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 to the WONDERLAND! thank you. but I'm NOT British.
어느 귀족 가문 저택의 정원, 수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위해 초대되고, 그 다음 목적을 위해 모여있다. 시선이 모아지는 곳에는 자그마한 정자. 그리고 그 안의 두 남녀. 청혼하는 귀족 청년과 청혼을 받는 소녀. 하지만, 소녀에겐 이 갑작스러운 청혼이란 이벤트가 달갑지만은 않다. 그보다 궁금한건 푸른색 턱시도 자켓을 걸친 토끼 한마리. 소녀는 청년을, 그리고 파티장에 모인 모두를 뒤로한채 토끼를 쫓는다. 이 소녀의 이름은 앨리스. 방년 19세. 항상 멍하니 말도 안되는 상상을 즐기는. 어릴적부터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는 그런 소녀. 소녀는 토끼굴로 떨어진다. 기괴하고 음산하며 해학과 풍자, 유머와 모순이 넘치는 팀버튼의 원더랜드로 말이다.
팀 버튼, 기발한 상상력으로 동심을 비틀고 비꼬는데 천부적 재능을 가진 감독. 언제나처럼 그의 마누라와 절친을 대동하고 한편의 기이한 영화를 완성했다. 그것도, 영화인생의 출발점이었던 디즈니로 돌아와서. 그의 영화는 언제나 아름답다. 그 풍경과 색감이 아름답다. 이건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비주얼로 얘기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삼키지 못할 씁쓸함이 남는다. 항상 그랬다. 언제나. 아마도 그건 그다지 썩 아름답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럴듯하게 꾸며 놓기 때문이아닐까. 앨리스의 이상한나라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건 좀 더 심하다. 아직도 환상문학의 고전이자 전설 그리고 교과서로 불리우는 루이스 캐럴의 원작이 디즈니 특유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감수성을 거쳐 팀버튼의 머리속에서 뒤틀린다. 그리고 원더랜드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나타났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독특한 색감과 분위기에 대한 재능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준비 된 것 같다. 멋들어진 빨간 예복을(그것도 상의만) 걸친 개구리라니. 목소리는 또 어떻고. 하트퀸과 화이트퀸, 체셔캣. 매드해터 같은 조연급들을 논할 필요도 없다. 의자 원숭이와 발받침으로 나오는 돼지조차 매력적이다.
그런 캐릭터들을 초호화 캐스팅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배우들이 열연해 주었다. 조니 뎁에 헬레나 본햄 카터. 앤 해서웨이. 스티븐 프라이. 크리스토퍼 리. 팀버튼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페르소나인 조니뎁은 팀버튼의 세계에 어떻게 동화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아마도 그는 팀버튼의 세계가 만들어지기 시작 할 무렵, 원더랜드에 창세기가 있었다면 그 첫째날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까. 튀지 않는다. 과하지 않는다. 그저 녹아들어 있다. 그런 분장에 그런 캐릭터로 말이다. 으쓱촐싹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하트퀸, 세상에나! 자기 마누라를 영화의 공적으로 만들어 놓고 별명은 왕대... 팀버튼은 진정 대인배. 아니, 헬레나가 대인배인가. 억척스러운 캐릭터를 정말이지 잘 소화 해냈다. 밉상으로 보이지 않게. 파이 한조각 훔쳐 먹었다고 사형판결을 내리는 캐릭터를 얄밉지 않게 연기하는건 정말 대단한 것. 자, 하얀여왕! 화이트퀸! 앤 헤서웨이! 아마, 당신역시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상체를 30도 정도 기울인뒤 엄지와 약지를 붙이고 양팔을 W모양으로 들고 있을 거다. 나는 영화를 보는 중에도 화이트 퀸이 나올때면 그 우아한 손동작을 따라했으니까.
주인공 앨리스는 더이상 소녀가 아니다. 청혼을 받고 성인이 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할 숙녀. 그리고 루이스 캐럴의 그것을 어릴적 읽었던 우리역시 더이상 이 이상한 세계가 마냥 신기하지만은 않다. 그곳에 팀버튼의 원더랜드가 있다. 동화적 분위기로 잘 감싸진 어두운 이야기. 어른의 동화. 시체의 머리를 밟고 해자를 건너 거나 눈알을 뽑거나. 목을 자르거나. 동생을 죽이려 하거나.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핑계로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거나. 이 미쳐버린 세계를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동화적인 색채로 유쾌하게 풀어 나가는 일련의 어두운 과정들. 그리고 열린 결말. 해석하기에 따라 영화의 장르조차 바뀔 수 있을 정도로 열린.
디즈니의 이름으로, 디즈니 틱하게, 동화적인 색채와 앙증맞은 따스함으로 포장한 음산하고 기괴하며 잔혹한 이야기. 판의미로를 조금더 밝고 경쾌하게 풀어나간 느낌. 이토준지의 만화가 기괴한 분위기의 개그만화라면, 이건 동화적인 분위기의 공포영화. 그래,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클리셰에 끼워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용산 CGV에서 아이맥스 3디로 봤다. 이런, 이건 뭐지. 3D의 화면에 입혀진 2D의 자막이란 이다지도 영화를 방해하는 것이었나. 아바타를 볼적에 자막이 너무 튀어나와 있어서 자막에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자막에 신경을 안쓰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오늘 알았다. 인물의 양감보다 자막이 안쪽에 존재한다. 원근감을 무시한채 평면으로. 자막이 있는 부분에서 화면이 일그러 진다. 3D를 관통하는 2D. 자막과 그 외의 부분사이의 괴리감. 영화를 보는내내 자막과 영상 사이에서 방황했다. 다음부터는 제발 이런일이 없기를.
영어를 이용한 말장난이 너무 많이 나온다. 게다가 발음도 영국식이라 안그래도 부족한 리스닝에 패널티까지. 조니뎁이 중간에 하는 운율 있는 말장난은 자막으로 봤을때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느낌 전혀 살리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막제작자의 노고를 치하한다. 좋마운, 날뜩한, 으쓱촐싹. 그 노력의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히 보이기에. 극장 자막의 가장 짜증나는 점은 영어 말장난이나 욕을 완전 의역해서 내보낸다는 것. 그런데 앨리스는 자막제작하신분이 그 의미를 전달해주려고 노력하신게 보이기에 감히 짜증낼 수 없었다. 영국영어 리스닝이 되는 사람이라면 내가 못느낀 10%의 재미를 더 느낄수 있을듯.
셔터 아일랜드와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근래에 본 두편의 영화가 다 열린 결말이라 머리가 어질어질.
앨리스의 크기변화때마다 의상관련 두근두근 했던 사람은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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