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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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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2 오전 5:4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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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체 게바라의 혁명, 캐러비안 해의 낭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그 목록에 '레이날도 아레나스(1943~90)'라는 이름을 추가해도 좋을 듯하다.
아레나스는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가이자 동성애자로서 금지된 길을 걸었던 쿠바 출신 작가.
'비포 나잇 폴스(Before Night Falls)'는 평생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그의 외로운 인생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쿠바의 어두운 이면을 그린다.
'비포 나잇 폴스'는 예술가 영화다.
동성애 작가라는 저주받은 운명으로 평생 고단하게 살아야 했던 쿠바 작가 레이날도의 삶을 다뤘다.
화가 출신의 감독 줄리앙 슈나벨이 '바스키아'(96년) 이후 두번째로 연출한 영화다.
2000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남우 주연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리빙 하바나'에 이어 최근 우리 문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쿠바를 조명한 영화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비포 나잇 폴스'는 93년 출간됐던 레이날도의 자서전 제목이다.
슈나벨 감독은 이 자서전과 레이날도가 남긴 여러 편의 소설을 결합해 조국과 시대와 불화했던 한 예술가의 쓸쓸한 초상을 되살려냈다.
올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뷰티풀 마인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도 마지막 자막이 스크린에 비치는 순간 원작을 들춰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비포 나잇 폴스'엔 예술가 영화의 '가나다'가 충실하게 담겨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쿠바 혁명에 충동적으로 가담했던 소년 시절, 자신도 몰랐던 동성애 기질을 발견한 청년 시절, 독특한 성적 취향으로 반혁명 분자로 몰려 감옥에 갇혔던 장년 시절, 그리고 뉴욕의 아파트에서 자살로 일생을 마감한 마지막 순간까지 레이날도의 파란만장한 발자취를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선 장승업이 일평생 새로운 그림, 끝없는 자기 변신을 향해 몸부림쳤다면 '비포 나잇 폴스'에 등장하는 레이날도는 자신의 성적.예술적 자유를 향해 진통을 거듭한다.
슈나벨 감독의 연출력도 수준급이다.
자칫 울적하기만 할 수도 있는 한 억압받는 작가의 일대기가 긴장감있는 내러티브와 화가 출신 감독의 감각적인 카메라 붓질, 아름다운 쿠바음악과 함께 주인공 아레나스 역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에 힘입어 전혀 지루하지 않게 펼쳐진다.
레이날도가 성장했던 원시적 자연, 혁명으로 들끓었던 쿠바의 도시, 마천루로 뒤덮인 뉴욕의 음울한 풍경과 레이날도가 변모해가는 모습을 적절하게 연결시켰다.
특히 동성애 장면 묘사는 다른 어떤 영화에 못지 않게 사실적이다.
일부 관객은 영화의 동성애 코드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도 던질 법하다.
하지만 슈나벨 감독은 이를 삭제하고 레이날도를 이해하는 건 분명 '사기'라고 말하는 듯하다.
"혁명은 모든 걸 해결한다"는 쿠바 당국의 구호에 맞서 "혁명은 모든 이를 위한 게 아니었다.
섹스는 투쟁의 수단이 됐다"고 주장하는 레이날도의 고독한 저항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비포 나잇 폴스'의 후반부에 나오는 흥미로운 장면 하나.
쿠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소설가 레이날도 아레나스(하비에르 바르뎀)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참고로 미리 고려해야 할 것은 레이날도가 동성애자라는 점이다.
"거기(쿠바)선 엉덩이를 차여도 좋고, 여기(뉴욕)선 비명을 질러도 좋고…."
체제의 차이를 뛰어넘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대목이다.
작가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과 열정을 옥죄는 조국을 등지고 뉴욕으로 망명했던 레이날도지만 그는 자본주의의 우월성, 혹은 사회주의의 낙후성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개인의 내적 욕망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종국엔 에이즈에 걸려 뉴욕의 한적한 아파트에서 목숨을 끊는 그의 비참한 일생은 이같은 체제의 억압에 대한 외로운 투쟁으로 요약된다.
'하몽하몽'등의 영화에서 주로 마초 스타일로 등장했던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만족스럽다.
비상구가 없어 보이는 조국에서 좌절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천재 작가의 복잡다단한 성격을 원숙하게 소화했다.
레이날도가 수감됐던 감옥에서 여성 복장의 게이 역을 맡은 조니 뎁의 능청스런 연기도 쉽게 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레이날도는 정신병자로 몰린다. 하지만 과연 그는 정신병자였을까.
오히려 그를 감옥에 밀어넣은 쿠바 당국이 정신병에 걸렸던 것은 아닐까.
'비포 나잇 폴스'는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예지자로서의 소설가, 주류 사회와 어쩔 수 없이 마찰해야 하는 예술가의 운명을 다시금 생각케 한다.
'비포 나잇 폴스'는 격동기 쿠바의 동성애 작가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다른 시대를 사는 우리의 감성에까지 진하게 와 닿는다.
동성애자나 예술가만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원치 않는 길을 걸었던 아레나스의 고통은 작금의 현실에서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울림을 남긴다.
눈앞의 현실과 거리가 먼 소재로도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영화의 힘이라면, '비포 나잇 폴스'는 소리없이 강한 영화다.
예술가는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레이날도의 개성을 지나치게 부각한 게 아쉽지만
몽환적인 화면과 아름다운 시, 쿠바의 공기를 실어 보내는 듯한 맘보 음악 등으로 영화는 짙은 잔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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