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 시간 내내 숨통을 조인다...★★★★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는 섬. 셔터 아일랜드. 자식 셋을 물에 빠트려 죽이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라첼 솔란도(에밀리 모티머)는 모호한 쪽지만 남긴 채 사라진다. 수사를 위해 섬에 들어온 연방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척(마크 러팔로)은 의사와 환자들을 만나보지만 아무런 증거나 단서도 나오질 않는다. 테디는 이 섬의 정신병원이 인체실험과 관계가 있으며, 여환자의 실종은 인체실험 사실을 숨기려는 병원 측의 음모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고 수사를 진행한다.
데니스 루헤인의 <셔터 아일랜드>를 충실히 화면에 담아 낸 <셔터 아일랜드>는 반전에 목숨을 건 스릴러 영화는 아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묘한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서의 울림을 강조하는 스릴러도 아니다. <셔터 아일랜드>는 스릴러라기보다는 끔찍한 전쟁을 경험한 국가의 집단적 후유증에 관한 일종의 심리 묘사물이라고 부르는 게 적당할 것이다.
사라진 환자의 수사를 위해 섬에 들어온 테디지만, 사실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방화범 래디스를 찾아 복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테디는 자주 환영에 쫓긴다. 내내 어둡고 긴장되며 숨통을 조이는 듯한 화면이 약간의 탈출을 감행하는 지점이 바로 테디의 환영 장면이다. 물에 젖거나 불에 타는 아내 돌로레스(미셸 윌리엄스)의 모습은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지며, 테디가 경험한 2차 대전은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끔찍한 현실과는 묘하게 이율배반적으로 다가온다.
폐쇄된 섬이 주는 숨 막힘과 아무런 단서도 없는 추격전, 거기에 자신의 과거가 주는 압박감으로 인해 테디는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며, 모든 것에 의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보는 관객의 입장도 테디와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관객 역시 스크린에 투사된 모든 장면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한다. 객석은 <셔터 아일랜드>가 주는 무게감으로 인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크레센도로 점점 고조되거나 점점 약해지는 음악은 아무런 깜짝 효과 없이도 객석을 공포의 한 가운데로 몰아간다.
이 지점에서 어쩌면 당연하다는 듯이 떠오르는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샤이닝>이다. 미국의 많은 평론가들이 <셔터 아일랜드>와 <샤이닝>을 비교했듯이 두 영화가 주는 이미지는 비슷하다. 순간의 깜짝 효과가 아닌, 점증해가는 심리적 공포는 두 영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특징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으로 공포를 표현했다는 것도 그렇고. 이런 점에서 <셔터 아일랜드> 역시 <샤이닝>처럼 논리적인 영화는 아니다. 모든 게 밝혀졌어도 여전히 애매모호한 부분들도 많다. 왜? 영화가 보여주는 건 실제 현실이 아니라 강박적 정신병에 시달리는 인물의 눈에 투영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즈 감독은 분명히 반전이 주는 장르적 쾌감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리려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면, 만약 그럴 의도였다면 반전에 모든 초점을 맞춰 강렬한 충격을 던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를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이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란 점은 명백하다. 스릴러 영화는 반전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영화라고들 한다. <셔터 아일랜드>는 이 점에서 근작에 보기 드문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거장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정밀한 역출과 편집, 그리고 그저 탄사가 흘러나오는 기막한 장면들, 거기에 배우들의 열연과 절묘한 음악의 조화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 동안 지옥도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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