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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가슴이 아리다... 굿바이 그레이스
ldk209 2009-10-28 오후 2:57:16 1132   [0]
보는 내내 가슴이 아리다....★★★☆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진보파 배우, 시니컬하고 삐딱한 젊음의 상징인 듯 보였던 존 쿠색이 어정쩡한 걸음걸이와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모습은 가까이 올 때까지도 존 쿠색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 있었다. 이건 단순히 변장(?)을 잘했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연기가 극중 인물에 대단히 밀착해 있다는 의미다.

 

스탠리 필립스(존 쿠색)는 시력을 속여가면서 군에 입대했으며,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시력을 속인 것이 들통 나 군에서 제대한 이후엔 대형 매장에서 근무하며 두 딸을 낳아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이며, 애국주의자다. 이런 그의 정체성은 이라크 전쟁의 진실, 즉 이 전쟁이 미국의 자유와 안전에는 하등 관계가 없는 전쟁이라는 사실이 까발려지는 상황에서 크게 흔들리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매장으로 출근하려던 어느 날, 스탠리는 아내의 전사 소식을 듣는다. 너무 큰 충격에 도저히 아이들에게 엄마의 전사 소식을 전하지 못한 스탠리는 아이들과 충동적인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그리는 방법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굿바이 그레이스>에서처럼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이 전쟁으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하는 영화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며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로 느리다. 아내의 죽음을 제외하곤 특별한 사건은 전혀 발생하지 않으며, 영화의 거의 대부분은 엄마가 죽었는지 모른 채 놀이공원에 간다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슬픈 눈망울뿐이다.

 

<굿바이 그레이스>의 여러 장점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이라면, 과거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플래시백 장면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단지 현재의 모습만을 담으면서 슬픔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죽은 아내, 엄마의 모습은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 한 장과 가족들의 대화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우직하게 정공법을 택했다는 건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며, 이 차원에서 나는 가끔 한국 영화가 너무 플래시백을 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영화 <식객>의 경우)

 

한편, 영화는 가끔 또는 자주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스탠리와 두 딸이 탄 승용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포장도로를 달리기도 하며, 도시를 달리기도 하고 시골길을 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낮이기도 하고, 밤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모습은, 아니 이렇게 여행하는 아버지와 두 딸의 모습은 엄마가 부재한 가운데 이들 셋이 앞으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여행은 스탠리가 진정한 아이들의 보호자로서뿐만이 아니라 같이 살아갈 동반자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과정으로서 기능한다. 아내의 전사 소식을 듣기 전 스탠리의 모습은 전형적인 군 출신 가부장적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대화는 없고, 명령과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는 아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포지션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스탠리는 아내의 역할도 병행해야 한다. 한밤중에 담배를 피는 하이디(셀란 오키프)의 모습을 보고 그가 선택한 선도방법은 이제 그가 아내의 부재를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또 하나, 이 영화의 장점은 영상에 어우러지는 음악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음악은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심추로서 손색없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뒤로 흘러나오는 단순한 피아노 선율과 어쿠스틱한 음악은 슬픔을 더욱 짙게 하며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굿바이 그레이스>가 주는 가장 무거운 메시지는 단연코 반전이다. 흘러간 역사로만 전쟁을 대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위정자의 논리에 휘말려 들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부터 전쟁을 단지 수치화시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전쟁기간 몇 일에 사망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이런 식으로 정의되는 전쟁이라면 그 어떠한 아픔이나 고통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단지 그 정도 희생을 치르고 승리했다는 식의 실용적 마인드, 사실은 천박한 승리주의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단 한 명이 사망했다고 해도 그 한 명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 무게는 결코 작지 않은 것임을 이 영화는 일깨워준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19 17:13
jhee65
사진으로도 슬퍼보여요   
2009-11-17 21:4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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