. 두 사람은 만날 때 마다 욕을 내뱉으며 서로의 마음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만 상처를 공유한 그들 사이에 연민의 정이 흐르는 것은 자신들도 어찌할 수 없다.
세상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기댈 곳 없는 사람들에는 표정이라는 것이 없다. 그런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지키는 길은 폭력과 욕 뿐이다. 하지만 그런 상훈도 아버지를 폭행하는 것을 조카에게 들키고 나서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아버지를 폭행한 일이 있고 나서 자살을 기도한 아버지를 병원에 들쳐업고 달렸던 날 밤, 그는 처음으로 연희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다.
[똥파리]는 영화 내내 관객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스토리로 진행되지만, 그와 동시에 제발 더 이상 나쁜일이 생기지는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관객의 연민 또한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주인공의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있는 일은 참 불편하지만 영화 마지막 즈음에 딱 한번 웃고. 딱 한번 우는 상훈을 피할 수 있는 관객은 거의 없다. 관객 모두는 상훈이 웃을 때 똑같이 환하게 한번 웃고, 상훈이 울 때 딱 한번 진하게 운다. 그리고 결국 이루지 못한 상훈의 행복과 그가 잉태한 또 하나의 폭력의 씨앗은 연희의 바램을 여지없이 무너 뜨리면서 엔딩을 맞는다.
가정이 낳고 사회가 길러낸 폭력이라는 악순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 씬은 그래서 더욱 숨이 멎는 듯 하다. 아주 서서히 해동되어 어렵게 체온을 찾아가던 관객의 마음에 다시 등골 시린 서늘함 이 스며 들면 어느새 다시 찾아온 두려움과 또 다른 연민으로 눈물이 흐른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것" 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은 일단 분노가 치밀겠지만 누군가는 돌아서서 한참을 생각할 것이다. 작가 신경숙도 가족이란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지옥" 이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면 당신은 이미 먼 길을 걸어 온 사람일 것이다.
가족이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울타리이자 스스로 판 무덤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가족을 향해 "너희 때문에 내가 산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그 자신의 목숨은 끝난 것이라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얻고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이 죽어가는 곳.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란 점점 더 참기 어려워 지는 부담이자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안식처이다.
고만고만한 한국영화들로 지지부진의 늪에 빠진 요즘, 다른 나라에서 먼저 전해진 한국 영화의 힘, [똥파리] 는 아직 우리 영화가 죽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저력이자 가정 폭력이라는 것이 불치병처럼 퍼져나가는 과정을 진정성 있게 파헤친 수작이다. 수상 트로피를 들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어떻게 저런 역할을 천연덕 스럽게 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다.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양익준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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