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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보다 웃음에 대한 욕심 걸프렌즈
jimmani 2009-12-13 오전 2:14:02 1361   [0]
 
영화에서 본 게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영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때도 적지 않다. 내 주변에선 쉽게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데 그걸 보며 공감할 때가 그렇다. 연애의 경우만 해도 우리는 영화 속에서 살짝 비정상적인 관계를 펼치는, 현실에서 만난다면 껴안기 쉽지 않을 인물을 보면서 어느 순간 '그럴 만도 하겠다'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이런 경우는 영화가 설파하는 그럴싸한 논리에 관객이 쉽게 설득당하는 경우다. 관객이 생각하기엔 공감하는 것 같지만 엄연히 현실과는 다른, 그저 영화니까 어느 정도 허락되는 판타지인 셈이다. 일례로 <아내가 결혼했다>의 경우, 손예진이라는 배우와 유들유들한 각본이 아니었다면 (특히 남성관객이) 여주인공의 주장에 쉽게 수긍할 수 있었을까.
 
<아내가 결혼했다>의 상대적인 소프트 버전인 <걸프렌즈> 또한 이러한 맥락 위에 자리잡고 있다. 한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세 여자가 친구 사이가 된다는 설정. 글쎄,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현실에선 쉽게 상상하기 힘든 관계다. 이렇게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를 제시하며, 공감대라는 걸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영화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만약 이 영화가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역시 영화 내용 안에서만 유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쉽게도 <걸프렌즈>는 이만한 공감대도 영화 속에서 썩 유능하게 구현해내지는 못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공감과는 별개의 문제다.
 
김광석의 노래 제목처럼 '서른 즈음에' 놓인 29살의 송이(강혜정)는 회사 동료인 킹카 진호(배수빈)와 회식 후 술자리에서 급작스런 키스를 하게 된다. 이후 관계가 급진전된 두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같은 연애를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진호가 새파란 대학생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리고 송이는 진호와의 여행길에서 몰래 진호 휴대전화에 적힌 의문의 여인 '진'의 번호를 따온다. 그렇게 연락이 닿아 송이는 '진'과 만나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국내 손꼽히는 파티 플래너로서 모든 걸 가진 화려한 삶을 사는, 심지어 갑부 남편까지 둔 세진(한채영)이었다. 뒤이어 언제부턴가 놀라운 붙임성으로 송이의 집에서 수양딸마냥 지내는 '문제의 대학생' 보라(허이재)까지 만난다. 한 남자를 두고 꼬이게 된 세 사람. 송이는 상식적으로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관계를 쌓아가는 두 여인들이 영 신경쓰이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우정은 우정이고 연애는 연애다.
 
 
연애 문제를 둘러싼 동성 친구간의 이야기를 너무 어둡게도 너무 선정적으로도 그리지 않고 적당히 발랄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싱글즈>와 일맥상통하다고도 볼 수 있는 <걸프렌즈>는 그보다 코미디적인 특성이 강하다. 심심치 않게 살짝 과장된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주연 배우들의 모습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조연배우들의 포진, 그리고 심심하다 싶으면 등장하는 카메오들의 존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선 코미디라는 장르와 호흡을 맞춰본 적이 별로 없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비교적 만족스럽다. 영화에서는 좀처럼 그러지 않지만 토크쇼 등에 출연할 때면 발군의 유머감각을 뽐내는 강혜정은 이 영화에서 확실히 코미디 연기를 잘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보다는 연기 잘 하는 배우는 코미디 연기도 잘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테지만) 셋 중에 사실은 가장 늦게 끼어든 인물이지만 경쟁심과 질투는 가장 심한 송이의 천방지축 캐릭터를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해낸다. 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세진 역의 한채영은 예의 완벽녀스러운 자태를 훌륭하게 뽐내면서도 중간중간 짧지만 강하게 망가지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송이의 상상신에서 사극 연기를 할 때가 가장 인상적으로 망가지는 순간이다. 비주얼과 재미 둘 다 놓치지 않은 셈이다. 보라 역의 허이재는 웃음 코드는 가장 덜 두드러지지만 붙임성 좋은 막내 이미지를 건강하고 보기 좋게 소화해냈다. 이전 작품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보이시한 이미지도 꽤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줬다.
 
요즘 들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바쁘게 누비고 있는 배수빈은 이 영화에서도 세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남자 역할로 매력을 뽐내는데, 역할 특성상 연기보다는 매력남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두드러지는 편이다. 바람둥이같으면서도 마냥 미워하기에는 꽤 사랑스러운 남자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조연배우들은 주로 웃음 포인트를 책임지는데, 송이의 절친 현주 역의 조은지,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송이 엄마 역의 김혜옥, 외국 남자와의 결혼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은 송이의 회사 동료 역의 최송현, 원래는 주책맞으면서 회사에서는 괜히 권위 있는 척하는 송이 회사 부장 역의 김광규 등이 영화가 주는 웃음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더불어 황현희, 2NE1, 손호영, 손정민, 오달수 등 화려한 카메오 출연진들도 양념처럼 얹혀져 있다. 이처럼 감초 조연과 카메오 출연진들이 화려하게 포진되어 있지만, 이 부분이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현실적인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는 다소 소모적인 코미디에 더 가깝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의 감독인 강석범 감독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과 <해바라기>를 통해 웰메이드까지는 아니지만 대중영화로서 무리없는 완성도의 결과물들을 내놓았었는데(그래서 그가 <정승필 실종사건>을 내놓았을 때 '이 감독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었었다.), <걸프렌즈> 역시 대중적 재미면에서는 일정 부분 제 값을 한다. 좀처럼 망가지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여배우들이 신명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연애와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해 성인 취향의 웃음도 적잖이 선사한다. 감초 조연들은 이야기 외적인 다양한 웃음으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거는 기대가 이 부분에만 국한된 건 아닐 것이다. 이런 부분만 충실히 채워준다면 이 영화를 보나 여타 코미디물을 보나 다를 바가 없다. 연애 문제를 둘러싼 세 여자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데다 원작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이홍)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걸프렌즈>는 발칙한 전개로 재미와 동시에 공감대를 이끌어낼 로맨틱 코미디물일 것이란 기대를 하게 만든다. 우리가 거는 진짜 기대는 이 부분이다.
 
물론 영화는 이런 부분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29살 송이는 시작부터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고민거리를 던지면서 별 한 일도 없이 서른을 앞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고, 연애나 직장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자리잡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종종 반추하곤 한다. 연애에 대한 관심은 곧 진호를 둘러싼 골치 아픈 관계로 이어지고, 직장에 대한 갈망은 곧 백조 신세로 이어진다. 송이의 처지 뿐 아니라 세진과 보라를 통해서도 처지가 조금씩 다른 여자들이 겪는 각자 다른 고민을 골고루 비춘다. 세진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범한' 첫사랑 진호에게 아직까지 매달리는 모습을 통해 내면에 자리하고 있을 결핍을 예감케 하고, 보라는 진호에게 여자이고 싶지만 여전히 어린 동생 취급받는 모습을 통해 갓 성인이 된 여자의 당연한 욕망을 암시한다. 이렇게 송이와 세진, 보라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만난 세 여자라는 점에서 부딪칠 부분만 있어보이지만 실은 처지도 다르고 각자 안고 있는 고민도 다르기 때문에 다투기보다는 보듬어 줄 부분이 더 많아보이는, 친구가 되기에 썩 괜찮은 사이다.
 
그러나 이렇게 훈훈한 우정이 될 수 있었을 관계에 남자가 끼어들면서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가 된다. 이걸 잘 요리했다면 영화는 연애에 대해 여자들이 갖고 있는 경쟁 심리와 질투, 그 이면에 숨은 각자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꽤 그럴 듯하게 비춰주는 괜찮은 페미니즘적 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걸프렌즈>는 이 정도까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는 이런 공감대보다는 더 많은 웃음 포인트를 심는 데에 욕심을 부린 듯하다. 영화의 대사가 전체적으로 능수능란하긴 하지만, 정작 세 여자의 갈등을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대사나 감정을 통해 미묘하게 드러내기보다 과장된 슬랩스틱 코미디를 더 활용한다. 보이지 않는 심리전보다는 대놓고 질투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는 정도에서 그친다. 송이의 친구 현주의 역할 또한 과장된 캐릭터로 영화에 웃음을 더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객은 현실적인 공감보다는 소모적인 웃음을 얻는다. 웃기니까 재미는 있지만, 관객이 굳이 원하진 않을 재미인 셈이다.
 
 
차라리 현실적 고민같은 요소를 시치미 뚝 떼고 없애버린 채 화려한 유머 구사에만 집중했다면 확실히 웃겨주는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은 어느 정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고민을 나누고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일말의 여지를 남기면서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하고 만다. 영화 속 이야기의 화자라고 할 수 있는 송이의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전개되는 형식에서부터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종종 이 나레이션을 통해 송이가 서른의 문턱에서 겪는 불안과 초조, 다른 인물에 대한 공감을 일정 부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곧 이러한 심리상태 조명은 이후 진호의 여자가 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 묻히고 만다. 이렇게 송이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진호를 둘러싼 다툼에서 무언가 확실한 결과물이 나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는 최대한 쿨한 컨셉트를 유지하려 했는지 세 여자와 한 남자의 대립은 생각보다 시시하고, 결말 또한 인도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끝맺음이 줄 수 있는 임팩트를 상당 부분 상쇄시킨다. 스물아홉 여성의 심리도 살짝 훑는 수준에서 지나가고, 애정관계를 둘러싼 다툼도 불꽃이 튀다 만 상황에서, 영화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확실하게 공감이 가지는 않는 쿨한 결말로 흘러간다.
 
배우들의 연기도 적극적이고 보기 좋고, 웃음도 알차고, 대사도 상당히 쫀득하지만, 그럼에도 <걸프렌즈>가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충분히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공감되는 여성 코미디'의 길보다는 '풍부한 웃음이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무난한 길을 택했고, 그 결과 무난한 재미를 지녔으나 공감은 글쎄, 할 만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면 그것은 영화가 시작부터 효과적인 논리와 감성을 쌓아오면서 나온 결과물에 절로 공감해서라기보다는, 의례적인 결론에 마지못해 설득당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한 코미디 영화는 웃음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영화가 꼭 안고 가야 할 것은 웃음보다 공감이었어야 했다.

(총 2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15 17:30
sopia7609
코미디도 아니고   
2009-12-27 15:20
wolf1980
그렇군요   
2009-12-27 15:07
sarang258
잘봤습니다   
2009-12-15 15:13
snc1228y
감사   
2009-12-14 10:58
podosodaz
잘 읽었습니다   
2009-12-14 10:06
h6e2k
이거 봤는데 전 별로더라구요ㅠㅠ   
2009-12-13 14:22
moviepan
웃음이라 ㅎㅎ   
2009-12-13 11:04
seon2000
감사...   
2009-12-13 04:2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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