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건 이 영화가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헐리웃을 피해갈 신화나 전설은 없다. 생각해보면 이름도 잘 모르는 조그만 나라의 전설까지 끌어다 별의별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 놨던 헐리웃이 전 세계적으로 어쩌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을 그리스 신화를 별로 손대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아무튼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 신전의 입구는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지옥 입구는 헐리웃 간판이 있는 언덕(이거 풍자인가?)에, 그리고 머리카락이 뱀인 메두사는 한적한 시골에서 빈티지 가구를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신들이 사랑, 질투 등 인성을 그대로 지닌 존재이며, 인간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는 등의 설정은 그리스 신화에 이미 나와 있으므로 영화만의 새로운 설정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아이들, 그러니깐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수천의 ‘데미갓’들이 고대 그리스 식의 복장을 입고, 인간들은 들어올 수 없는 강가의 캠프에서 구식 전투 훈련을 받으며 모여 산다는 게 영화의 주장(!)이다.
사실 영화의 스토리는 딱히 얘기할 거리가 없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저 신화 속 존재들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은 씹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무궁무진할 정도로 허점도 많고 이해 안 되는 지점들도 많다. 가장 기본적으로 도대체 왜 제우스(숀 빈)를 포함해 많은 신들은 퍼시 잭슨(로건 레먼)이 번개를 훔쳤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일까? 신들의 능력이라면 자신이 데미갓인지도 모르는 퍼시 잭슨이 올림푸스 신전에 침투해서 번개를 훔쳐가지는 않았을 거라는 건 누워 식은 죽 먹기처럼 간단히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평소 물속에서 오래 견디기 정도의 능력(?) 밖에는 발휘하지 못했던 퍼시 잭슨이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도 좀 우습다.
별다른 관계를 쌓지도 않은 아나베스(알렉산드리아 다다리오)가 뜬금없이 퍼시 잭슨의 모험에 동참하는 과정도 설득력이 없으며, 실제 번개도둑이 어떻게 번개를 훔쳤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 이유는 정말이지 실소를 금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하다. 신들이란 존재들이 번개의 행방엔 별다른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그저 올림푸스에 앉아 누군가 번개를 가져다주길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생각해보면 짜증날 정도로 어처구니없다. 이건 전쟁하고 싶어 환장한 신들이 아닌 다음에야 이럴 수 있을까.
이렇듯 이 영화의 단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전개의 논리성을 따지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즐기고자 한다면 이 영화에서 소소한 잔재미들을 느낄 수 있다. 우선 명확히 해야 할 점은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청소년을 포함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화라는 점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보고는 ‘왜 이리도 유치해?’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쩌면 영화가 대상에게 걸맞게 잘 만들어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거대하고 장쾌한 액션은 부재하지만 주인공들이 장소를 옮겨가며 벌이는 액션은 꽤 아기자기한 맛을 주고, 결국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주제도 생뚱맞게 여겨지지는 않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조연으로 출연한 연기파 유명 배우들을 보는 맛(!)이 있다. 솔직히 이런 영화가 아니라면 숀 빈이 제우스로 변해 근엄한 얼굴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있는 신전에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나,(처음 숀 빈이 나오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켄타우로스로 변한 피어스 브로스넌, 메두사로 변한 우마 서먼의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이렇듯 가끔은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처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설렁설렁 편하게 보는 것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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