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결국 선택할 수 있느냐이다... ★★★☆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뜨거운 녀석들>은 범죄 없는 마을을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 기성세대의 끔찍한 범죄와 이에 대한 과격한 응징의 과정을 보여준다. 어떤 차원에선 <요시노 이발관>도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깐 어떠한 기준을 임의로 제시해 놓고는 이에 미달하거나 이를 뛰어 넘는 행위를 엄단하는 비민주적 내지는 파시스트적 획일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군다나 그 일탈적 행위가 타인에게 특별히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두 영화의 해결 방식은 제기되는 문제만큼이나 정반대로 나타난다. <요시노 이발관>의 질서를 강요하는 주체가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일한 헤어스타일을 강요하는 마을의 학교에 새로 전학 온 도시 아이. 이 아이의 선동에 따라 기존 헤어스타일을 거부하는 데 동참하는 아이들. 마을 어른들과의 갈등 증폭과 화해, 새로운 변화의 모색이라는 과정을 담고 있는 스토리는 거의 예상된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따라간다. 어떻게 보면 한국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연상되는 설정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상당히 유쾌하게 보여주는 <요시노 이발관>은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문제 외에도 몇 가지 생각할 지점들이 있다. 우선은 하나의 집단이 가지는 폐쇄성의 문제다. 아이들은 외부의 아이가 오기 전까지 특별히 자신들의 머리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인근 도시에 갔을 때,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우스움의 대상이 된 것인지 알게 된다.
조금 다른, 그리고 민감한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주요 공공기관의 기관장 인사에 대한 논란을 연상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떠한 정권이 새로 들어와서 항상 제기되는 문제가 낙하산 문제다. 여기엔 기존 조직에서 성장한 사람을 승진시켜야 한다는 논리와 외부 수혈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충돌한다. 난 기본적으로 대통령제 하에서 단순히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낙하산으로 비난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보며,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기관장을 맡아 대통령의 철학을 추진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옳다고 본다. 그리고 특정 조직의 개혁을 위해서라면 더더군다나 내부 인물보다는 외부 인물이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전문성이라든가 민주성, 현행 법 준수 여부 등 여러 조건의 개입에 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론 그렇다는 얘기다.
두 번째로, 선택의 문제다. 영화가 끝난 후 짧은 영상을 통해 <요시노 이발관>의 그 이상한 귀두컷이 새로운 유행 머리가 되었음을 영화는 알린다. 그러니깐 이 마을 아이들은 누구보다 앞선 패션을 경험한 셈이 된다. <시계 태엽 오렌지>의 신부이자 교도소장은 ‘신은 인간이 선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 선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강요된 것이라면 과연 신이 원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니깐 선도 악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적이라는 철학적 질문인 셈이다. 결국 문제는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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