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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속이고 속았으니 만사형통이라. 서프라이즈
evelen 2002-07-11 오전 2:10:39 1061   [0]
속이고 속았으니 만사형통이라.

- <서프라이즈(Surprise party)>를 '두 번' 보고 나서

  '여성 영화'라는 말이 있다. '영화' 앞에 '여성'이라는, 형용사도 아닌 명사가 일종의 수식어처럼 붙어있는 이 단어는 여러 영화제들을 중심으로 꽤나 큰 힘을 지니고 퍼져나가고 있다. 비단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들 속에 여성이 큰 축을 이루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가 많이 제작되곤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그리 높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지금 이 정도까지 읽은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여성의 지위가 낮다는 말인가? 정말 그럴까, 요즘은 오히려 여자들이 큰소리치고 사는 세상 아닌가?'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지위라는 개념은 일반적인 평등-불평등을 떠나서 여성의 위치가 결과적으로는 남성의 하위에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이다.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아래 글을 차차 읽으며 그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려보자. 실수투성이의(혹은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문제점을 지닌) 귀여운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이리저리 다니며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 다른 사람이 그런 일들을 벌이면 분명 크게 화를 낼 법한 일도 깜찍한 여자 주인공이 벌이는 실수들은 그저 웃어넘길 만큼 예쁘게만 보인다. 남자 주인공은 그런 여자 주인공을 처음에는 꺼려하다가도 나중에는 그 모습에 푹 빠져버린다. 그 둘은 어느 새 다정한 연인이 되고 극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대표적인 예로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소친친>, 그 외 맥 라이언이나 카메론 디아즈가 주연한 여러 로맨틱 코미디들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이런 영화들은 가볍고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 무언가 조금 껄끄러움이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남자주인공보다는 여자주인공 쪽이고, 대체로 그 영화들은 여주인공의 매력에 중심을 두고 서술되어진다. 그런데 그 매력이란 것이 왜 조금씩 어설프고 실수투성이여야 하는가? 왜 여성은 늘 귀엽게 보여야만 하는가? 좀 더 심한 경우에는 마치 일종의 관음증처럼 여성의 행동 거지를 관찰하고 계획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해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의 <후아유> 정도에서 그런 면모를 우리는 깊게 느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겉으로 언뜻 보기에는 아주 상큼하고 예쁜 사랑 영화이고, 보고 나오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짓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한 번 더 뒤집어 생각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해맑은 듯이 웃고 서 있는 남자 주인공도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그들을 스크린 속에서 만났다는 기쁨 하나만으로 즐겁게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 한 편, 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처음 <서프라이즈>를 본 것은 지난 5일, 첫 개봉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여주인공인 '이요원'을 상당히 좋아하는 터라, 오랜만의 새 영화가 전작의 실패(<아프리카>)를 덮고 일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도 주위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오히려 더 분주했던 첫 관람. 주위 반응은 꽤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뭔가 구조가 엉성한 느낌도 들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꽤 깔끔하게 잘 나와서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꽤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보며 극중에서 뭔가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퍼즐 맞추기 놀이를 하듯이, 하나씩 끼워 맞춰보았다. 그러다 뭔가 안 맞는 부분이 생기면 슥삭 슥삭 지워버리고 다시 또 한 번 생각하고... 그러다가 5일 후, 다시 <서프라이즈>를 보게 되었다.

  두 번째로 다시 <서프라이즈>의 표를 끊으며 함께 보는 사람이 과연 이 영화를 재미있어 할까가 좀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본 상태에서 손을 이끌고 들어서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영화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드디어 오프닝 크레딧이 오르고, 미령(김민희 분)과 하영(이요원 분)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고양이를 부탁해>스러운(이상하게도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 여자아이들이 함께 담소를 나누는 장면들이 보이기만 하면 모두 '고양이스럽다'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만큼 <고양이를 부탁해>의 이미지는 아주 강렬했다.) 몇 몇 장면들이 흐르고, 드디어 미령의 부탁으로 인한 하영의 엄청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예고편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물론 고양이는 하영(이요원 분)이고 생선은 정우(신하균 분)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나름대로 재미있고 어느 정도 생기발랄하다. 별로 우습지 않은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과도(!)하게 웃어대는 웃음 남발의 순간이 조금씩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등장한 공-공 커플(공형진, 공효진 분)의 감초 연기나 김민희의 순간 순간의 장면들도 극의 흐름을 재미있게 가꾸어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는 부분은 코엑스 몰에서 드디어 생선이 화나는(!) 장면이다. 이제 하영은 진실에 근접하기 시작했고, 하영의 진심을 알게 된 정우는 그 때부터 하영을 새롭게 보게 된다. 회전문 속에 갇힌 정우에게 하영이 "정우씨!"라고 소리치는 순간, 정우의 눈빛은 벌써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마음이 뒤흔들린 정우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하영을 속이기 시작한다. 하영은 아까와는 또 다시 역전된 상황에서 정우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상대는 결국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인 걸, 친구를 위해 이 한 몸 불살라 12시간 지령을 수행해내는 하영에게 있어 친구와의 의리는 결코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극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런 결과는 그들에게 있어 어느 정도는 껄끄럽고, 또 다시 어느 정도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하영이 화나게 되는 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기 때문.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먼저 속인 것은 하영이 아니던가.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어깨에 기대게 되고 화해무드를 조성한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약간 엉성한 구조로 된 익숙한 것의 재구조화 혹은 익숙함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영화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재치있고 심심풀이로 보기엔 적당한 정도의 가벼운 코미디 영화라는 정도? 그런데 두 번째 보면서는 극의 결과나 흐름을 이미 한 번 파악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화 곳곳에 스며있는 단서들을 모두 눈여겨볼 수 있었다. 미령이 남자친구에게서 문자메시지를 받는 장면이나, 남자친구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을 미령의 어머니가 발견하는 순간에서의 장면, 그리고 순간마다의 모든 장면들을 하나하나 포착할 수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처음 볼 때와는 또 다른 정말 새로운 느낌의 감상! 정말 이 영화는 '두 번 보기'를 추천한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여전히 하영의 속임은 친구의 부탁에서 기인한, 굳이 이름하자면 '착한' 속임이었는데 반해, 정우의 속임은 상대의 모든 정보를 정확히 보고 있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것은 모두 가린, 마치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데 안에서는 밖이 환히 보이도록 만들어진 유리 속에서 상대를 관찰하는 상태의 '나쁜' 속임이었다. 그렇게 언제나 로맨틱 코미디의 여성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남자에게 철저히 농락 당한다. (여자가 농락당한다는 것은, 김기덕의 <나쁜 남자>에서 육체적으로 농간당하는 것과 결국은 흐름을 같이 한다.) 그렇지만 남녀간의 연애라는 것이 결국은 상대에게 보다 더 아름답게 보임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속고 속임의 연속이 아니던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상대에게 사랑받는 자신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발견해나가는 과정과도 같은 것. 어쩌면 앞서 로맨틱 코미디 속에서의 여성의 지위 운운한 것도 모두 결국은 속고 속임의 과정 속의 한 부분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그 이유야 어찌 됐든 나도 상대를 속이고 상대도 나를 속였으니 모든 것은 공평해지는 것 아닌가. 불현듯 극중 하영의 대사가 떠오른다. "뭐, 두 사람이 좋으면 된 거죠. 제 생각이 중요하겠어요?"

(여담)

정우(신하균 분)가 하영(이요원 분)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뜬 번호, 016-210-0909
이리로 전화하면 혹시나 이벤트가 있나해서 걸어봤는데 아쉽게도..
제목처럼 "서프라이즈!"한 무언가가 튀어나오길 기대했는데..
뭔가를 만들어 주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하.^^

작품성 ★★★
오락성 ★★★☆
만족도 ★★★☆

20자로 요약하면 "가벼운 듯한 속의 무거움, 그까지를 알려면 두 번 이상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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