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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를 보며 눈물 흘린 적 있습니까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
jimmani 2009-09-28 오전 1:34:22 4598   [0]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자인 우스이 요시토의 명복을 빈다. 우리나라에 실로 많은 일본 만화들이 알려져 있고,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짱구는 못말려>의 원작자인 우스이의 사망 소식은 유난히 충격적이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것은 '짱구'라는 캐릭터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파급력이 사뭇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선 이미 20년 가까이 되는 세월동안 존재해 왔지만, 나같은 경우만 해도 10여년 전부터 인연이라면 인연을 맺어온 아이인지라, 일본 만화 캐릭터들 중에서는 인간적으로 가장 정이 가는 캐릭터가 이 짱구일 것이다. 10여년 전 첫 비디오 출시를 시작으로 공중파 방영, 케이블 TV 방영을 거쳐 드디어 첫 극장판 개봉에 이르게 되었다.
 
이 짱구라는 아이와 그 가족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단 이 아이가 짖궂고 밝히는 아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만화는 처음 국내에 소개될 때에는 '성인용 만화'로 소개된 만큼 사실은 선정적인 유머가 주를 이루는 18금 작품이었으나, 지금 이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성인만화 그 이상이다. 아니, 오히려 온가족이 즐길 만한 일본 만화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이것은 숨겨져 있던 짱구의 진짜 매력이 마침내 특정 연령층을 뛰어넘어 전 연령층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게 됐다는 얘기다. 짱구가 이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또래 중에서도 유난히 짓궂은 장난꾸러기라는 점을 넘어서는, 가슴 속에 푸근한 정을 품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짱구의 장점은 TV판보다 극장판에서 곧잘 드러나곤 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국내 개봉한 극장판인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이하 <엉덩이 폭탄>)도 그 중 하나다.
 
제주도에서 오랜만에 느긋한 가족여행을 즐기고 있던 짱구네 가족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찾아온다. 흰둥이의 엉덩이에 채워진 '괴기저귀'가 그것. 가족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지구 하나는 거뜬히 날려버릴 무시무시한 폭탄이다. 외계인들이 운석을 파괴하기 위해 보낸 폭탄이 저 멀리 지구의 흰둥이를 이상 물체로 인식하여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어 버린 것. 떼어내 보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떼어낼 수가 없다. 이 폭탄의 존재를 알아챈 국가 비밀 기관인 국가우주감시센터 U.N.K.A(일명 응카)는 짱구네 가족을 찾아가 폭탄을 흰둥이와 함께 로켓에 실어 지구 밖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오랜 시간 흰둥이를 가족으로 여겨온 짱구와 가족은 탐탁치 않아 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의 노래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요상한 야욕에 불타는 '개양귀비 가극단'이 이 정보를 캐내 폭탄을 쫓기 시작한다. 이상한 어른들의 위협과 흰둥이의 생사가 걸린 상황 속에서 짱구는 과연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이 정도 뻥이라 하면 '범우주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흰둥이의 엉덩이를 지배한 폭탄의 발원지도 지구 바깥을 넘어 은하계까지 넘어선 까마득한 곳에 있는 우주선인데다가, 이 괴상하게 생긴 폭탄이 지구 하나쯤은 가루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위력을 지녔단다. 평범한 짱구 가족의 손에 단숨에 지구의 운명이 달린 것이다. <짱구는 못말려>는 지극히 소소한 일상을 다뤘던 TV판과 달리 종종 극장판에서 이런 굉장히 말도 안되는 듯한 설정을 가져온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적인 측면을 지닌다. 하나는 어린이 관객들의 이목을 확실히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구 정복 음모와 같은 뻔한 설정을 가져오되, 그 무기로 놀이공원, 노래, 자유자재로 변하는 폭탄과 같은 독특한 것을 가져옴으로써 어린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한다. 논리적인 면에서는 물론 떨어질지 몰라도, 논리를 따박따박 따지는 대신 눈이 휘둥그레 해질 만한 참신함을 우선시하는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꽤 효과적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린이 관객들 뿐 아니라 어른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다. TV판과는 현저히 비교되는 별난 모험담을 극장판에 펼쳐놓음으로써, 짱구네 가족들도 그렇고 보는 관객들도 그렇고 그들이 시시하리만큼 평범하게 보냈던 나날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TV 시리즈의 극장판이라 하면 관객들은 일단 TV에선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볼거리나 이야기를 원한다. 극장판은 TV판보다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물량 투입에 있어서도 제약이 덜하기 때문에 TV판에선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볼거리나 높은 수위의 민감한 장면들, 더 복잡하고 거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엉덩이 폭탄>에서도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물론 <짱구는 못말려>가 원래 꽤 평면적인 2D 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극장판이라고 해서 급격한 시각효과의 변화를 노릴 수는 없지만, 꽤 탄탄하게 짜인 장면들이 몇몇 보인다. 초반 공항에서 벌어지는 흰둥이를 둘러싼 작은 실랑이나, 폭탄이 장착된 흰둥이를 마치 럭비공처럼 다루면서 펼쳐지는 응카와 개양귀비 가극단 간의 추격전이나, 고속도로에서 펼쳐지는 개양귀비 가극단의 공연 등 몇몇 액션(?) 장면들은 합이 꽤 잘 짜여진 듯한 박진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물론 응카 기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후반부 장면의 스케일도 이 애니메이션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규모 면으로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아무래도 극장판이다보니 유머의 수위도 살짝 올라갔다. 앞서 만화 <짱구는 못말려>가 처음에 성인만화로 출발했다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나라에 방영된 TV판에서 최대한 자제하려 했던 성인 코드의 유머가 극장판에서 좀 살아난 모습을 보인다. 여성의 특정부위가 부각되어 비춰진다든가, 개양귀비 가극단이 몸에 착 달라 붙는 의상을 입고 펼치는 퍼포먼스들, 치마 속이 다 보일 정도의 자세를 하고 오토바이를 타는 개양귀비 가극단의 주력 삼총사의 모습 등은 <짱구는 못말려>가 본래 완전한 어린이용 만화는 아니었음을 상기시켜주는 대목이다. 어린이들이 보기에 좀 선정적이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짱구의 짓궂은 성격을 나타내는 작은 부차적 요소 정도로 등장하고 결코 주된 재미의 코드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해도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보다 <짱구는 못말려>의 극장판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이라 하면 TV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준의 감동이 될 것이다. 일본에서 처음 나온지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5살인 짱구는 TV판에 나오는 모습만 보면 언제까지나 철없이 깐족거리는 미운 다섯살 아이의 모습이지만, 극장판에 나오는 모습을 본다면 이 아이도 신체적 나이만 먹지 않았지 점점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지게 된다. 짱구의 짓궂은 행동들 때문에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속깊은 면모를 극장판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아이는 실수도 많이 하고 장난기도 많지만,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에게 있어서는 절대 먼저 뒤돌아서지 않는 꿋꿋한 의리와 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면 이 아이를 참 좋아라 하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엉덩이 폭탄>에서는 지금껏 <짱구는 못말려>에서 애완견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듯 했던 흰둥이의 비중이 매우 크다. 이전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던 흰둥이가 이번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은 짱구네 가족에게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흰둥이의 엉덩이에 장착된 폭탄으로 인해 가족들은 '짱구네 집' 하면 당연히 액세서리처럼 붙어 있을 줄만 알았던 흰둥이와 영영 이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맞닥뜨린다. 물론 이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짱구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흰둥이를 보살피기도 하긴 했지만 못살게 굴 때도 적지 않았던 아이인데, 짱구는 흰둥이와의 영원한 이별이 갑작스럽게 현실화되자 이에 완강히 저항한다. 흰둥이를 당연히 곁에 있는 동반자처럼 여기며 지냈던 시간들이 결국 짱구로 하여금 흰둥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것은 매우 교훈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난날 짱구와 흰둥이가 보냈던 장난기 어린 나날과 그 뒤에 숨었던 짱구의 진심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어른들도 눈물을 흘릴 만큼의 감동을 이끌어낸다. 결국 가장 소중한 존재는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를 새삼 느끼면서 말이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감동을 주는 또 다른 극장판으론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엔 아직 개봉되지 않은 2001년작 <태풍을 부르는 모레츠! 어른 제국의 역습>이 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제대로 된 감동작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이 영화는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공원을 통해 세계를 정복하려는 이들의 음모라는 소재를 통해 생각지 못한 애틋한 감정을 불러온다. 어른들이 과거의 향수에 취한 나머지 자신의 아이들마저 몰라 보는 상황은 생각보다 섬뜩하며, 이들이 결국 과거의 늪에서 깨어나 자신이 걸어온 삶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눈물 흘리는 순간은 생각보다 뭉클하다. 이 극장판 또한 거대 규모의 어드벤처물 형식을 빌려 우리가 걸어왔던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던 삶의 순간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인지를 깨닫게 한다. 이렇게 <짱구는 못말려>는 극장판에서 종종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수준의 내공을 발휘한다.
 
TV판만을 보며 <짱구는 못말려>가 띄엄띄엄 보면서 캐릭터의 귀여움과 황당한 웃음 정도 건질 만한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극장판을 보고 갑작스레 나온 눈물에 생각이 바뀔 것이다. 사실 이 시리즈가 팍팍하고 밋밋한 우리의 삶을 장난스럽지만 푸근하게 어루만질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짱구는 못말려>가 이렇게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런 초인적 능력도 없는 어린 꼬마와 그 가족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때론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을 드러내지만, 때론 그래도 결코 버릴 수 없는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짱구라는 짓궂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아이로 대표되는,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 종종 화끈한 모험을 펼쳐 보이되 이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허무맹랑한 환상을 일깨우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보석같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 그 설득력이 아이들을 넘어서서 어느새 어른들의 눈물까지 이끌어낼 만큼 힘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짱구라는 아이를 그렇게나 아끼는 이유다. 이런 멋진 아이와 그 가족을 만들어낸 작가는, 당연히 인정받아 마땅한 작가였다.
 
+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주제가 'Cry Baby'를 웬만하면 꼭 들어주시길 권한다. 아이들한테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멋진 가사를 지녔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21 13:00
kyi197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9-11-05 10:52
hooper
안그럴거같은데   
2009-09-28 16:11
boksh2
잘봤슴다   
2009-09-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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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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