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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 응징, 그리고 유리같은 동료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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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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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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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1 오전 1: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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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들이 꿈틀거렸다. 돈 때문에, 그리고 복수 때문에, 그리고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어느 이름 모를 장소에서 그들은 괴이하고 위험한 인터넷 방송을 찍고 말았다. 영화는 시작부터 반전이었다. 10억을 경품으로 하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그것이 시작될 때 관객 모두일 뿐만 아니라 영화 속의 참가자들 역시 일종의 낭만을 가진 ‘무한도전’이나 ‘1박 2일’과 같은 방송용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재미와 흥미 위주의 그런 방송 정도로만 여겨질 수 있는 우리들의 통념을 영화는 여지없이 깨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꿈꾸고 있는 자연 속의 낭만적인 공간이라 여겨 질만한 멋진 장소, 어느 이름 모를 외딴 섬과 같은 공간. 누구에게는 도심을 벗어난 낭만의 장소일 수도 있었지만 영화에서 설정한 공간은 결코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은 그들에겐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죄의 심판의 장소였고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장소였다. 이런 응징과 탐욕이 뒤엉킨 곳에서 여덟 명의 참가자들과 두 명의 촬영진들, 이렇게 그들은 미국의 서바이벌 경기를 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그들 앞엔 실패와 성공이 곧 죽음과 대박이란 양극단만이 존재하는 경기인 것이 차이였다. 그래서였는지 참가자들은 생존과 승리를 위해 동료애와 불신이 상존하는 공간에 처박히게 된다. 생존을 위해 서로 도와야 하는 기묘한 관계? 그러나 동료애 역시 어떤 점에선 유리처럼 약한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행동했다. 불신과 공포, 그러면서도 얻고자 한 10억은 인간의 가련한 탐욕과 불운을 실험한다. 결국 희생된 자들과 남는 자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남는 자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탐욕을 억제하진 않았다. 바로 이게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래, 그런 게 인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인간유형은 현대 도시문명이 만들었는지 모른다. 인간관계는 해체된 지 오래고 믿음이나 신뢰야 잘 모르던 사람들이 모인 관계로 쉽게 얻어질 리는 없다. 그나마 그 속에서 사랑이 싹텄어도 결국 쉽게 무너지는 유리성이었을 뿐이다. 이게 머나먼 호주 서해안에서만 있을 법한 사실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한복판에서도 쉽게 일어날 일들이다. 개연성으로는 무척 높은 수준이다. 인간은 본능을 억제하며 발전했다. 그리고 본성을 이성이 억제해야 한다고 믿어왔고 그래서 교육을 받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쉽게 절제되지 않는 이 본성은 그러나 아직도 도시 속의 인간관계라는 유리성을 여지없이 파괴시킬 수 있는 힘을 언제나 갖고 있다. 어쩌면 이성이나 성숙한 관계 역시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책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성이 도구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성의 가르침을 받기 보다 그것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인간적 감성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영화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극적 효과를 강하게 어필하는 부분이 부족했고 구성에서도 유감인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영화라 느껴졌다. 무엇보다 주제의 강렬함이 느껴진 영화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도, 그리고 그렇게 볼 필요는 없었다. 영화 속엔 인간적 고뇌와 상처, 그리고 그것들을 치유하기엔 문제가 많은 도시가 그 뒤에서 보인다. 그리고 이제 다 알고 있는 인간과 도시의 문제점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연약함이 보인다. 그것들에 우린 얽혔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보인 인간에 대한 냉소적 어조가 마지막에 슬픈 어조로 바뀔 때 극의 반전보다 인간미의 회복이 있었으면 했는데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인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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