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미래지향적인 듯한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도 나이를 먹어갔고 그의 만화도 따라서 역동적이고 암울한 암시성으로부터 차분하고 밝고 활기찬 조언으로 변모하는 듯 하다. 특히나 두드러지는 것은 이웃의 토토로, 원령공주같은 작품으로 내비쳤던 자연친화적이고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그의 스타일 변화이다. 그런 점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전작에 이어 미야자키의 새로운 만화 흐름에 아주 크게 일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요즘 시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중심이 되고 있는 일본 만화계의 대부인 미야자키가 아날로그식의 회귀(혹은 그를 동경)를하고 있다는 것은 이번 작품에서 확실해진 변화이자 새삼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입장이 느껴지는, 다시 말해 디지털에서의 이탈을 꿈꾸는 그의 입장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극중 치히로의 부모님을 보면 우연찮게 들어오게된 귀신마을에서 맛있는 냄새를 맡고 그 냄새가 나는 곳을 동물적 감각으로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는 발견한 식당에서 주인도 없는데 눈 앞에 보이는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기 시작한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식성은 마침내 그들을 돼지로 변하게 만든다. 영국 밴드 Suede의 노래 'We are the pigs'에서 처럼 인간은 끝없는 물질욕망에 휩싸이고 그것은 마치 아무리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픈 돼지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것이 미야자키가 피력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점도 아주 감각적으로 꼬집고 있다. 귀신세계의 목욕탕에 오물신이라는 것이 목욕을 하러 오는데 모습도 흉측하고 외양도 지저분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목욕도중 센(치히로)의 도움으로 온갖 쓰레기같은 것들을 몸밖으로 끄집어내더니 깨끗한 강의 신으로 되돌아간다. 이건 사람들이 갖가지 쓰레기로 강을 오염시켰다는 말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덧붙여 미야자키 감독이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오물신 강의신과 같은 소재를 사용한 것, 나아가 치히로네 가족이 들어가게 되는 귀신 세계에 온갖 일본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귀신들이 즐비한 것. 이런 것 또한 전통(과거)으로 한발짝 다가서려는 미야자키의 힘찬 발걸음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히 드러나는 이 작품의 열쇠는 '이름'이다. 이름이란 뭐를 뜻하는가. 바로 나를 대신하는게 이름이 아닐까. 나를 부를 때 다른 사람들이 손태겸! 하고 불러주는 것 처럼 이름은 나를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이자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것. 혹은 그 자체이다. 이 작품에서 귀신세계의 착한귀신들은 치히로에게 너의 본명을 기억하라고 수없이 조언해준다. 치히로를 가장 많이 도와주었던 하쿠도 본명(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인격체로 변해가고 있다.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의 주역인 디지털.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디지털은 모든걸 급격히 변화시키고 그 중심이 되는 컴퓨터는 많은 사람들을 마치 치히로의 가족을 이끌 었던 것 처럼 인간을 집어삼키고 있다. 그리고 그로인해 한사람의 인격이라는게 안타깝게 소실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 머무른 미야자키는 이런 느낌을 가지고 괴리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획일화 되가는 인간, 감정이 없어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일침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속엔 많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자기의 이름(정체성)도 모른채. 뿐만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면 감정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우린 쉽게 볼 수 있다. 이대로 가다간 하쿠처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사이에 흉폭해져 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다른 사람눈에 돼지로 비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작품은 정체성을 잃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본명을 되찾아주고 있다. 나 역시 이 작품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작용 뒤에는 현란한 색감과 움직임, 요새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며 땀흘렸을 감독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등장인물이자 감독의 양념구실을 하는 캐릭터가 얼굴 없는 요괴 이다. 그는 열심히 또 착하게 일하며 지내던 목욕탕 노동자들을 순간 돈에 눈먼 추한 모습으로 한순간에 바꾸는 힘을 그는 가지고 있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10살짜리아이에게 조차 금을 권유하는 무서움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잡아먹어야만 말을 할 수 있고 그로인해 순진한 사람들이 점점 잡아먹히고 있다. 이건 그야말로 변화하는 이 시대의 형상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엔 얼굴이 없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나는 채팅을 하고 있는 상대방의 얼굴 조차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라는것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그로인해 나타나는 폐단으로 순진한 아이가 유혹당하고 사람들이 돈에 눈멀고 시대는 다시 그사람들을 치워버리고 있다. 얼굴 없는 요괴는 목욕탕 밖으로 나와 많은 것들을 토해내고 나니 순하기 그지없는 성격으로 바뀐다. 지금 이 시대가 그래야 할 것이다. 요괴처럼 느릿느릿하고 차분하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줄 아는 마음을 길러주는게 사회가 아닐까.
미야자키 감독의 통찰력은 만화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꿰뚫어 보는 듯 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어떤 작품보다 뛰어난 듯한 이 작품에서 감독은 단지 만화의 즐거움, 귀여운 캐릭터들의 모험담 뿐이 아닌 자신의 입장을 철저히 관철 시킴으로서 한층 깊어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은퇴를 주장하던 감독이 다시 돌아온데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최고로 군림하게 된 이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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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에 질린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말이죠.
2002-07-22
02:01
정말 잘 읽었습니다.^^ 센과~를 보고 CG가 약하다는 평을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이 작품에 과도한 CG가 쓰였다면 감동은 반으로 줄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