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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 흩뿌려진 한 인간의 세밀한 관찰기.... 예언자
ldk209 2010-03-30 오후 2:32:57 716   [4]
백지에 흩뿌려진 한 인간의 세밀한 관찰기....★★★★

 

<예언자>의 스토리텔링은 단순하다. 이제 갓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젊은이 말리크 엘 제베나(타하 라힘)가 감옥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점점 성장해가고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영화는 마치 누군가 숨어서 지켜보듯 전달한다.

 

무미건조하게 묻는 경찰관의 질문을 통해 우리는 말리크 엘 제베나에겐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원수, 종교, 딱히 금지된 음식도 없음을 알게 된다. 즉, 영화가 시작할 때 그의 상태는 백지다. 기껏해야 그가 거리에서 자란 아랍계 청년이며, 소년원을 들락날락거렸고,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혐의와 자신은 이에 대해 좀 억울하게 생각한다는 사실 정도를 알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말리크 엘 제베나의 감옥 체험기 정도가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다.

 

프랑스 영화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프랑스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거의 없다보니, 전통적인 프렌치 느와르를 현대적으로 되살려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에 대한 정보도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전 작품을 보질 않았으니,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작풍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말할 위치에 있지 않지만, 최소한 <예언자>를 통해 보면, 그의 작품은 냉정하고 무미건조하며, 모호한 상징들을 숨겨 놨다고 보인다.

 

우선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긴 뭐하지만 <예언자>엔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된 장면이 꽤 많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핸드헬드 기법이 현장성 강화를 위해 사용되기는 하지만, <예언자>의 경우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것 아닐까 싶다. 이를 테면, 후반부 면회실 앞을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는 세자르 루치아니(닐스 아르스트럽)의 면회 장면을 지나쳐 옆방에서 면회 중인 제베나의 등을 한동안 비춘다. 이건 관객의 시선일까? 또는 레예브의 시선일까? 그런데 이런 시선의 느낌은 전반적으로 대단히 냉정하고 무미건조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인 제베나의 입장에서 가장 따뜻했던 순간은 레예브를 죽이기 직전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입 속에 면도칼을 숨긴 채 레예브와 만난 제베나는 아마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배려하고 걱정해주는 얘기들을 듣게 된다. “커피 한 잔 할래?” “책을 읽을 줄 아니?” “글을 배워라. 감옥에서도 글을 배울 수 있다” 제베나의 괴로워하는 표정과 뒤이은 살해. 이 장면은 레예브가 유사 아버지로 기능하는 순간이며, 뒤이은 살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의미한다는 건 너무 명백해 보인다. 레예브의 유령이 출몰하는 장면들도 대단히 기이하다. 이건 정말 기이해서가 아니라 너무 일상적이어서 기이하다는 것이다. 레예브는 말동무도 되어 주고, 생일도 축하해주며, 여러 조언들을 해준다. 그런데 이것이 제베나의 괴로움의 표현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제베나의 능력(예언자)에 대한 상징인지는 모호하다. (사슴이 나타나는 꿈과 그것의 현실화에 대해서도)

 

레예브를 살해한 제베나는 또 한 명의 유사 아버지를 얻게 된다. 바로 살해를 지시한 세자즈 루치아니. 제베나가 레예브에게 글을 배웠다면(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배려) 세자르 루치아니에게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과 엄격함 등을 배워나가게 되고, 또 한 번 유사 아버지에 대한 배신의 칼날을 갈게 된다.

 

한편으로 이 영화를 프랑스 내 인종 문제로 볼 여지가 분명히 있지만, 의미를 두기엔 그다지 적합하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각종 인종 내지는 출신 지역에 따른 여러 편견들이 운위되긴 하지만, 그건 일종의 잡설이며, 그저 프랑스 감옥을 구성하고 있는 현실임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중간을 뭉턱 들어내고 맨 처음과 맨 끝을 연결시켜 보면, 그 차이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백지상태의 한 청년이 감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성장한다. 그가 감옥에서 나올 땐, 그의 친구 또는 부하, 어쨌거나 몇 대의 차량이 그를 기다리고 있고, 그의 동료들이 줄지어 그를 따른다. 제베나는 앞으로 그가 보호하게 될 형수와 함께 걸으며 손짓으로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가 엄청난 권력을 장악했음을 상징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는 그 지점에서 막을 내린다. 사실 영화의 진행은 충분히 예상할만한 경로를 걸어가기는 하지만, 이런 영화(!)가 일반적으로 주인공이 몰락한 지점에서 끝을 내는 반면, <예언자>는 가장 막강했을 때, 또는 더 막강해질 지점에서 막을 내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그의 유사 아버지였던 레예브의 죽음이나 루치아니의 몰락이 결국엔 제베나의 운명이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왜냐면 그게 바로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며, 제베나 역시 그렇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 154분이라는 엄청난 시간.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예언자>는 긴장을 끈을 놓지 않게 한다. 간만에 경험해보는 영화적 즐거움.

 

 


(총 0명 참여)
duck77177
잘 읽었습니다..   
2010-04-12 01:44
smc1220
감사   
2010-03-31 17:10
image39
잘읽었습니다.^^   
2010-03-31 09:16
hsgj
잘읽었습니당   
2010-03-30 23:18
enter8022
감사   
2010-03-30 17:57
boksh2
감사   
2010-03-30 15:4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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