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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날카롭게 생채기를 남긴다... 걸어도 걸어도
ldk209 2009-11-04 오후 2:50:30 1069   [2]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날카롭게 생채기를 남긴다... ★★★★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형에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 집에 들어와 살고 싶어 하는 장녀 지나미(유) 등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대하고 앉지만, 화목해 보이는 웃음 뒤로 묘하게 불편한 기운이 가족 사이를 비집고 흐른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영화 중의 하나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였다. 엄마 또는 어른이 부재한 아이들의 표정을 그렇게까지 아프게 담아낸 영화가 있었던가.(최근 <나무없는 산>과 <여행자> 등 한국 영화의 잇따른 성과를 제외하고) 아이들의 표정을 담았던 그의 카메라는 이제 오래 전 장남을 잃은 상실감,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가족들의 표정과 그들 사이를 흐르는 날카로운 상흔을 담아낸다.

 

<걸어도 걸어도>는 딱히 특별한 이야기나 사건 없이도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예 중의 하나다. 매년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모이는 가족들은 퉁명스러운 아버지(하라다 요시오)의 뒤에서 핀잔을 늘어놓고, 다 큰 자식들은 여전히 엄마(키키 키린)에게 칭얼대며 떼를 쓴다. 사실 영화의 시놉시스를 미리 읽지 않고 이 영화를 본다고 한다면 대체 이 가족이 왜, 무슨 이유로 한자리에 모이게 됐는지를, 그리고 가족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지는 영화의 초반부에 알기 힘들게 되어 있다.

 

즉, 가족들의 대화는 관객의 이해의 지평을 서서히 넓혀가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족들의 대화는 많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주 조그만 단서들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바로 가족의 본질에 대해 관객 스스로 반추하게 한다.

 

가족은 누구보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존재다. 이미 버려졌을 것으로 알고 있던 오래된 물건들이 자신도 모르게 보관되어 있고, 욕실의 부서진 타일 조각에도 마음이 쓰인다. 옥수수가 튀겨지는 소리에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회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가족인 것이다. 반면, 가족은 서로에게 날카로운 생채기를 남긴다. 부모는 장남에 대한 기대와 차남에 대한 실망을 의연 중에 드러내고, 차남 료타는 형에 대한 미안함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허둥댄다. 인자한 어머니는 사위에 대한 불신으로 들어와 살겠다는 딸의 요청을 거부하고, 며느리와 손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에둘러 표현한다. 아내는 오래 전 남편의 바람피는 현장을 확인했으면서도 지금까지 가슴 속에 묻어둔 채로 좋은 부부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은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서로의 생채기를 부여안은 채 두루뭉실 봉합된다. 그 속에서 상처는 썩을지언정 단절되지 않는다. 가족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은 이렇게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족 구성원들의 가슴 속에 겉으론 보이지 않는 깊은 인장을 남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자면 너무나도 인자한 듯한 어머니가 장남이 죽은 대신 살아난 아이가 돌아간 뒤 차남과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료타가 “이제 그만 불러도 되지 않아? 우리 만나는 게 힘들어 보인다”고 하자, 어머니는 뜨개질하던 그 모습 그대로, 차갑고 무심한 표정으로 “그래서 부르는 거야.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하는 거야. 그 애를 겨우 1년에 한 번 괴롭힌다고. 내가 벌을 받지는 않을 거야”라며 답한다. 어머니의 대답은 자식을 잃은 엄마로서의 아픔과 함께 등골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느낌을 동시에 준다.

 

가족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운,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날카로운 생채기를 남긴다는 면에서 보면 <걸어도 걸어도>는 미국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를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레이첼 결혼하다>가 끝내 화합과 희망으로 마무리되었다면, <걸어도 걸어도>는 아무리 가족이라 하여도 쉬운 화합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생은 늘 아주 조금 어긋난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17 20:10
ekduds92
잘읽었어여~   
2009-12-08 20:03
kki1981
ㄳ   
2009-11-18 18:48
jhee65
리뷰 제목이 인상적이네요   
2009-11-17 21:41
kyi1978
ㄳ   
2009-11-06 16:12
ekduds92
잘읽었어요...   
2009-11-05 11:04
snc1228y
감사   
2009-11-04 16:1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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