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라 피셔의 원맨쇼 감상... ★★☆
잘 나가는 패션지 기자를 꿈꾸는 레베카(아일라 피셔)에게 있어 최고의 고민은 쇼핑 중독에 따른 카드빚 청산이다. 집은 온통 명품으로 쌓여 있고, 돌려막기 신공으로 근근이 버텨 나가는 중에 그나마 다니던 직장은 문을 닫고, 이곳 저곳 패션지에 이력서를 제출해 보지만 재취업의 가능성이 보이질 않는다. 한국에서라면 신체 포기각서를 쓰고 사채를 끌어다 쓰고, 결국엔 술집으로 팔려 다니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염려마시라. 레베카가 있는 곳은 항상 희망과 즐거움이 넘치는 헐리우드 월드니깐.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경제지 에디터로 일하게 된 레베카는 이곳에서 멋진 훈남 루크(휴 댄시)를 만나게 되고, 역시 말도 안 되는 과정을 거쳐 능력을 인정받는다. 이 영화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결말을 맺게 될 지는 대충 예상 가능한 방향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전형적인 영화이긴 하지만, 아일라 피셔의 능수능란한 원맨쇼를 보는 재미는 제법 크다. 아일라 피셔를 영화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이 영화를 보려고 생각한 것도 예고편에서 보여준 아일라 피셔의 표정 때문이었으며, 보고 난 다음에 느낀 것도 <쇼퍼홀릭>의 거의 유일한 재미는 아일라 피셔의 표정연기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라서 그러기는 하겠지만, 극중 레베카의 쇼핑 중독은 정말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나름 짐작은 된다. 왜냐면 그랬다고 하면 직장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이미 카드는 빵꾸나고 사채 빚은 늘어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직장 월급으로 어느 정도는 커버 가능한 수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나도 그러지만, 사실 카드를 사용하다보면 우리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처럼 과소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식과 카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세주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계속해서 소비가 증대되어야만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진정 안정된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현실과 괴리된 일종의 판타지다. 세상에 카드 회사의 빚 독촉 수준이 그 정도로 신사적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쉽게 쇼핑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많은 여성들이 몸을 파는 극단의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물론, 전형적인 시간 때우기를 위한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심각한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요즘 직장인의 최대 재미가 택배 기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는 농담을 떠올려보면 분명 레베카의 고민이 ‘남 얘기가 아닌 사람’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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