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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같지 않지만 비슷하게 반복되는 불행한 인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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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이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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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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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8 오전 1:3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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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같은 인생의 반복,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많은 인생 중에 비슷하거나, 아니면 정말 똑 같은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소위 ‘평행이론’이란 이론이 화제를 끄는 이유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도 믿기 힘들 뿐만 아니라 확률적으로도 믿기 힘든 일로 판단한다.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이런 믿기 힘든 이론을 갖고 이론의 이름을 딴 [평행이론]은 매우 모험적인 시도를 한다. 실현되기 힘든 것을 영화화하는 것, 분명 영화의 뒤에 있는 주제의식과 고민, 그리고 현대 사회에 대한 성찰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큰 인상을 남길 것임이 확실하다. 영화는 똑 같은 인생의 반복을 갖고 있는 어느 두 젊은 판사의 인생을 보여준다. 그런데 똑 같은 인생의 실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반복해서 신기해서일까? 영화 [평행이론]은 극단적인 설정을 갖고 그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의 가슴을 슬프게 만든다. 같은 나이에 같은 과정을 통해 같은 위치는 물론 같은 혼란을 겪은 두 명의 판사의 인생의 형상화를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신기한 인생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더욱 본질적인 현실의 인간관계를 통찰력 있게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 없는 인간의 불운한 속성을 기이한 한 편의 서사를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이다. 30년 차이를 두고 같은 시간에 같은 날짜에 유사한 인간들의 인생 반복에서 보이는 불변하는 불행한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의 불행을 보여주고 있다. 같다고 할 수는 없는 인생이지만 비슷한 불운을 겪고 있는 인간사의 불행, 바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슬픈 세계관인 것이다. 최연소의 부장판사가 된 김석현(지진희), 그 어떤 불행도 그의 인생에 끼여들 여지가 없어 보였고, 그는 언제나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확신을 갖고 살았다. 그런 관점 속에서 맺고 있는 그의 주변의 사회와 인간관계는 굳건하고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믿음직스럽다고 믿었고, 자신의 사무관은 자신의 충실한 아랫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장인, 그의 상사, 그리고 그의 주변의 모든 인물들은 자신과 탄탄한 인간관계를 형성, 자신을 믿어주었고, 또한 그런 믿음 속에 살았다. 그러나 기이하지만 그에겐 필연적인 인연으로 만난 평행이론으로 그가 생각한 모든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서사가 진행되면서, 최연소 부장판사 석현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인간들 사이에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 와중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그의 인간적 매력에 기인해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을 소비하기 위해 그들이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는 스스로 믿었던 모든 것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확인하고 자신을 빼곤 믿을 수 없는 인물들로 가득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판결에 따른 보복행위를 통해 과거의 판결을 돌아보면서 결국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었던 사실에 경악하게 되고 자책하게 된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은 판사로서 그에겐 너무 가혹한 결과물인 것이다. 판사,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사회적 정의를 수호하는 사회의 버팀목이다. 판사는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사회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판사의 확신은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소신이다. 그러나 김석현 판사는 무너졌다. 자신이 알려고 하는 진실에 다가가면서 만나게 되는 인간관계의 허약함은 그를 점차 나락으로 빠뜨리고, 가장 자신이 믿었지만 사람들의 위선과 배신이 폭로되면서 그는 인간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의 서글픔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핏줄이란 것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고통은 가장 극적이다. 영화는 그런 비극을 넘어 더욱 극단적인 비극을 향해 마지막으로 가고 있었다. 결코 변하지 않은 인간의 불행은 그 끝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믿었던, 그리고 믿고 싶었던 것 하나하나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자신도 믿지 못한 상황을 상기하게 하는 비극이야말로 이 영화의 압권인 것 같다. 반전을 위한 것이겠지만 그 반전 뒤에 있는 인간의 허약함이 서글프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영화의 비극성은 능력 있는 판사의 몰락이 아니다. 그것이 30년 전 이미 발생했다는 것도 역시 아니다. 그런 반복은 더 중요한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그것은 같은 시간대와 같은 날짜의 반복을 넘어 시간과 날짜가 다르지만 유사한 사건은 우리 주변에 언제나 반복된다는 점이다. 신뢰했던 사람들의 배신은 일상의 다반사이며,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족 구성원의 배신 역시 그다지 진귀한 경험도 아니다. 영화에서의 평행이론은 현실적이라 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극단적 현실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면 인간사에선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벌어진 인간의 불행이 바로 일반적인 것이다. 특히 인간은 허약한 인간관계의 위험함을 알면서도 그런 위험을 도피하지 못하고 재생반복만 하도록 하는 인간의 본질적 탐욕을 이 영화는 공포스럽고 신비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평행이론의 극단적 설정을 넘어 인간관계의 허약함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으며, 또한 순서와 방법, 그리고 인물의 차이야 있겠지만 그런 상황의 유사성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디어에서 들려오거나 보여주는 정보들엔 그런 비극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는 그것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은 유사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무엇보다 파멸의 순간으로 갈 수밖에 없으면서도 즐거움과 탐욕이란 마약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인간사의 비극성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탐욕과 기분으로 인해 파멸하는 인간군상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생각하며 사는지, 그리고 과연 해결할 의지는 있는지, 영화를 보면서 성찰하게 됐다. 지진희의 원숙한 연기력은 그의 연기가 점차 물이 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감 있는 매력적인 판사에서 어느덧 손과 옷에 피를 튀기면서 인간 내면의 파멸을 경험하는 판사의 역할을 무척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마지막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로 밀리면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잘 형상화하고 있었다. 과연 지진희임을 확인케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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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이론(2010, Parallel Life)
제작사 : CJ 엔터테인먼트, (주)다세포 클럽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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