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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감상입니다 레퀴엠
grovenor 2002-07-14 오전 2:54:18 1901   [4]



<레퀴엠>






0.
[레퀴엠]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전제조건은 관객과 감정의 교류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퀴엠]은 영화가 아니다.





1.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영화 <레퀴엠>에 온갖 미장센을 다 동원한다. 화면분할, 고속, 저속촬영, 네온 조명, 극단적인 클로즈 업, 배우의 몸에 부착한 카메라, cctv처럼 보이는 효과 등등 mtv에서도 보기 힘든 파격적인 방법은 다 동원한것으로도 모자라 삽입할 수 있는 기계음은 모조리 효과음으로 삽입했다.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역시 자극적이다.


정말 훌륭한 것은 이 모든 방법을 하나의 목표 아래에 놓고 효과적으로 썼다는 사실이다. 자극적인 미장센을 구사하는 감독은 많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쓰는 감독은 많지 않다. [레퀴엠]은 미장센 과포화 상태인데도, 모든 것이 정확하게 배열되어 있다. 영화의 모든 요소를 하나의 목표 안으로 넣었다는 건 단순한 칭찬거리 이상이다. 이건 감독 아로노프스키가 영화가 무엇인지 그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영화를 '다룰줄'안다는 뜻이다. 영화를 다룰줄 아는 건 거장들뿐이다. 이제 두 번째 작품을 냈을뿐인 33살의 젊은 감독은 자신이 거장인 것을 증명해보인 것이다.





2.
[레퀴엠]은 중독, 특히 마약 중독에 관한 영화이다. 마약을 하지 말 것 - 하면 결국은 파멸. 그것이 주제이자 영화의 목표이다. 관객에게 줄수 있는 정서적 충격은 모두 줘서 마약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영화(와 영화 속 장치)의 목표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한 요소들은 모두 소름끼치도록 효과적이다. 요소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영화를 보고 그 충격을 직접 겪어보라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레퀴엠]은 훌륭한 영화이다.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했으니까.


문제는, [레퀴엠]이 너무나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3.
[레퀴엠]의 저변에는 나약한 인간성에 대한 냉소가 깔려있다. 영화는 마약을 하게된 계기와 그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인간의 나약함으로 설명한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인간성이 나쁘거나 범죄자여서가 아니다. 우연히 마약을 시작했다가 끊지를 못한 것이다. 나약하기 때문에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의 정서적 임팩트가 강한 이유가 이런 전제 때문이다. 감독이 공략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그는 인간의 기본 성질을, 특히 나쁜 일을 저지르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도덕 판단의 결여를 나약함으로 놓고 그것을 공격한다. 공격 방법 역시 나약함과 정반대되는 대처법, '충격'이다. 나약한 존재에겐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그래봤자 시간 낭비일테니 그냥 무지막지하게 감정을 까뒤집어놓는 것이다.



감독 아로노프스키에겐, 영화 [레퀴엠]에겐 '우월한 존재의 냉소'가 묻어있다. 감독이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물론 잘 모른다. 하지만 mtv에서나 쓸만큼 파격적인 미장센을 과포화 상태로 밀어넣고 그것을 한 개의 목표 아래에서 어울리도록 조율하는 능력과, 그 능력을 직접적으로 과시한 것, 과시의 이유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고 그 목적라는 것이 인간의 나약함을 공격하는 것 등을 고려하면, 감독이 적어도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마취된채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사람에겐 인간성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체중, 노화상태, 성별등 동물로서의 특징만이 중요할 뿐이다. 고문기구 위의 인간은 존엄성 없는 '동물'일 뿐, 존중받는 '인간'이 아니다. 아무리 존엄하고 고귀한 사람이라도 죽어서 시체 안치실로 들어가는 순간 몇십 킬로그램짜리 단백질 덩어리가 되고만다. 분명 인간이었던 존재를, 지구상 어떤 것과도 바꿀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있던 존재를 단백질 덩어리로 취급하는 차가운 시선, 그 무지막지한 시선이 영화속에 존재한다. 감독에게 있어서 관객은 정서를 갖고 있는 개개인이 아니라 그저 계몽대상에 불과한 불특정 다수의 무지한 존재들이다. 관객을 한 개의 실험대상으로 삼고 자신이 가진 모든 기구를 동원해 관객에게 정서적 충격을 줘서 마약을 못하게 하는 것이 감독의 목표이며, 목표를 실행하는 동안에는 일말의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나약함을 냉소하고 그 나약함이 없기 때문에 더 우월한 시선으로 타인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재에게 동정심이 있을턱이 없다. 메스를 들고 있는 손이, 고문기구를 움직이는 손이, 영안실의 문을 열고 닫는 손이 인간을 동정할리 없다. 그 손들은 그저 '목적'을 위해 인간성을 배제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이 없는, 기계의 마음으로 움직이는 손일 뿐이므로…… [레퀴엠]은 인간의 마음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 기계의 마음으로 만든 영화이다.





5.
영화는 관객과 영화(와 영화의 창조자)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나누는 감정의 교류이다. 그 감정의 교류는 수준 높은 것일수도, 유치한 것일수도 있고,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집단적인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오해도 있을 수 있고, 짝사랑 역시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쌍방향으로 다양한 감정의 교류가 있기 때문에 영화는 가치있으며 그 생명력을 보장 받는다. 영화는 유형의 '상품'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한 사람의 마음이나 기억속에 무형으로 존재하는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가 관객과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전제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레퀴엠]에는 감정의 교류가 없다. [레퀴엠]은 관객을 설득하지 않고 고문한다. 관객의 동의없이 머릿속을 휘저어 놓으며,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목표를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서의 기능만 충실할 뿐 어떤 배려도 동정심도 없다. [레퀴엠]은 영화가 아니다. 그건 의사가 쥔 메스이거나, 고문도구 이거나, 시체의 발에 묶인 인식표 같은 것이다. 인간과 단백질 덩어리의 차이점을 묻게 만드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냉소적인 천재의 씁슬한 발명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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