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세계관에 동의하긴 힘들어도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도시.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지배하려는 음모를 진행 중인 이 도시에서 존 머독(루퍼스 스웰)은 연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과연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는 자기 소지품에 나타난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아내, 심리학자, 형사 등을 만나면서 그는 조금씩 기억을 되찾고 이 도시의 끔찍한 비밀을 깨닫는다.
존 머독이 쫓기고 있는 도시는 어둡다. 왜냐면 낮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중에 존 머독이 범스테드 형사(윌리엄 허트)에게 말하기 전까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미래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어둠을 강조한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블레이드 러너>를 생각해보라. 항상 산성비가 내리는 어둠의 도시. 어쨌거나 이런 어두움은 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부각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다크 시티>를 다시 본 데에는 <노잉>의 개봉 때문이었다. 확실히 두 영화의 세계관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끝내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세계관에 동의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가 그리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독창적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부분도 있다. 외부로는 나갈 수 없는 <다크 시티>의 배경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트루먼쇼>와 비슷하며, 인간들의 살고 있는 현실이 사실은 가상의 세계라는 설정은 이 영화보다 뒤에 나온 <매트릭스>와 연동되는 지점이다. 물론 두 영화 모두 <공각기동대>에 빚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외형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듯 보이는 외계인이 빠져 나갈 수 없는 도시를 만들어, 그곳에 지구인들을 가둬두고 이러저러한 실험을 하는 이유는 멸망해 가는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그 해법을 ‘영혼’에서 찾고 있다. 단적으로 감독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화 속 대사에서 보이듯 감독은 인간의 육체는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존재 및 그 중요성과 <노잉>에서 보이는 결정론적 세계관이야말로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세계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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