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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밭이 되어버린 학교 클래스
jimmani 2010-04-06 오후 5:19:53 798   [0]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고 새삼 감동을 받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자신에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드물게 일어나면 감흥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다. 이상적인 스승의 모습이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갖가지 문제를 지닌 많은 학생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감싸주고 멋지게 인도하는 스승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얻는 것은,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를 찾아보기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뿐만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이상 그 안에 상주하는 인간들은 영화 속 개개인들처럼 과감히 독립하기가 매우 힘들다. 시스템은 개인에게 합류하지 않으면 버려질 것이라고 위협하고, 너무 나약한 개인은 의지는 품고 있을지언정 그것을 좀처럼 실천하지는 못한 채 결국 시스템 속에서 암묵적으로 적응하게 마련이다. 교육의 현실에도 이는 유사하게 적용되지만 유독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여기서 기대하는 것이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신성하기까지 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도 그런 행위의 영향으로 인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니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시스템은 이를 냉정하게 거부한다. 할리우드의 그 흔한 학교 드라마들 뒤에 숨어 있는 시린 현실은 이런 것이다. <클래스>는 그 현실에 주저없이 카메라를 갖다댄 영화다.

 

9월이 되자 파리 시내의 어느 공립 중학교는 새학기를 맞이한다. 새로 시작하는 만큼 어수선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프랑스어 담당이자 4학년 3반 담임이기도 한 교사 프랑수아 마랭(프랑수아 베고도)은 말많고 탈많은 가운데에서도 학생들을 차분하게 인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프리카 출신, 중국 출신, 아랍계 출신 등 저마다 다른 뿌리를 지닌 학생들은 그만큼 품고 있는 생각들도 천차만별이다. 매 수업시간마다 프랑수아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고요한 평화를 찾기란 좀처럼 힘들다. 학생들은 개개인의 사정을 이해하는 척만 하는 것 같은 선생님을 쉽게 믿지 못하고, 프랑수아는 교사와 학생간의 기본적인 예절도 우습게 아는 학생들이 섭섭할 따름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골백번 폭발하고도 남았을 상황에서도 프랑수아는 매 상황을 차분히 대처하며 수업을 원활히 이어나가려 노력하고, 그 노력이 그나마 결실을 보이는 건지 문제만 일으키던 학생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순간의 충돌로 프랑수아와 학생들의 갈등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이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기 시작한다.

 
 

<클래스>는 엄연한 극영화지만 리얼리티는 웬만한 다큐멘터리보다 더 강하다. 아니나다를까 주인공인 프랑수아 마랭 역을 맡은 프랑수아 베고도는 이 영화의 원작 책의 저자이자 실제 교사이다. 또한 그의 반 학생들로 등장하는 청소년 배우들 또한 실제 중학생들로, 영화 속에서도 그들의 실명이 그대로 사용된다. 음악은 물론이요,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좀처럼 인위적인 접근은 배제한 채 학교와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양상을 묵묵히 따라가기만 한다. 잦은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이 적극적으로 노출되고,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갈등의 선을 따라가는 전개는 무기 없는 전쟁터와도 같은 교실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마치 어느 평범한 프랑스 중학교 교실의 실제 풍경을 훔쳐보는 듯하다. 누구 하나 여느 극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인 감정 표현으로 연기하는 티를 내지 않지만, 조근조근거리면서 주고 받는 대화의 양은 갈수록 축적되면서 여느 영화들 못지 않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이 영화는 흥미진진하다.

 

실제 교사이자 학생이기도 한 배우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는 <클래스>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프랑수아 베고도에게선 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그 감정들을 요란스럽게 표출하지 않는다. 화가 나지만 화나지 않은 척하고, 흥분하지만 흥분하지 않은 척 한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성실한 학생, 내내 깐족대는 학생, 말썽쟁이 학생 등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은 어떻게 보면 스테레오타입에 가깝지만, 말을 더듬고 얼버무리는 등의 가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는 그들을 전형성과 사실성을 함께 갖춘 캐릭터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덕분에, 영화는 각본을 따라가는 드라마의 형태라기보다 어느 교실의 실제상황을 그대로 중계하는 듯한 형태가 된다.

 
 

<클래스>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기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 영화도 극영화이다보니 갈등이 촉발하고 전개되다가 폭발하면서 진정되는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기승전결의 구조 역시 억지로 극적으로 끌어올리기보다 부산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음악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도 아니고, 여느 예술영화처럼 잦은 롱테이크로 서정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일도 하지 않으며, 앞서 얘기했듯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도 없다. 벌어지는 사건들도 매우 특수하다기보다 여느 학교마다 지금 이 순간도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일들로 꾸며진다. 이처럼 <클래스>는 어느 학교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인위적인 형식을 거부한 채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전개한다. 그런데 관객은 이를 보고 있자면 여느 장르영화 볼 때 못지 않은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하지만 이 감정이란 오락영화를 보며 느끼는 쾌감이 아닌 답답한 긴장에 가깝다.

 

흥미진진하되 쾌감 대신에 답답함이 지배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우리가 지금 처한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남는 건 바람을 충족시키는 대리만족의 느낌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과 대면했을 때의 쓴맛이다. <클래스>에 비춰지는 우리가 처한 모습이란, 교육이라는 신성한 행위의 가치가 점점 빛을 잃어가는 교육계의 현실이다. 옛날에는 늘 '스승의 은혜'를 떠올리며 그 너그러운 관심과 사랑으로 모두를 보듬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마저 갈수록 희미해진다. 일단 그런 선생님들이 나와야 할 학교라는 체제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인간관계를 쌓고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을 그 과정에서 배워가던 학교는 이제 아이들을 사회가 원하는 규격에 맞게 생산해내는 공장처럼 변질된 느낌이다. 모든 것은 점수로 평가되고, 잘못은 벌점으로 누적되어 처벌로 이어진다. 아이가 얼마나 좋은 학생인가는 점수가 얼마나 높은지로 평가된다. 설사 아이의 평판이 낮아서 부모가 '집에서는 너무나 착한 아이다'라고 호소해도 학교는 '우리는 지금 학교 안에서의 일을 얘기하고 있지 않나'라며 말을 자른다. 아이들을 온전히 길러내는 것보다 학교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게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교사들은 학교 내의 질서를 위해 아이들을 자신도 모르게 규격화할 뿐이다.

 

<클래스> 속 4학년 3반의 풍경은 어쩌면 우리가 어느 학교를 가나 만날지도 모를 한편으론 섬뜩하기까지 한 교실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곳이다. 학교의 정체성이 변해버린 상황에서, 아이들은 예전처럼 선생님을 신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수 없고, 교사들은 예전처럼 아이들을 마냥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없다. 이미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을 쌓아놓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데, 이것은 서로에 대한 소통이라기보다 공격과 방어가 교차하는 일종의 전쟁이다. 교사는 아이들에게서 언제 어떤 말썽이 벌어질지 몰라 예의주시해야 하며, 아이들은 선생님이 행여 무슨 실수라도 할까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어떤 해프닝이라도 생긴다 싶으면, 그것은 곧 격렬한 기싸움으로 이어진다. 언제나 살얼음판, 지뢰밭과도 같은 교실 풍경이다.

 
 

물론 이런 환경 속에서 프랑수아는 그나마 이성과 감정을 조절해가며 아이들을 이끌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기어오르려고 해도 요즘 아이들은 그러려니 하며 몇번을 참고, 아이들이 무슨 트집이라도 잡으면 '꼰대' 대접은 피하기 위해 순순히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배려가 혁신으로 연결되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 역시 거대 시스템 속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개인이기에, 이것을 혼자 뒤집어 엎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자신의 의지를 외부에 피력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불합리적인 결과가 벌어져도 결국 뒤돌아서서 한숨만 쉴 뿐. 영화는 이렇게 우리가 원하는 학교의 모습이 아닌, 쓰디쓴 맛을 참고 삼켜야 하는 현실 속 학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굳이 화해시키려 들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서로 으르렁대지만,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관계 형성보다 규격화에 관심이 더 많은 시스템에 의해 학교라는 곳마저 재단되어 버린 현실에서, 학생들을 '보살피는 것'보다 '감시'해야 하는 선생님이나, 선생님의 진심도 믿지 못하고 방어벽부터 쳐야 하는 아이들이나 모두가 희생양인 셈이다. 가장 큰 책임은 이들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버린 시스템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한 차례 큰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학교는 다시 평화를 되찾은 듯 보인다. 운동장에서 서로 어울려 공을 차는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는 이전과 같이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하던 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비춰지는 텅 빈 교실. 이 숨막히는 곳이 그들을 사랑의 관계가 아닌 견제와 갈등의 관계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그들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로 만났더라면 정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그때처럼 순수하게 행복한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정해진 답이라는 것은 없다. 교육계와 사회의 생리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그것이 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만 깨닫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답은 될 수 있다. '질문은 하되 답은 하지 않는다'는 로랑 캉테 감독의 말처럼 <클래스>는 굳이 납득시키려 하기보다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답을 낳게 한다.


(총 0명 참여)
snc1228y
감사   
2010-04-10 09:05
ssh2821
잘 읽었습니다   
2010-04-07 20:29
smc1220
감사요   
2010-04-07 17:37
enter8022
잘읽었습니다.   
2010-04-07 15:35
kkmkyr
궁금해 지네요   
2010-04-07 12:29
ghkxn
좋은 영화   
2010-04-07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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