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골목에서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주민들은 경찰서에서 데모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실적도 없이 오히려 경범죄를 저지르는 동영상이 찍혀 물의마저 일으킨 요주의 형사(김동욱)는 동영상을 찍은 주민을 오히려 범인으로 의심하고 그를 추적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사기로 사업에 실패한 뒤 집에서도 완전 무시당하는 백수(유오성)로 범인을 만나 단번에 가장으로서 못다한 책임을 다하려는 불쌍한 가장일 뿐이지요.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범인을 꼭 만나야 하는 절박한 두 남자의 상황은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을까요...
살인자를 반갑게 만나고 싶다는 역설적 제목의 <반가운 살인자>는 그 외에도 다양한 역설이 감춰져 있습니다. 백수만도 못한 실력(?)으로 좌충우돌 사건만 일으키는 형사와 형사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오히려 단서를 제공하며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백수의 설정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살인 사건으로 불안에 떠는 주민들이 경찰서에서 데모를 하는데 그 안에 형사의 엄마인 부녀회장이 섞여 경찰의 무능함을 조심스레 외치는 웃지못할 상황도 있구요. 그래도 가장 큰 역설은 형사내에서 언제 짤릴 지 모르는 무능 형사가 생존을 위해 범인을 잡아 실력을 인정 받아야만 하고 백수는 그동안 변변히 한 것 없는 가장이 남겨진 딸에게 사망 보험금을 주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범인을 만나야하는 절묘한 상황은 다분히 역설적입니다.
<반가운 살인자>는 예고편만 보면 코미디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로는 코미디도 드라마도 아닌 구분이 애매한 영화입니다. 유오성의 여장이나 깐죽대며 웃기는 대사와 상황으로 간간히 웃음을 주는 김동욱을 보자면 코미디로 분류하고 싶긴 합니다만 코믹의 상황에서 돌연 가장의 무능으로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전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에 갈피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코믹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지 못하는 부분은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보더라도 생존 경쟁에서 낙오된 가장으로 인한 가정 파괴의 피해를 보여 주기 위한 가장을 대하는 가족 구성원(아내와 딸)의 설정은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웃게만 만드는 코미디보다도 못한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유사한 내용이 담겨진 영화 <즐거운 인생>의 전개 방식과 비교할 때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지요.
게다가 <반가운 살인자>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미스테리도 중요한 요소입니다만 그마저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합니다. 형사와 백수가 그토록 만나고 싶은 범인이 드디어 밝혀 지는 순간 범인의 실체는 너무도 생뚱맞습니다.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이유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긴장감도 없습니다. 그냥 묻지마 범인일 뿐이라고 치부해도 그가 범인으로 주인공들 주위를 배회하면서 만나게 되는 상황의 설명은 반전의 묘미도, 추리의 재미도 살리지 못해 아쉬움을 더합니다. 다른 피해자는 난자를 한 범인이 유오성은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는지 상황도 납득이 안되구요.
<신라의 달밤>, <주유소 습격사건>의 김상진감독과 오랜 기간 조연출을 통해 배운 김동욱감독의 첫 작품인 이번 작품은 역설적인 소재와 상황이 주는 재미를 살려내지 못한 안이한 전개와 중심을 잡아 주는 연출의 문제로 인해 웃음도 감동도 재미마저 살리지 못한 채 결말을 맞습니다.
그나마 딸은 뒤늦게 아빠를 이해해 주지만 끝까지 참고 본 결말까지도 아내는 나타나지 않더군요. 딸이 이유없이 학교 불량 클럽 학생과 주먹다짐을 벌인 이유도 명확하지 않고 그들이 보여주는 과장된 눈에 걸립니다. 가정의 회복을 말하려는 영화에서 정작 말하려는 내용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이런 웃음만을 위한 인물과 설정은 오히려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잘만들어진 좋은 영화를 보면 세밀한 설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연관관계에 이유를 붙이는 것에 비춰볼 때 <반가운 살인자>가 다른 관객들에겐 어떻게 비춰질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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