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 ★★★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는 팬심에 의해 만들어 진, 그리고 팬심에 의해 관람해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소박한 다큐멘터리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감상할 여지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것 무엇보다 이 영화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 중 그나마 일반인에게 알려진 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홍과 송은지, 두 명의 남녀로 구성된 이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2004년 1집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로 데뷔하는데, 영롱한 기타 소리와 아련한 느낌의 노랫말로 나름 인기를 끌기는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애당초 TV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암튼, 다큐멘터리 영화인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는 3집을 준비하면서 객원 멤버들을 끌어들여 확장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내부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과 그 해소 과정을 담고 있다. 이들 갈등의 핵심은 기존 보컬인 송은지와 새롭게 합류하게 된 객원 보컬 요조 사이에 형성된다. 작고 아담한 요조는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홍대 여신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고, 오랫동안 밴드를 지켜왔던 은지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힘겹다.
문제는 밴드의 리더 민홍이 음악적 성장을 위한 고민에만 쌓여 있을 뿐 멤버들 간의 갈등엔 별다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민홍은 수수방관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그런 태도는 은지를 더욱 힘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요조가 독자 활동을 위해 밴드를 떠나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다시 밴드는 민홍과 은지, 두 명으로 축소된다.
사실 이러한 밴드의 숨겨진 역사를 팬이 아니라고 한다면 굳이 알아야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팬심으로 관람해야 된다고 말했던 건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다. 다행이도 난 개인적으로 이들의 팬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공연을 한 번도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데뷔 앨범이 나온 이후 이들의 모든 정규 CD를 구매하여 소장할 정도의 팬심은 있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이 영화가 인디 밴드의 어려움과 그 가운데서도 음악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물론 영화 속에 이런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기는 하다. 사실 한국의 인디 밴드에게 경제적 어려움이란 비켜갈 수 없는 천형 아니던가. 집에서 도와주지 못하면 일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멤버들, 처음 보는 택시 기사에게 한 달에 고작 50~60만원의 수입으로 버틴다고 말하는 은지의 푸념은 그저 스쳐 넘기기엔 만만치 않은 무게감이 있다.
그런데 쉽게 얘기될 수 있는 인디 밴드의 경제적 어려움보다 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건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주요한 세 명의 인물들은 음악에 대한 견해서부터 미묘하게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요조는 좋은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건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고 딱 잘라 얘기한다.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독립한 요조에 대해 민홍은 더 공부하라며 볼 때마다 충고를 하고, 은지는 떠난 요조가 마치 밴드를 이용한 것처럼 느껴져 맘이 좋지 않다. 은지는 민홍에 대해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냉정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서로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털어 놓을 때, 밴드도 좋아하고, 요조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이 결코 편할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 사이의 갈등과 고민은 인디 밴드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갈등과 고민을 보여준다. 누구라도 살면서 민홍이 되기도 하고, 은지가 되기도 하며, 요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셋의 갈등은, 그리고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는 내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내내 갈등에 침묵하던 민홍이 끝내 은지에게 “나는 너를 위한 음악을 만들고 있어. 난 네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는 마치 이들의 노래처럼 아련해 진다.
※ 다만, 굳이 다큐멘터리에 갈등 요소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내내 떠나질 않는다. 게다가 갈등을 다루고자 했다면 좀 더 부각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갈등의 부각은 선연하지 않고 그 해소 과정도 극적이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가 상영되지 않았으면 했다는 요조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이 영화는 주로 은지의 시선을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니 요조는 스스로를 해명할 기회를 거의 가지질 못했다.
※ 예전에 개콘에서 왕비호(윤형빈)가 '동방신기 팬클럽이 80만명이라고 하는데, 앨범은 고작 10만 장도 안나갔다'며 우스개 소리를 하든데, 그건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팬이라면 정말 가슴 아프게 느껴야 할 지점이다. 부활의 김태원이 한 인터뷰에서 'TV 오락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만약 그 사람이 부활의 모든 앨범을 꾸준히 사준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지적을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꾸준히 CD를 구매하고 있음을 아는 어떤 지인은 심지어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음반있으면 mp3로 변환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건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떤 가수의 노래가 좋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계속 듣고 싶다면, 그들의 음반을 사주는 것이 가장 기본이자 노래에 대한 최고의 기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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