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한계를 끌어낼 줄 아는 감독과 감독의 색으로 물들 준비가 되어있는 배우가 세 번의 작업을 거쳐 도달한 영역.
1954년. 2차대전이 끝난지 10년 남짓.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 시대에, 보스턴의 외딴섬, 셔터아일랜드라 불리우는 그곳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연방 보안관 테디와 척은 그 실종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섬으로 향하는데, 셔터아일랜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들을 수감해 놓는 시설로 탈출이 불가능한 천혜의 요새다. 이런 곳에서 한 여인이 사라졌다. 쪽지 한장만을 남겨두고 말이다. 테디와 척은 최선을 다해서 진상을 파헤치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폭풍우가 불어와 섬에 고립된 테디와 척은 섬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하는데. 이 숨막히는 공간은 테디에게 실종사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내를 죽인 방화범, 아내의 환영, 인체실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테디는 누구를믿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진 이 곳에서 직면해야 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영화는 디카프리오가 배멀미로 인한 구토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디카프리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타이타닉의 그 꽃미남은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몰아 붙였다. 타이타닉이라는 전무후무한 흥행작을 뒤로한채 그가 걸어온 길은 참으로 흥미롭다. 잭 도슨의 그늘은 그를 쉽게 놓아 주지 않을 것 같았고 이 잘생긴 배우는 서서히 나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려 했다. 아니 모두의 기억에서 그랬을 것 이다. 연이은 스캔들과 반짝스타에게 어련히 따르는 냉담한 시선들. 그 모든 것 들을 다 짊어지고 디카프리오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운명적 만남. 이 배우는 원래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뛰어난, 기억에 남는 연기를 하는 배우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 젊은 배우의 손을 잡고 강하게 당겨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마틴 스콜세지. 그리고 디카프리오는 '갱스오브 뉴욕'을 찍게 된다. 아직 스콜세지와 함께 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던 그의 상대역은 메소드연기의 본좌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 디카프리오는 갱스오브뉴욕을 찍는동안 다니엘에게 말한마디 걸지 못 했다고 한다. 다니엘이 쉬는 시간에도 끔찍한 적의를 드러내며 디카프리오를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계속해서 칼을 갈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디카프리오는 잭 도슨의 껍데기를 벗어 던질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바디오브라이즈, 블러드다이아몬드, 디파티드 등의 작품을 거치면서 더이상 그에게서 잭도슨의 그림자를 찾을수 없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제서야 마틴스콜세지에게 어울리는, 세번이나 함께한 작품 활동을 통해 스콜세지의 색깔로 완전히 물들 준비가 된 이 매력적인 배우는 셔터아일랜드의 문을 연다. 두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원톱으로 이끌어 나간다. 그 스콜세지의 세계에서 말이다. 로버트 드 니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리고 그 다음칸에 당당히 이름을 새겨넣어도 될 자격을 얻었다.
스콜세지의 색깔로 완전히 꽃단장을 한 이 배우는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영화 전반부에 걸쳐 쉴틈없이 뿜어 댄다. 그것도 조연으로 나온 배우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그의 연기력이 아직 부족하기에, 그 옛날 로버트 드 니로가 스콜세지의 페르소나였던 시절, 너무나도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극전체를 휘어잡고 끌고 갔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기에 받는 느낌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오히려 극에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다. 디카프리오가 극을 이끌어 나가되 휘어잡지 못함으로써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가 눈에 들어오고 이 시너지 효과로 인해 셔터아일랜드라는 스콜세지의 독특한 세계가 문을 연 것이다. 아마, 로버트 드 니로였다면 이런느낌의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판이하게 다른 느낌일지라도 그것 역시 스콜세지의 세계였겠지만.
섬이 보이기 시작하고 음산한 음악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스콜세지라는 감독은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디파티드를 볼때 너무나도 힘이 들었던건 그가 전혀 관객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내가 그의 영화를 볼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말이 맞겠지. 감독이 영화를 만들때 최선을 다 한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디파티드는 거침없이 달려나간다. 이쯤되면 쉬어줘야 되는 타이밍인데도 멈추지 않았다. 두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쉬지않고 긴장감을 유지할 자신이 있다면, 그런 감독에게 완급조절이라는 말은 무의미 하지 않을까. 스릴러라면 스릴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스콜세지는 이 정의에 완벽히 들어맞는 영화를 만들었다. 셔터아일랜드의 오프닝. 음산한 음악이 깔리고 차가 수용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 5분 남짓한 장면으로 긴장감은 최고로 고조된다. 이제 겨우 영화가 시작한지 5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두시간이 넘는 스릴러는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신병원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의, 총기와 관련된 얘기를 핼때의 그 구도는 압권이다. 간수 세명이 연방 보안관 두명을 프레임 안에서 완벽하게 에워 싸고있다. 노회한 감독은 카메라 웤만으로 긴장감을 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달려나간다. 그 마지막 최후의 진실을 향해서, 멈추지 않고 달려나간다. 심장이 스콜세지의 지휘를 받고 뛰기 시작한다. 물론,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런 걸 신경쓸 여유는 없겠지만.
조디악이라고 예전에 데이빗 핀처가 만든 스릴러가 있다. 그 당시에 두시간 반이 넘는 스릴러 물이란 얘기를 듣고 등골이 오싹해졌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나, 스릴러가 두시간 반이 넘는다구?' 그런데 문제는 그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는데 있다. 다만 아쉬운점은 지나치게 본인 위주의,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설정한 리얼리티의 허들이 너무 높았기에 대중성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이 셔터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극도로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음 미칠듯이 달려가는 영화를 끝까지 따라갈수 있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있는 관객이라면,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매달려야 한다. 그토록 거칠게 달려가서 마주하는 충격적인 진실에는 분명,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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