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굿' 바이: Good & Bye (おくりびと)'를 뒤늦게 봤다.
극장에 걸려있을 때부터 보고 싶었지만, 여차저차하다보니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일제는 'おくりびと(오쿠리비토)'. 번역하면 '보내는 사람' 정도가 되는데,
주인공의 직업인 '염습사=납관사'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제목이다.
한제인 '굿' 바이'도 꽤 괜찮은 제목이었다. 언제부턴가 '굿바이~굿바이' 그냥 이렇게 헤어질 때 인사로만
무의식적으로 쓰던걸 잘 생각해보니, '굿&바이'ㅡ 정말 '잘''가라'는 의미가 잘 내포되어있던 단어를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잘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주는 사람'인 'おくりびと'.
이 영화를 보면 크게 두 가지에 대해 와닿는다. '죽음'과 '직업'.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번 이상은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인생에서 꼭 한번 있는 것이고,
가족을 비롯 주위 사람들의 죽음으로 간접적으로 여러 번은 접하게 된다.
영화에서 보면 그 '순간'을 '염습사'가 생전에서 가장 예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꾸며주고 정리해준다.
그 장면은 너무나도 숭고하고 엄숙해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장례식전에
영화와 같은 염습작업은 있을 것이다.), 그 작업을 통해 한번 더 이승에서의 '굿&바이'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다음 세계로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길을 향해...
이를 통해 '염습사'라는 직업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는데, 영화에서는 고향친구를 비롯 아내도 잠시
그런 직업을 갖게 된 주인공을 비천하게 생각한다. '죽음'과 '시체'를 다루는 작업...
물론 어둡고 꺼려지는 일반적인 감정을 갖게는 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죽음'은 꼭 한번은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고, 영화 속의 그들도 그 '죽음'을 직접적으로 접하고 그 자리에서
주인공 '다이고'의 숭고한 염습작업을 눈으로 보게되자, 그제서야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꺼려하는 '죽음'의 이미지를, 숭고하면서도 영적인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그의 모습에서 말이다. 그야말로 또 한번의 '굿&바이'다.
'첼로리스트'라는 오케스트라 연주자에서 전혀 어울릴것 같지않은 '염습사'로의 전환은,
그에게도 그 주위사람들에게도 불확실한 미래를 잠시 안겨주지만, 그것은 역시 기우였다.
섬세한 선율을 다루는 '첼로리스트'였던 그의 손길은, '사람의 마지막'을 섬세하게 다루는 '염습사'하고도
꽤 맞아떨어졌나보다. 그리고, 그의 신중하면서도 열심히인 그의 성격하고도..
염습사 사장은 면접에서 단번에 그것을 본 것같다. 그의 인상에서 말이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일본의 '장인정신'을 통해 그 어떤것이라도 숭고하게 만들어버리는 일본인과
일본영화의 특징덕분에 이 영화는 더 빛났던 것 같다. '염습작업'을 직접 보면서, 그 순간을 '희노애락'으로
다양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가족들의 모습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이렇게까지는 안하는 것 같지만,
'죽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저도 '하나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그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참으로 인간적인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북적북적대는 우리의 장례식 문화보다,
'떠나가는 사람'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그들이 그 '순간'을 간직하고 만들어가는 모습.
어찌보면, 이러한 '순간'들은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우리들이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행하는
'마음의 위로'와도 같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탄 것은, 아마도 이런 모습들을 참으로 동양적으로, 그것도 가장 일본인들 답게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죽음'과 '그 순간'을 다루는 모습에서 약간의 '경외심'같은게 느껴져서가 아니었나 싶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13인의 첼리스트들의 첼로 선율이 더욱 잘 어울렸던 영화이기도 했다.
'굿' 바이: Good & Bye (おくりびと)'.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한번 다시 생각해야할 '중요한 것들'에 대하여 경건하게 관객들 가슴 깊이 넣어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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