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
권력자들 사이에서의 갈등이 아니라, 전 국민적 차원에서 전통적인 우방이라는 한미 관계가 위기에 처했던 대표적인 몇 가지 사건들이 있다. 가장 최근 사건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미선ㆍ효순 사건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멀리로는 1992년에 발생한 윤금이씨 살해 사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탕엔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의식이 깔려 있을 것이다. 여기에 1997년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도 한미 관계 악화의 주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또 하나 꼽자면 88 서울올림픽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게 많은 미국인을 대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당시 직접 대한 미국인들의 이미지는 대체로 시끄럽고 거만하고 예의 없는 존재들이었다. - 이건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세계 유일 강대국 국민이라는 소속감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듯 - 미국과 소련이 맞붙은 남자 농구 결승전은 당시 반미 감정의 하이라이트였다. 한국사람들의 일방적인 소련 응원은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등 화제를 낳았다)
그런데, 의아스럽게도 이태원 살인사건 당시 주한미군은 다른 미국인이 개입된 범죄와는 다르게, 한국 수사기관이 아무런 수사 진척을 보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그것도 먼저 범인에 대한 수사기록과 범인의 신병까지 한국 측에 넘겨주게 된다. 아무래도 SOFA(한미행정협정) 개정 여론을 무마하려는 시도 차원으로 보이기도 하고, 과연 살해 용의자가 아시아계가 아니라고 해도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긴 어렵다.
영화는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조중필(송중기)이 누군가로부터 칼에 찔려 죽어가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한국 수사 기관이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 측은 피어슨(장근석)을 범인으로 지목해 신병과 함께 자료를 넘겨준다. 그러나 박검사(정진영)는 미군의 결론과는 다르게 재미교포 알렉스(신승환)를 살인죄로 기소하고, 알렉스 아버지(고창석)는 변호사(오광록)를 고용해 아들의 무죄를 주장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별다른 영화적 장치 없이 꼼꼼하게 재연한다. 결론 역시 우리가 다 아는 바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는’ 살인 사건.
실제 사건으로서의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을 영화로 다룬다고 한다면 대게는 어떠한 영화를 예상하게 될 것인가. 몇 가지 지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영화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등의 전력을 고려해 볼 때, 홍기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고 하면, 아마도 우선적으로 SOFA를 중심으로 한 한미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 내지는 고발 영화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또는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죄 선고와 유력한 용의자에 대한 관리 소홀에 따른 출국 등을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서 한국 수사 및 사법 체계의 맹점(“이길 수는 없지만 지지는 않게 해 드리겠다”)을 꼬집는 영화로의 제작도 가능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연상시키는 치열한 법정 드라마로는 어떨까?(개인적으로는 치열한 법정 드라마를 예상했다) 감독을 미리 알지 않았다면, 아주 스피드 있고 긴장감 넘치는 대중적 스릴러 영화로의 제작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적 스릴러 영화에서도 사회를 향한 날카로움을 담아낼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사실 <이태원 살인사건>은 결론적으로 말해 성실하고 진지한 재연 이상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굳이 ‘이태원 살인사건’을 영화화함에 있어 재연의 틀에 갇힐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다. 왜냐면 영화가 다루는 사건 자체가 <살인의 추억>이나 <그놈 목소리>하고는 판이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범인 자체를 잡지 못했던 두 사건에 비해 <이태원 살인사건>은 어쨌거나 둘 중의 한 명이 범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 둘을 상대로 한 재판(!)까지 열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게시판 등을 보니, 의외로 이 영화를 보면서 답답함과 무력함을 느꼈다는 글이 많았다. 쉽게 가자면 영화 속 경찰 말대로 “50%의 확률”일 것이고, 한 검사의 말대로 “두 명을 공범으로 기소”하는 것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나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을 살인죄로 기소할 수 없다는 검사의 정의감과 100% 확실한 증거를 원한 재판부, 거기에 여러 가지 요인(이 중 하나는 SOFA일 것이다)으로 인해 미진했던 수사 등으로 살인죄로 기소된 한 명은 무죄를 선고받고, 또 다른 한명은 흉기 소지 등의 혐의로 약간의 복역을 한 후 미처 출금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미국으로 출국해 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이 사건은 검사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사건으로서 법대의 주요한 공부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런 과정 자체가 답답함과 무력감을 주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문제는 영화적으로 그런 답답함과 무력감을 주는 냐이다.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난 이 영화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연상시키는 치밀하고 꼼꼼한 법정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영화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보면서 느꼈던 그 답답함, 암울함, 무기력이 <이태원 살인사건>을 통해 반대의 지점에서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가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과정에서의 답답함, 무기력이라면 <이태원 살인사건>은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과정에서의 아이러니, 답답함, 무기력. 그런데, 영화적 연출로서 <이태원 살인사건>은 이 지점에서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평가해주기 힘들다. 그래도 영화가 진정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성이 있다고, 진지하게 재연했다고 좋은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검찰이 재수사의 움직임을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는 자신들의 과거 흠집을 가려보려는 언론 플레이 쪽에 가깝다고 확신한다. 사건 당시와 재판 이후의 떠들썩한 여론을 돌이켜보건대 재수사가 가능했다면 그 때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며, 지금 재수사를 한다고 해도 13년 동안 한국 수사기관의 그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문제 제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 영화의 개봉으로 인해 재수사가 이뤄진다면 그건 분명 긍정적이다.
※ 정진영의 연기에 대해선 누구도 나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장근석 역시 기대 이상의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다른 출연자들의 경우인데, 다른 배우는 잘 모르겠고, 오광록은 분명 자기 옷에 맞는 역할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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