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영화다.
추격자에서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지금까지는 본 적이 없는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조차 두려운
경이로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추격자를 보기 이전,
감명깊게 보았던
살인의 추억, 공공의 적 같은
영화를 기대했던 나는
지금,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다.
추격자는 그야말로 스릴러의 법칙을 거스른
스릴러의 역사를 새로 쓸 영화다.
추격자는 자신만만하게
처음부터 범인을 말하고 시작한다.
이렇게 빨리 범인을 공개하고서
어떤 식으로 영화가 전개될지 의문을 가졌지만,
이러한 의문을 한순간에 불식시킬 만큼,
추격자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영화의 단락마다 사건을 전개하면서
지영민이 어떤 인간인지,
엄중호(김윤석)가 왜 지영민(하정우)을 꼭 잡아죽여야 하는지,
엄중호가 왜 김미진(서영희)를 살려야만 하는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능력은 가히 최고다.
지영민을 파헤쳐가면서
그가 왜 이러한 범행을 저지르는지 말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르는지 설명하고
살아온 인생을 그가 남긴 상징적 증거들로 표현해 내고 있다.
지영민의 뻔뻔한 모습과
180도로 바뀌는 이중적 얼굴은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했고,
계획적인 모습에서 소름이 끼쳤다.
영화에서 하정우는 희대의 살인마 지영민을 완벽히 표현했다.
어찌보면 지영민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그냥 지영민이 되어버렸던 것이라고 표현하는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하정우의 연기는 경이로웠다.
지영민을 연기한 하정우는 지영민을 연기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걸 즐기는 캐릭터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 지영민은 싸이코다.
지영민은 죄책감,도덕,인간성을 모르는
오로지 쾌락만을 즐기는 인간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밥먹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밥먹듯이 자연스러운 행동이 누군가에겐 혐오로 다가온다.
이렇듯 지영민이라는 희대의 살인마를 통해
영화는 엄청난 긴장감과 두려움을 조성하는 동시에
영화 자체의 탄력성과 유동성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그러한 지영민을 쫓는 추격자 엄중호를 보면
명백한 악 지영민에 비하자면
선에 가깝지만,
분명히 선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엄중호는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인물이다.
그는 2년전 경찰이었지만 온갖 부패한 일을
주도하는 사회악이다.
엄중호 또한 평소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회 속의 쓰레기이지만,
지영민이라는 명백한 악의 등장으로써
내면에 존재하던 도덕심이 드러나게 된다.
지영민을 쫓으면서 드러난 도덕심은
김미진의 딸을 등장시킴으로써
김미진과 김미진의 딸에 대한 연민과
그로 인한 지영민을 향한 복수심으로 변하게 된다.
지영민을 잡아 죽이기 위해 1:1로 계속 쫓지만,
엄중호는 매번 지영민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지영민의 범죄를 막지 못하는 면을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예를 들어 마지막 슈퍼에서의 김미진 살해 장면에서는
여경찰이 지영민에게 겁을 먹게 해서
살해를 막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편집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여경찰은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계속해서 지영민을 놓치고 눈앞에서도 막지 못하는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우리나라의 한심한 공권력을 비판하고 있다.
대놓고 범인이라고 말하는 지영민을
아무것도 못하고 놔줘야 하는 상황들도
공권력의 무기력함과 법의 맹정을 콕 집어 표현한 것이다.
차라리 엄중호라는 개인이 지영민을 잡게 내버려 두었으면
더 나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을 통해
공권력을 비판하고 있다.
매번 지영민을 다 잡은 엄중호를 가로막는 것은
지영민과 같은 악의 세력이 아닌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공권력이라는 설정은
말도 안되는 사회적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분하고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다.
김윤석은 엄중호를 표현함에 있어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보는 내내 진정으로
지영민을 잡고 싶었고,
김미진을 살리고 싶었다.
영화는 이렇듯 엄중호를 통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공감대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엄중호를 통해 관객과의 괴리감을 없애고,
관객과의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희대의 살인마 지영민의 살해대상
김미진은 살고 싶은 감정을 온 몸을 이용해
표현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와 공포에 질린 눈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이 벌어진
지영민의 집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하던 그 몸짓은
정말 진심이 느껴지는 몸부림이었다.
마지막 슈퍼에서도 간절히 도움을 청하던 그녀는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갔다.
김미진을 통해 지영민을 쫓고 잡아서 죽이려는
엄중호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대단했다.
훌륭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요소 요소에 적절한 사운드,
뇌리를 스치는 강렬한 대사들은
영화에 확 빠져들 수 있게 한다.
각 캐릭터들의 탄력있는 구성은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단 한번도 피곤할 틈도 없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추격자는 여태껏 봐 온 영화 중
가장 훌륭했던 영화다.
그리고 여태껏 봐온 연기 중 단연 최고였다.
앞으로 추격자보다 훌륭한 영화는 못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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