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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슴을 뒤흔들 사랑, 파주 파주
aura1984 2009-10-27 오전 10:29:04 6769   [1]

 

 

안개가 자욱히 낀 한 도시의 택시 안의 서우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김승옥의 작품 <무진기행>이 떠올리게 하였다. 영화 내내 한번도 맑은 날을 보여주지 않고 주구장창 어둡고 우울한 날씨만 보여주는 화면도 그렇지만, 어떤 사건직후 현실을 도망치듯 파주로 내려간 남자 주인공 중식의 모습은 흡사, 잠시 현실을 피해 무진시로 내려가는 <무진기행> 속 주인공 윤희중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한 처제와의 사이에서 도덕적 이상과 현실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식의 모습은 이상적인 삶과 속물적 현실 속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윤희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파주>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형부와 처제의 파격적이고 격정적인 멜로 드라마가 아니라 때에 따라 서로 피해자가 될수도, 가해자가 될수도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한편의 사회 드라마에 가까워 보인다. 주인공들이 사는 곳이 재개발 지역이고, 영화 후반부 철거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갈등이 심화되어 간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여주인공 은모의 성장 드라마로도 볼수 있겠다. 이 영화는  3번의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세월의 흐름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은모이다. 3번의 세월의 변화 동안 은모는 감정적으로나 외모적으로 변화를 겪으며, 그러한 은모의 변화는 고스란히 화면에 드러난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중식의 경우 아무런 변화가 없다. 3번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중식은 외모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크게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서툴고,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이것은 어쩌면 중식과 은모에게 파주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전혀 다른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식에게 파주는 어떠한 사건을 피해 도망쳐 온 현실로부터의 피난처이다.  <무진기행>의 무진처럼 자신의 현실을 벗어난 이상적인 공간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은모에게 파주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즉 현실이 된다. 그래서 중식은 영화 내내 파주에 안주하고 살아가지만 은모는 그곳 파주에서 도망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커다란 사건을 겪게 된다. 은모가 두번째로 사라진 곳이 바로 정신수양의 나라 인도라는 설정만 보더라도 결국 은모가 파주를 떠난다는 행위는 그녀가 현실을 잠시 벗어나 이상적인 곳으로 잠시 도망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그 곳 파주, 현실속으로 들어오고 조금씩 성장해 간다.   

중식이 파주에서 하는 일이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재개발 지역의 철거민을 위한 일을 한다는 설정 또한 그에게 파주가 현실이 아니라 이상적인 공간에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식과 대연의 관계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중식은 한때 다른사람들에게 전도를 할만큼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파주에 흘러들어오긴 전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신앙활동도 하지않았고, 죄를 지으면 살아왔다. 그러한 그가 도망치듯 들어온 파주에서는 다시 교회에 다니면서 지역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소시민들 삶을 위해 살아가면서 기독교의 정신인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현실에서는 제대로 행하지 못했던 기독교적 희생을 중식은 현실을 도망치듯 들어온 파주에서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식에게 파주는 속물적인 현실이 아니라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상적 공간에 가까운 것이다.

 

 

 

 

영화 <파주>는 지금까지 봐 온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격정적이다. 형부와 처제 사이인 은모와 중식은 서로의 감정을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표현하지 않지만, 그들이 내면적으로 보여주는 감정의 표현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은모와 중식은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들이다. 은모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언니와 함께 살아가며 언니의 사랑만을 받고 살아온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은 여고생에 불과하며, 중식은 여전히 첫사랑 그녀의 주위를 멤도는 몸은 어른일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아직 소년의 시기에 머물러있는 그런 상태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 제대로 확신을 갖지 못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딱 한번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들의 감정을 서로 고백하는데 그 고백 또한 매우 서툴다.  그로인해 서로의 감정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치닷는다.  결국 은모와 중식 모두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써 여전히 서툰 감정 표현으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만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감정은 두 배우 서우와 이선균의 안정된 연기로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이선균의 데뷔 후 첫 베드신까지 찍으면서 처제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내면적으로 갈등하는 남자 주인공의 감정을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 전달하고 있으며, 서우 역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연기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특히 서우의 경우 발랄한 여중생의 모습에서 성숙한 20대 여인의 모습까지 한 영화에서 상반되면서도 점차 감정적으로 성숙해 가는 주인공 은모의 모습을 안정적으로 연기해내고 있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 연예인 '서우'이 아닌 배우 '서우'로 살아갈것임을 또 한번 대중들에게 드러내고 있다.

 

조연들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초반부 중식과 은모를 형부와 처제의 관계로 만들어준 은모의 언니 역할의 심이영이나, 중식의 첫사랑 역할로 중식의 인생에서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김보경, 대사 한마디 없지만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경영, 중식의 아는 형이자 영화 속에서 본명 그대로인 대연으로 나오는 이대연, 그리고 그동안 <탐나는도다><올드미스다이어리> 등 일련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코믹한 상황연기를 자주해온 우현씨의 진지한 연기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 전체에 힘을 더하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간 배우는 바로 은모의 친구 미애 역할을 맡은 배우 김예지이다. 검색사이트 검색에조차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그는 영화속에서 방황하는 은모의 옆에서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지켜주는 유일한 친구 역할을 꽤나 인상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박찬옥 감독은 데뷔작 '질투는 나의힘'을 통해 섬세한 일상을 영화에 담아내더니 두번째 영화 '파주'에서는 인간 내면의 도덕과 윤리, 그리고 사랑의 감정들이 함께 부딪히는 주인공들이 모습을 통해 가해자가 나도 모르게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 또한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인간의 삶에 대해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은모는 갑자기 나타는 중식으로 인해 자신이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결국에 이야기를 파국으로 치닷게 만들지만, 표면적으로 보면 은모는 가장 큰 가해자이다. 그리고 중식은 영화 내내 은모에게 있어 늘 미안해 하는 가해자처럼 살아가지면 그 이면에서 보면 가장 큰 피해자이다. 이렇듯 영화는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어 버린 두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결국 우리의 삶 또한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도 모르는,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안개같이 자욱한 우리의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필자는 영화의 엔딩 장면을 보면서 '설마 여기서 끝이야, 안돼, 제발~'이라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영화는 너무도 많은 것을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둔채 끝을 내 버린다. 은모와 중식이 정말 사랑을 하긴 한건지, 했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건지, 그리고 파국으로 치닿은 그둘의 관계 혹은 사랑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 너무도 많은 질문을 남기고 영화는 끝나 버린 것이다.  그 답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남긴 채 말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았는데 영화 상영후 이어진 GV시간에 대부분의 질문이 박찬옥 감독님에게 집중되었다는 점만 보더라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과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끝냄을 알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실로 오랜만에 일이다.

아마도 몇년 전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본 후로 처음인것 같다.

좋은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만큼 가슴 뛰는 일인 것이다.

사실 이 영화 <파주>는 쉬운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렵고 심각한 영화도 아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매우 무거운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주인공들의 감정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그 어느영화보다 긴장감을 느낄수 있는 영화이다.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를 완벽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보고 나면 많은 것을 생각해 볼수 있는 그런 영화이다.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영화. 바로 <파주>이다.


(총 3명 참여)
d9200631
이건 어디 선가의 영화평이군요   
2010-03-30 15:10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19 17:24
kiwy104
서우...킹왕짱^*^   
2009-11-11 09:58
sookwak0710
그정도 까진 아닌거 같은데요 ㅡ.ㅡ   
2009-11-11 08:59
beautifulc
아 역시나 한번 보고는 이해가 안됫었는데, 이글을 보고나니 영화의 장면들이 많이 수긍이 가네요 감사합니다   
2009-11-08 17:36
kooshu
진짜 궁금해요   
2009-11-07 20:16
kyi1978
와우 잘 읽었어요   
2009-11-05 18:12
kimshbb
절러하네요   
2009-11-03 12:41
brevin1
서우.......   
2009-11-02 01:18
nampark0209
이선균님께서 3번은 봐야한다고 했던 영화에요^^ 그만큼 이해가 필요하다는거겠죠..   
2009-11-01 23:06
wjswoghd
싸하네요   
2009-11-01 20:02
kwakjunim
와...글재주가 대단하시네요 잘읽었어요^^   
2009-11-01 13:18
goory123
그런가요..좀 난해한가봐요...   
2009-11-01 12:53
hoya2167
뭐..그냥 보통인듯했습니다.   
2009-10-31 23:14
yiyouna
괜찮을것같네요   
2009-10-30 21:27
hmaljw
글쎄...   
2009-10-30 09:57
fa1422
기대...   
2009-10-30 00:51
seon2000
...   
2009-10-30 00:46
fkcpffldk
난 이영화 어려웠는데;;   
2009-10-29 16:18
jalnanchuk
섬뜩해보여   
2009-10-28 16:04
monica1383
음   
2009-10-28 07:36
sasimi167
기대되네요   
2009-10-28 02:15
wjswoghd
사랑하고파   
2009-10-27 19:37
verite1004
기대됩니다.   
2009-10-2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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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2009, Pa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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