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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중요한 맛 식객 : 김치전쟁
jimmani 2010-01-26 오후 2:31:36 1077   [0]

 

똑같은 음식도 환경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화학적으로 맛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맛의 감흥이 달라지는 것이다. 집에서 정성들여 끓인 라면을 먹을 때와 군대에서 고참들 몰래 끓인 봉지라면(전문용어로 '뽀글이')을 먹을 때의 맛의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같은 재료가 들어간 음식이라도 그것을 누가 만들고, 어떤 상황에서 먹는가에 따라서 우리는 참 여러가지 감흥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음식은 배를 채우거나 맛의 쾌감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음식에는 단순히 좋은 재료와 풍부한 기술만이 들어가지 않고 그 음식까지 다다르게 한 사연과 온갖 감정 또한 들어가는 것이다. <라따뚜이>의 꼬장꼬장하던 평론가 또한 그렇게 소박한 음식에 감명받았듯이 말이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 또한 이러한 음식의 특성을 깊게 파고든 작품이다. <요리왕 비룡>처럼 요리의 맛을 웬 무협지에 나오는 기술 마냥 묘사하는 것을 멀찌감치 버리고, 맛마다 담겨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서에 주목했다. 사람의 당연한 욕구인 식욕에 누구나 겪어 왔을 삶의 풍파를 함께 엮어낸 이 작품은 마침내 만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 문화 상품이 되었다. 속편인 듯 하지만 막상 그렇게 부르기도 뭐한 구석을 지닌 <식객 : 김치전쟁> 역시 엄밀하게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근간으로 한 작품이다. 다만 만화의 에피소드를 원작으로 하지 않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진데다, 심지어 원작에 없는 인물도 주인공으로 만들어냈지만, 이야기가 내는 목소리는 여전히 일맥상통한다.

 

여전히 진정한 맛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식객' 성찬(진구)은 어느날 자신이 집처럼 여겼던 한식당 '춘양각'이 빚더미에 올라 영영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음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데다 자신에게 요리의 길을 깨닫게 해 준 춘양각을 성찬은 살려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한편 춘양각 주인 수향(이보희)의 딸이면서 일본 최고의 요리사 자리에 오른 장은(김정은)이 1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목적은 춘양각을 없애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한 것. 성찬은 삶의 일부가 된 춘양각을 이리 쉽게 없앨 수 없다고 맞서지만 아빠 없이 홀로 살아온 아픈 유년기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춘양각이 장은에게는 그저 걸림돌일 뿐이다. 장은은 곧 열리는 '대한민국 김치대전'에 참가해 자신의 실력을 알려 새 출발을 도모하려 하는데, 성찬 역시 춘양각을 되살리기 위해 여기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결국 성찬과 장은은 춘양각의 존폐와 각자의 자존심이 걸린 요리 전쟁을 시작하는데.

 

 

흔히 알려진 영화나 드라마 <식객>이 음식 속에 들어 있는 평범한 이들의 따뜻한 사연을 통해 진정한 맛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면 <식객 : 김치전쟁>은 인물들의 어두운 과거에 주목한다. 현재 이야기보다는 과거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는 점에서 만든 이들의 말처럼 '프리퀄'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편과 확실한 연결고리를 지니는 속편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가 <식객> 시리즈의 적자가 아닌 서자임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숫자 '2' 대신 부제를 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원작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롭다. 성찬과 진수 등 몇몇 캐릭터나 극중 일부 대사 정도를 원작에서 가져왔을 뿐, 이야기와 배경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며 성찬과 맞서는 주인공 장은도 영화에만 등장하는 캐릭터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성찬의 과거 역시 이름 그대로 손님의 입장에서 맛과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원작을 생각해 볼 때 잘 알 수 없었던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만의 독자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식객 : 김치전쟁>은 외부로 넓게 나아가지 않고 개인적으로 깊게 파고든 영화다.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전편에 비해서 유머감각도 다소 사라진 인상을 준다. 성찬 역의 진구는 최근엔 연이어 악역을 맡긴 했으나 그 외의 작품들에서 연기했던 활발하고 밝은 캐릭터의 인상도 여전히 남아 있기에 성찬 역에 비교적 잘 어울린다. 또한 어두운 과거로 인한 성찬의 고뇌도 예의 묵직한 연기로 꽤 잘 살려내고 있다. 다만 그 때문에 그 역시 잘 소화할 수 있었을 성찬의 생기와 유머감각이 상대적으로 위축된 듯해 아쉬움을 주었다. 김정은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보다도 더욱 매몰찬 역할을 연기하는데, 알차되 소박함을 추구하는 성찬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모습이 사뭇 인상적이다. 여전히 밝고 유머러스하던 무대인사 때와는 생판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김정은은 유년기의 상처로 인해 악착같이 변할 수 밖에 없었던 장은의 캐릭터를 무리없이 소화해냈지만 한편으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여린 감정의 결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왕지혜가 맡은 진수 역은 이전 <식객>에 비해서는 비중이 좀 줄어든 듯 하지만 여전히 활기찬 성격으로 날카로운 대립 구도 속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도망자 여상 역의 성지루와 성찬의 어린 시절 친엄마로 특별출연하는 추자현의 연기는 짧지만 사뭇 강렬하다. 한편 주인공들에게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유머러스함은 조연들의 차지가 되었는데, 재개발을 위해 춘양각에 끊임없이 압박을 넣는 조동희 역의 이병준이 매우 희극적인 오버연기로 띄엄띄엄 웃음을 유발하고, 김치대전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김국장 역의 박길수는 삼엄한 대결 구도 속에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터뜨린다.

 

 

매우 광범위하게 한식을 다뤘던 전편에 비해 <식객 : 김치전쟁>은 김치라는 한 분야로 그 범위가 대폭 축소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듯 김치의 종류와 쓰이는 재료만 해도 수백가지가 되기 때문에 그 맛의 시각화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집에서 흔히 먹는 전통적인 배추김치에서부터 고추가루를 쓰지 않고 소금으로만 만든 김치, 대게나 황태 등 사뭇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과 어우러진 독특한 김치들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식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이뿐이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들을 카메라는 매우 먹음직스럽고 때깔 곱게 비추다 보니, 저렇게 정성들여 만들어진 음식을 당장 먹지 못하는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꾸준히 펼쳐지는 음식들의 행렬을 현란하고 속도감 있게 비추는 촬영도 식욕 자극에 한 몫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맛을 자극하는 각종 요리들이 여전히 펼쳐짐에도 영화는 이들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다루지 않는다. 늘 그렇듯 음식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이 영화에서도 맛 자체보다 그 맛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강조하는데, 이번 영화에서 그 이야기란 인물들이 과거에 겪어야 했던 아픈 상처다. 그것은 공통적으로 부모와 연관되어 있다. 영화 초중반에 주인공들보다 주변인물들의 짤막한 일화들(춘양각을 변함없이 찾아준 단골 할머니의 이야기, 도망자 여상과 어머니의 이야기)로 영화의 분위기를 넌지시 제시하다가 요리 대결이 본격화되면서 성찬과 장은의 사연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일찍 친엄마와 이별했기에 진짜 '어머니의 맛'을 알지 못하는 성찬과 '어머니의 맛'을 알지만 그것을 힘으로 여기기보다 장애물로 여기는 장은의 대립은 초반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며 그 갈등의 원인을 조금씩 던져주다 후반부에 가서 완전히 그 실체를 드러낸다. 초중반의 주변인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주인공들에게로 확대되는 어머니와 관련된 사연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찡한 감동을 이끌어낼 여지가 충분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신파조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아쉬움을 준다. 다소 과장된 음악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살짝 과장된 이야기 전개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 최후의 대결에 이르러 이를 괜히 눈물 빼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새게 하지 않고 요리라는 본연의 소재로 다시 수렴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두 사람의 승부의 종착점에 이르러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은 지난하게 눈물을 빼기보다 결정적인 이야기 하나로 심금을 톡 건드리는 방식에 가깝다. 전체 관람가의 가족영화답게 자극적이지 않게 갈등의 적절한 봉합을 도모하되, 두 사람의 요리 승부에 있어서는 영화 속에도 여전히 등장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맛의 가짓수는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수와 동일하다'는 말을 통해 암시되는 납득할 만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억지스러움에서 벗어난다. 중간중간에 신파조로 나가려 하는 구석이 눈에 띄긴 했지만 결국 결말에 가서는 도를 지나치지 않는 깔끔한 화해의 마무리를 통해 <식객> 시리즈가 지닌 본연의 훈훈한 인간미를 이어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장 만든 김치를 가지고 그 우열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말이 안된다. 김치란 뭐니뭐니해도 잘 익었을 때 최상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당장 만들어졌을 때보다 잘 익었을 때 최상의 맛을 보여주는 김치처럼 한국인이 느끼고자 하는 맛의 근원 역시 눈에 보이는 기교가 아니라 '어머니'로 대표되는 삶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식객 : 김치전쟁>은 보여주고 있다. 보다 다양한 사연보다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들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단편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인 이상, 이 영화는 우리에게 소금과도 같은 존재인 어머니가 어쩌면 우리가 느끼고자 하는 맛의 근원이 아닐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총 0명 참여)
hssyksys
잘봤습니다^^*   
2010-04-16 02:38
kwakjunim
음식 종류의 다양성이 조금 부족했었죠...   
2010-02-07 12:25
snc1228y
감사   
2010-01-28 17:30
ilpkiki
기대중~   
2010-01-27 19:15
hooper
잘봣어요   
2010-01-26 15:45
seon2000
기대...   
2010-01-26 14:40
1


식객 : 김치전쟁(2010)
제작사 : 이룸영화사(주) / 배급사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kimchiw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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