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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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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3 오전 3:5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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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의 충격은 테러 소재 영화의 개봉을 지연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테러 영화들의 서스펜스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미국이 핵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썸 오브 올 피어스'도 91년 쓰여진 톰 클랜시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9·11 이후 뒤늦게 영화화된 경우다.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 '에어포스 원'에 이어 톰 클랜시의 소설 중 네 번째로 영화화됐다.
그의 소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 중앙정보국의 잭 라이언역으로는 알렉 볼드윈, 해리슨 포드에 이어 '진주만'의 히어로 벤 에플릭이 출연한다.
잭 라이언은 007 시리즈의 이언 플레밍이 만들어낸 제임스 본드와 견줄 만하다.
본드가 실전에 능한 공작원이라면 라이언은 공작원이라기보다 냉철한 분석가다.
007 시리즈가 첩보전의 정글 속에서 불가능한 임무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작원의 액션에 무게가 실린다면, 클랜시의 작품들은 불투명한 현실을 명료하게 파악하고 사태를 장악하기 위한 참모들의 두뇌게임이 중심에 놓인다.
소설 '썸 오브 올 피어스'는 1991년 출판된 이래 그 해 뉴욕 타임즈 지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뽑혔으며, 6개월에 걸쳐 베스트셀러 리스트 상위에 랭크, 2002년 지금까지 전 세계 판매부수가 6백만 부가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할리우드는 출간된 지 10여년이 지난 이 소설을 왜 주목했을까.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 '긴급명령' 등 영화로도 대히트한 원작자의 명성과 재능이 큰 이유일 수 있겠다.
하지만 지난해 9.11 테러 사태 이후의 미국 사회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한다는 시각이 더욱 설득력이 크다.
공산주의란 '공공의 적'이 사라진 미국에 지난해 느닷없이 들이닥친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자 공포였다.
'썸 오브 올 피어스'는 이런 미국 사회의 심리적 공황을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5월 말 미국에서 개봉해 '스타워즈 에피소드 2'를 제치고 2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9.11 사태 이후 있을지도 모르는 잠재적 테러에 대비하자는 사회적 여론을 충실히 반영한 이 영화에 관객 또한 만만찮은 지지를 보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치곤 중급 규모인 6천8백만달러(약 8백16억원)의 제작비에 1억1천만달러(약 1천3백억원)의 수입을 올렸으니 장사도 잘한 셈이다.
'썸 오브 올 피어스'에 재현된 미국의 적은 신나치주의다.
공산주의.이슬람권에 이어 할리우드가 새롭게 변형된 히틀러의 파시즘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작품 속에선 신나치주의가 정교하게 분석되지 않는다.
단지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까지 동원하며 대대적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 매개체로 이용될 뿐이다.
'공포의 총합'으로 번역되는 영화의 제목인 '썸 오브 올 피어스'는 그 어떤 공포를 합친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을 일컫는다.
실제로 164기의 탄두 가운데 단 한발이라도 악의를 품은 집단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리고 그 탄두로 인해 서로를 겨누고 있던 핵미사일들이 발사 된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출발하는 '썸 오브 올 피어스'는 그 어떤 영화보다 핵폭탄과의 전쟁에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의 강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무엇보다 최대의 볼거리는 강렬한 특수효과와 CG 기술.
화면을 압도하는 강렬한 움직임인 거대한 핵폭발의 위력이나 미식축구 스타디움 폭발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조성할 정도.
무엇보다 '썸 오브 올 피어스'는 정확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진 작품.
군 당국과 CIA가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실제로 미 국방성 장교가 많은 조언을 했고, 그 결과 '썸 오브 올 피어스'에 등장하는 배경이나 실제 비상 계엄시 군 조직의 움직임 등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며, 미 국방성은 많은 수의 F- 16 전투기와 B2 폭격기, 육군의 주력 공격 헬기인 블랙 호크의 실제 촬영을 허용하는 등 호의를 배풀었다. 덕분에 군 당국마저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영화 중 가장 사실적이라고 평할 정도.
플롯은 비교적 단단하다.
1973년 아랍세계와 이스라엘 사이의 4차 중동전쟁 때 사라진 핵폭탄 한 발, 미국과 러시아 최고 수뇌부의 풍경, 중유럽 극우파들의 비밀회동 등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사막의 모래에 묻혔던 핵폭탄이 제3세력의 손아귀에 넘어가면서 미국 볼티모어 미식축구 경기장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른다.
사태는 미국과 러시아의 전면전으로 번져간다.
두려움 때문에 눈감고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총알이 날아온 방향과 의미를 정확하게 분석해내는 게 미 중앙정보국 잭 라이언의 일이다.
지구의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이성 대신 불확실한 공포에 휩싸이는 미국 수뇌부나, 자신의 권력이 공고함을 과시하기 위해 매파들의 행동을 승인하는 러시아 대통령 등 권력의 비속한 속성에 대한 통찰은 영화 전편에 걸쳐 빛을 발한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얼마나 위태롭고 무책임한 체제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면도 있다.
그러나 옛 소련으로부터 자본주의의 선전 기관이라 불렸던 클랜시답게, 영화는 결국 팍스 아메리카나와 엘리트 공작정치에 대한 찬양으로 귀결된다.
영화의 화두는 두려움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적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라는 얘기다.
적이 어떻게 나올 지 모르기에 이쪽에서 또 다른 액션을 취하고, 그것이 또 다른 두려움과 충돌을 낳는다.
둘 다 침묵하면 무죄가 될 것을, 둘 다 말함으로써 죄가 드러나 감옥에 가는 수인의 딜레마를 연상케 한다.
톰 클랜시는 나치 잔당인 스위스의 거부가 3차 대전을 꾸미는 것으로 설정했다.
당초 이스라엘 원리주의자의 소행으로 설정했으나 9ㆍ11 테러가 일어나 바꿨다.
일종의 바이러스인 나치는 숙주로서 독일이 필요했지만, 인터넷시대에는 더 이상 숙주없이도 생존할 수 있으며, 러시아와 미국이 한판 붙기만 하면 전세계 나치가 궐기할 것이라는 숙주론이 재미있다.
그러나 미·러간의 철지난 냉전 대치가 한국인들 공감까지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듯.
신문 국제면에서 '탈냉전'이란 말조차 찾기 어려운 요즘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빠진 미국과 러시아의 격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오늘에 미국과 러시아가 국운을 건 핵무기 대결을 벌인다는 발상이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일지 모를 일이다.
'공포의 총합'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에 비해, 영화의 진행은 느리고 산만하다.
백악관에는 감정적인 강경파들만 득실대고, 풋내기 잭 라이언만이 사건을 꿰뚫어본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벤 애플렉은 미국 대표급 영웅 잭 라이언을 연기하기에는 카리스마가 떨어진다.
일개 CIA 연구원이 위기일발에서 미국, 러시아 대통령을 핫라인으로 중재하는 영웅주의는 관객의 정신 연령을 낮아도 너무 낮게 잡은 어리석은 발상이다.
제작진은 이스라엘이 망실했던 핵탄두가 사실은 미국에서 유출됐다는 것을 언급하는 등 정치적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일 뿐, 영화는 미국과 러시아가 같은 인간이라는 불명확한 사해동포주의로 마감한다.
양국 간의 긴박한 갈등에 힘을 너무 쏟은 까닭인지 주범인 나치주의자를 제거하는 장면도 싱겁게 끝난다.
'썸 오브 올 피어스'가 '피스 메이커' 등 미국을 겨냥한 기존 테러 영화와 다른 점은 핵폭탄이 미수에 그치지 않고 터진다는 것.
미국 영토 내 핵폭발이라는 이례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톰 클랜시 원작의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극한으로 치닫던 양국의 긴장 관계가 비현실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단, 온 천지가 모래날리듯 쓸려나가는 핵 폭발장면의 충격적인 사실감만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하면서 이 영화가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임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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