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드라마인 스포츠...... ★★★
스포츠는 그 자체로도 기막힌 한 편의 드라마다. <킹콩을 들다>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만 보더라도 그렇다. 만약 한국과 쿠바가 맞붙은 야구 결승전이 시나리오로 미리 쓰였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코웃음 치며 비웃었을 것이다. “너무 배배 꼰 거 아녀?” 역도 이배영 선수의 투혼도 그렇고, 유도의 최민호 선수 경우를 봐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대체로 실화에 근거를 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 중 하나인(하긴 우리나라에선 일부 구기 종목을 제외한다면 거의 대부분이 비인기 종목의 하나겠지) 역도를 소재로 한 <킹콩을 들다>엔 생각해봄 직한 것들이 여럿 등장한다. 우선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이 겪어야 하는 설움이 있을 수 있겠고, 우리나라의 1등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가난한 시골 소녀들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로서도 제 몫을 하는 편이다.
영화는 이지봉 선수(이범수)가 과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금메달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수는 좌절하고, 주위의 시선은 차갑다. 사실 참가만 해도 영광이라는 식의 수사는 우리나라에선 “병신, 쪼다”라는 말과 동의어에 불과하다. 베이징 올림픽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 선수의 경우를 보자. 금메달이 확정되고 난 후 너무 서럽게 우는 최민호 선수. 경기에 진 외국 선수가 달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난 좀 짜증이 났더랬다. 그런데 최민호 선수의 인터뷰를 보고는 많은 생각이 떠올랐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동메달을 따고는, 나름 대단한 성적을 올렸다고 생각했는데(세계 3등인데!!!) 주위의 반응은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일등이 아니면 다 병신이고 쪼다인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시선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대한민국의 일등병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올림픽의 국가 순위를 매기는 방법이다. 공식적으로 올림픽에선 국가순위를 매기지 않는다.(이걸로 후배와 내기를 해서 술 한 잔 거나하게 얻어먹은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많은 나라들이 국가 순위를 매기고 있는데, 이것도 공식적인 건 아니고 대부분 언론사의 흥미 유발 차원에서다. 그런데, 국가 순위를 매기는 방법에 있어서 당연하게도 많은 국가들이 가급적 자국의 순위가 높게 나타나는 방법을 선호하고는 있지만, 우리처럼 금메달에만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너무 노골적이다. 은메달, 동메달이 몇 개이건 금메달 하나를 못 이기는 방식. 반면 많은 국가들은 금은동 가리지 않고 전체 메달수로 순위를 매긴다고도 하고, 8위까지 점수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국가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그 나라의 성숙도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기껏(!) 올림픽 동메달 하나 따고는 부상으로 은퇴한 이지봉은 나이트클럽 웨이터 등을 전전하다 백감독(기주봉)의 주선으로 전라도 한 시골 여중으로 내려가 역도부 코치를 맡게 된다. 선수 선발 장소에서 그가 늘어놓는 역도 선수가 되면 안 좋은 점들은 대게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과 동일할 것이다. 아무튼 그 밑으로 역도를 해야만 하는 나름 이유를 가진 시골 소녀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머물 곳도 없어진 영자(조안), 테니스부에서 공이나 주우며 온갖 수모를 감수하는 현정(전보미), 아픈 엄마를 위해 성공하고 싶은 여순(최문경), 힘 하나는 타고난 보영(김민영)이 역도 아니면 죽음이라는 절박한 심정에서 모여든 아이들이라면, FBI가 되기 위해 운동도 해야 한다고 믿는 모범생 판소리 소녀 수옥(이슬비), 전 군수의 딸로 역도부의 옷이 섹시하다며 들어온 민희(이윤회)는 일종의 취미로 (어쩌면 어울릴 친구를 찾기 위해) 들어온 아이들이다. 영화는 역도 초보들이 모여 좌충우돌하는 모습과 결국 이들이 역도선수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격체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웃음과 감동에 버무려 보여준다.
사실 스포츠 영화는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형적이라는 게 결코 부정적인 건 아니다. 대중들이 어떤 장르의 영화를 보러갈 때는 그 장르에 대해 기대하는 지점들이 있다. 그게 바로 전형성들이고, 반면 기존의 장르 영화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움을 요구하기도 한다. 연출 또는 제작하는 입장이라면 아마도 가장 큰 고민이 이 비중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상 전형성 70~80%, 참신성 20~30% 정도면 좋지 않을까 싶다.
<킹콩을 들다> 역시 스토리 전개로 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전형적인 전개 과정을 따른다. 그럼에도 영화는 자잘한 유머와 먹먹한 감동을 전달하는 데 나름 성공했다고 평가해줄만 하다. 여기엔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를 펼친 여러 배우들에게 먼저 공이 돌아가야 한다. 특히 여자배우로서 실수로 똥을 싸는 장면 같은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게다가 자칫 주연 한 두 명에게만 집중하기 쉬운 상황에서 역도부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모습을 소외시키지 않고 두루 비쳐준다는 점도 이 영화 연출의 장점으로 꼽을만하다. 아무튼 개인적으론 최근 들어와 장르의 전형성을 배반하지 않는 한국영화가 자주 눈에 많이 띠고 있다는 건, 산업 차원에서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보인다. 왜냐면 현 시기의 한국 영화엔 예술보다는 상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킹콩을 들다>가 조금만 감정의 분출을 자제했더라면 여운이 더 오래, 더 길게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몇몇 장면은 차라리 무덤덤하게 처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역도복에서 여고 이름을 떼어내고 이지봉이라는 이름을 써 넣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누구는 이 장면에서 하염없이 울더만, 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 미치는 줄 알았다) 게다가 한국의 스포츠 내지는 휴먼 영화가 자주 범하는 악인과의 대립구도 설정이 <킹콩을 들다>와 같이 착한 영화에서도 뻔뻔스럽게 등장한다는 건 꽤나 안타까운 지점이다. <각설탕>에서 임수정의 반대편에서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 조교사와 기수, <마음이>에서 아이들에게 앵벌이를 시키고 동물에게 온갖 학대를 일삼는 깡패와 <킹콩을 들다>의 여고 역도부 코치, 그리고 테니스부 학생은 동일한 존재들이다. 맨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스포츠는 그 자체로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고, 특히 비인기 종목의 운동을 하며 불우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일 텐데, 굳이 100% 악인을 등장시켜 별도의 긴장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스윙 걸즈>에 악인이 등장해 주인공들을 때리고 학대했다면 어떠했을까? 그래도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나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 처음 조안이 역도선수로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부터, 혹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얼짱 역도선수로 인기를 끌던 윤진희 선수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른 실화에 근거했겠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머리 스타일이나 하얀색 작은 귀걸이를 보면 확실히 외모만큼은 윤진희 선수를 모델로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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