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주인공인 구 감독이 제천과 제주도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는 식의 전개를 보이고 있다. 구 감독은 남에게 아부를 하기도 하고 마음에도 없는 예의 이미지 관리용 멘트를 날리기도 한다. 속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분위기를 봐가며 억누르기도 하고 반대로 욱해서 민망할 정도의 본심을 내뱉기도 한다. 사실 구 감독이 하는 모든 거짓말, 방관, 침묵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100% 진심, 100% 이해, 100% 공감, 뭐 이런 것들이 존재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홍상수 감독 특유의 현실감을 살린 대사와 연출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생활의 발견]인가이니까 워낙 안본지 오래된 스타일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특히나 고현정, 엄지원, 유준상, 하정우 등의 명실상부 알아주는 배우들의 짬짬이 출연이 흥미로웠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이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보편적인 것도 같은 캐릭터들과 누구나 한번쯤은 공감할 법한 상황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구 감독이 했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던 여학생이 유명한 화가인 양 선배의 단어만 약간 다른 같은 말을 듣고 감탄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나 나이 어린 흥행감독이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구 감독의 존재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스태프들의 모습 말이다.
구 감독이 별 생각없이 몸에 익은대로 하는 행동들과 말 때문에 제천에서 꼬인 일은 어김없이 제주도에서도 같은 패턴으로 꼬여버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특별히 어떤 게 나빴다는 식으로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냥 구 감독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배려하는 척하고 모르는 척하고 느끼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척했을 뿐이고, 우리 모두는 늘 그런 식의 생활을 하는데 하필 구 감독만이 특별히 그 날 그 때 그렇게나 재수가 없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오래간만에 홍상수의 신작을 선택한 이유는 영화 [박쥐]를 보러갔을 때 나왔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예고편 때문이었다. 예고편의 첫 장면은 한 여학생이 구 감독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런 영화를 왜 만드셨어요?” 아마도 감독 본인이 수도 없이 대중에게 받아왔던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극 후반부에 나온다. 잘 모르는 얘길 어떻게 쓰냐며 그래서 자기 얘기를 쓰는 거라고.
이 영화는 썩 재미있지는 않다. 코미디도 액션도 아니니까 그러하다. 하지만 삶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내가 했던 행동, 내가 했던 거짓말, 내가 했던 착각 등등. 그리고 그렇게 경험들을 되새기다보면 이 영화를 보며 웃을 수 있게 된다. 내 바로 뒷줄에 앉은 중년 부부가 “이 영화는 주제가 없나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근데 내 생각에 이 영화 주제는 제목 그대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영화를 보고 와서 이거는 어떻고 저거는 어떻다고 이렇게 영화평을 쓰는 것처럼. 솔직히 원래 우리들은 잘 아는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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