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아 죽는줄 알았다.
심지어 쌍욕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나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저 또 다른 가족상을 제시하는 영화인가 보다 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숙하고 진보적인 영화인가보다 하고.
동성애처럼 사랑의 방식이 조금 다른 소수의 권리도 중요하다. 뭐 그런말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만 사랑하는 것.
이건 흡사 변태나 스토커와 무엇이 다른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버리더라도 자신의 삶의 만족만을 추구하다니. 이건 쿨한 것도 아니고 진보적인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열린 것도 아니고 그냥 미친거다.
그런데 나는 곧 이 영화가 하나의 '복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곤 다 괜찮아졌다.
유교사상에 젖어 수백년동안 만들어져온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사고. 그것에 대한 복수인 것이다.
이 복수는 가장 단순한 방식의 복수이다. 이른바 역지사지. '너도 한번 당해봐라'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나의 가정과 행복이 유린당하고 위협당하는 것이 어떤건지, 그런 말도안되는 상황을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짓인지, 내 배우자의 또 다른 연인이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게 얼마나 꼴배기 싫은지, 그렇게 삼자 대면하는 자리가 얼마나 모욕감을 주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이혼해버리지 못하고(말그대로 '누구 좋으라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냥 같이 살아야한다는 사실이 어떤건지 말이다.
이건 뭔가 한국사람들한테 익숙한 거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겪어왔던,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해서 덤덤해진 바로 그 감정.
온갖 아침드라마들과 '사랑과 전쟁'같은 프로그램에서 지겹도록 반복해온 바로 그 상황. 바로 그 익숙한 상황에서 남녀의 역할을 바꿨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상황이 정말 끔찍하고 불편한거다.
그렇게 두시간동안 남자들은 당하는 거다. 남자들도 한번 당해보는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감상법은 상당히 올바른 것이었다. 애가 타고, 답답하고, 말이 안되는 거 같고, 세상에 이런일이 어디있나 싶고, 죽여야될 것 같고, 욕이 나오고, 화가나고.
영화속 김주혁의 모습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 몰린 여자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영화의 말미, 김주혁의 마음이 열리는 지점은 다른 쪽 부부의 성생활에서 피임을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영화 중반의 김주혁의 모습을 상상하면 이런 지극히 작은 부분에 안도하는 영화 말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애처롭다. 여자들이.
그래서 그냥 다 괜찮다.
게다가 이건 보편적인 경우도 아니고, 심지어 실제로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통한 가상의 경험이 아닌가.
이 정도는 당해도 된다.
여자들이 겪어온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그냥 애교다.
사랑이 나뉘는게 아니라 두배가 되는거라는 말도,
우리 팀은 투톱체제라는 말도,
우리나라 축구의 문제점은 즐기지 못한다는 구역질나는 말도,
그냥 다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심지어 네명의 기묘한 가족 구성으로 끝나는 영화의 엔딩도 복수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카운터 펀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애교지 뭐.
복장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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