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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어 본 적 있는 이들의 솜씨 공주와 개구리
jimmani 2010-01-25 오후 1:28:07 947   [0]
 

애니메이션의 세대교체가 이제 확실히 이루어지나 싶었다. 유연한 2D 셀 애니메이션의 형태에 감미로운 뮤지컬 넘버가 어우러진, 디즈니가 선도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모습이 사향길에 접어들고, 손보다는 컴퓨터를 통한 작업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노래와 춤 없이 대화 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3D 애니메이션의 형태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사실 뮤지컬 형태의 애니메이션들이 한창 나올 때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딘지 식상하고 심지어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이런 형태의 애니메이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심술궂게도 그런 모습이 또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리얼리티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우리의 꿈과 희망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다행히도, 그런 흐름의 효시였던 디즈니가 가장 먼저 이러한 애니메이션 팬들의 갈망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수장은 놀랍게도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을 만든 장본인이자 현재 월트 디즈니 사의 수석 크리에이터인 존 라세터였다. 그는 시대를 따르는 표현의 수단보다도 더 중요한, 진실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주도로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역사를 장식했던 감독들이 다시 모였고, 그리하여 만들어진 영화 <공주와 개구리>는 놀랍게도, 예전 그 사람들이 그대로 모여서 만들었음에도 결코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매력을 지닌 영화가 되었다.

 

때는 1920년대, 장소는 언제나 재즈가 흐르는 도시 뉴올리언즈. 이곳에 풍족하진 않지만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소녀 티아나(애니카 노니 로즈)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큰 재능을 보인 티아나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밤낮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뉴올리언즈에 말도니아 왕국의 나빈 왕자(브루노 캠포스)가 찾아온다. 돈도 없고 능력도 딱히 없지만 가무를 즐기는 활발한 성격인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주술사 파실리에(키이스 데이빗)의 꼬임에 넘어가 마법에 걸려 그만 개구리로 변하고 만다. 한편, 나빈 왕자를 위한 성대한 가면무도회에 부잣집 딸인 친구 샬롯(제니퍼 코디)의 초대로 티아나는 무도회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티아나는 웬 말하는 개구리를 만난다. 자신에게 키스를 해 인간이 되게 해주면 크게 보답을 하겠다는 제안을 티아나는 레스토랑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에 덥석 받아들이고 만다. 그렇게 둘은 키스를 하는데, 아니나다를까 동화 속 이야기와는 달리 티아나까지 개구리로 변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루아침에 인간에서 개구리 커플이 돼 버린 두 사람(?)은 마법을 풀기 위해 머나먼 루이지애나 숲속으로의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파실리에는 이 마법을 이용해 도시를 거머쥘 궁리를 하고 있는데, 과연 두 사람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외형적으로는 3D에서 2D로 '회귀'했지만 실상을 보면 그 속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한 것이 보인다. 우선 영상과 음악 부분이 눈에 띄는데, 2D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볼거리가 3D에 비해서는 부실할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좋게 깨 버린다. 영화는 손으로 그리는 만큼 영화 속 배경인 뉴올리언즈나 루이지애나의 모습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부촌과 서민들의 마을이 이웃 거리로 공존해 있는 뉴올리언즈의 풍경, 곳곳에서 재즈 선율이 울려 퍼지는 활기 넘치는 거리, 유람선이 노니는 강과 루이지애나의 늪지대에 이르기까지, 실제 모습같은 리얼리티보다는 한 폭의 회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움을 강조한 영화 속 풍경은 화사하게 꽃단장된 동화 속 풍경과는 또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뿐만 아니라 뮤지컬 장면에서는 영화 속 그림(티아나의 레스토랑)을 응용해 그림체를 살짝 바꾸어 표현한다거나, 기하학적 구조도 적절히 활용하는 등 2D 애니메이션의 전형성을 최대한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음악은 픽사 애니메이션의 숱한 명곡들을 만든 랜디 뉴먼의 손길로부터 만들어진 감미롭고 리드미컬한 재즈 넘버들이 대다수인데,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온 뮤지컬 넘버들보다는 덜 드라마틱할지 몰라도 배경과 캐릭터와는 전혀 이질감 없는 조화를 이룬다. 또 처음엔 익숙치 않더라도 계속 듣다보면 어느덧 재즈만의 쿵짝 리듬에 몸을 들썩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다소 주춤하고 있을 때(픽사는 당시 디즈니와 합병 전이었으므로 엄밀하게는 디즈니에서 배급만 했지 제작한 건 아니었다), 드림웍스는 성인 취향의 대담한 유머와 거침없는 패러디, 뻔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호응을 얻으며 그동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다소 고리타분하고 전형적인 형태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번 <공주와 개구리>는 그러한 전형적인 모습을 완전히 벗어난 애니메이션이다. 그렇다고 드림웍스처럼 적극적인 패러디와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즈니는 드림웍스식 과장된 변화보다 지극히 현실 지향적인 변화를 택했다.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공주와 개구리>는 잘 알려진 동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현대 미국의 어느 남녀의 이야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현실적인 면모를 지니게 됐다.

 
 

환경적인 변화부터 눈에 띈다. <알라딘>이나 <뮬란>을 제외하면 유색 인종은 좀처럼 주인공에 끼지 못하고 감초 조연 정도에 머물러야 했던 예전의 상황에서 벗어나 <공주와 개구리>에는 등장인물 대다수가 흑인이나 라틴계다. 오히려 백인이 주변 인물로 자리잡고 있으며, 공주든 왕자든 중요한 포지션은 모두 유색인종 캐릭터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뉴올리언즈의 넉넉하진 않지만 에너지 가득한 분위기가 영화 내내 흐르고 있고, 그들이 만들어낸 재즈 음악이 시종일관 뮤지컬 넘버로 흘러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캐릭터의 피부색 만으로 영화의 성격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가 지닌 성격의 변화다. 그들은 더 이상 시대를 거스르는 환상을 품고 있지도 않고,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이상적인 매력만 갖고 있지도 않다. 티아나는 낭만이나 사랑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 사회적 꿈을 가장 우선시하는 인물로, 오히려 주변인물로부터 너무 여유도 없이 돈 버는 데만 집중한다는 핀잔까지 들을 정도다. 그녀가 개구리와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그가 왕자님이라는 것에 혹한 게 아니라 레스토랑을 차리는 데 그가 일정 부분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일종의 계산(?)이 작용한 결과다. 한편, 나빈 왕자 역시 지금까지 봐 온 왕자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기사도 정신으로 똘똘 무장한 매너남이라고 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오만과 탐욕으로 가득한 악당도 아니다. 그가 뉴올리언즈를 찾아온 목적은 그의 왕국의 재정 상황이 여러모로 좋지 않아서 이를 구제해 줄 만한 부잣집 신부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그는 이름만 왕자이지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약간 느끼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애가 강한 한편, 사랑하는 이에게는 뭐든지 해 줄 준비도 되어 있는 로맨티시스트의 면모도 갖고 있다. 기사도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티아나와의 여정을 통해 점점 타인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간다. 한마디로 능구렁이 기질과 순정파 기질이 뒤섞인 적당한 이중성을 갖춘 인물이란 얘기다.

 

이처럼 이 영화의 남녀주인공들은 단편적 성격으로 맹목적인 환상만 따라가진 않는, 현실과 낭만이 적절히 섞여 있는 캐릭터를 지녔다. 또한 티아나의 절친인 샬롯은 허영심 많은 부잣집 딸이긴 하지만 성격이 착해 티아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마냥 감초 조연인 줄 알았던 캐릭터가 말미에 가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주는 등, 영화는 외모나 주변 환경으로 캐릭터의 선악을 쉽게 결정해 버리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동화를 모티브로 삼되, 그 근본이 갖고 있던 고리타분한 전형성은 현실적인 기반 위에서 완전히 타파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입체적인 캐릭터와 현실적인 배경이 어우러졌는데, 이런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 또한 고리타분할 리가 없다. 역시나 선남선녀의 사랑이야기이고 해피엔딩이 예정되어 있지만 <공주와 개구리>는 그 해피엔딩을 막연한 로망 추구의 결과가 아닌 삶을 향한 적극적인 자세의 결과로 규정한다. 무조건 착하고 완벽한 이들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이들의 해피엔딩이다. 이들은 불완전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연을 통해 점점 완전해진다. 워커홀릭이었던 티아나는 나빈 왕자를 만나면서 사랑을 알아가고, 풍류만 즐겼던 나빈 왕자는 티아나를 통해 삶을 적극적으로 일궈가는 자세를 알아간다. 이것은 비단 남녀주인공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흉측한 외모 때문에 재즈 음악을 하고픈 꿈을 펼치지 못했던 악어 루이스가 한뼘씩 활동영역을 넓혀 가는 것도 그렇고, 남들은 어리석다고 할 만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에반젤린'이라며 사모하는 개똥벌레 레이가 결국은 그 사랑의 애틋한 결실을 보게 되는 것도 그렇다.

 

결국 <공주와 개구리>는 완벽한(선천적으로 그렇거나 혹은 숨겨져 있다가 점점 드러나거나) 이들의 삶에 낭만적인 로맨스를 토핑처럼 살짝 얹어 가는 이야기가 아닌, 완벽하지 않은 이들이 꿈을 쫓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로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금전적으로든, 성격적으로든, 외모로든, 누구나 결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인정한다. 다만, 이것이 어느날 갑자기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탈바꿈하듯 운명적으로 바뀌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꿈을 꾸는 자세와 대담한 도전이 그 결함을 메울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처럼 디즈니는 <공주와 개구리>를 통해 동화를 변주하는 그들의 방식이 지나간 구세대의 산물이 아닌, 여전히 현재에도 유효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고목처럼 뻣뻣하게 서 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의식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과거 우리의 유년시절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전성기의 작품들을 다시금 연상시키며 그만큼 숱한 꿈을 꿔 보았을 디즈니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꿈을 가장 잘 이야기하는 곳임을 알려준다. 


(총 0명 참여)
hssyksys
잘봤습니다^^*   
2010-04-16 02:26
snc1228y
감사   
2010-01-25 20:59
pretto
와 정말 리뷰 열심히 쓰신듯;;ㅋ   
2010-01-25 18:30
hooper
무척 기대되요   
2010-01-25 17:4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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