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현장으로 안내하는 폴 그린그래스.... ★★★☆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해 바그다드에 급파된 로이 밀러 준위(맷 데이먼)는 익명의 제보자가 제공한 정보에 따라 수색을 벌이지만 매번 허탕만 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모종의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밀러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국방부 요원 파운드스톤(그렉 키니어)의 방해를 피해 CIA 요원 마틴 브라운(브렌단 글리슨)의 도움을 받아 점점 진실에 가깝게 다가선다.
우선 영화 제목 <그린 존>은 미군이 주둔해 있는 바그다드의 특별 경계구역을 의미한다. 기존 후세인 대통령궁이었던 이곳은 일종의 전쟁 속 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바그다드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총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여기 <그린 존>은 수영복을 입고 아름다운 미녀를 옆에 끼고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유유자적 즐길 수 있다. 이건 존재할 수 없는 아이러니다. 로이 밀러 일행이 ‘그린 존’을 들어올 때 이들은 ‘그린 존’의 풍경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깐 대량살상무기 역시 ‘전쟁 속 낙원’이라는 말처럼 결국엔 허위이며 환상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최소한 나를 포함해 내 주위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미국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는 만약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나온다면 그건 미국이 몰래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런 주장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사실 이라크가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것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지원 때문임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무튼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미국의 개입으로 쿠웨이트에서 쫓겨난 이후,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10년 이상, 이라크는 24시간 미국의 인공위성과 경보기 등의 감시체제 하에 들어가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가 미국의 감시를 피해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성공한다는 건 상정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2001년 9ㆍ11 테러에 대한 일종의 보복 차원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 침공을 추진하자, 다급해진 후세인 정권은 대량살상무기 제조와 관련한 국제기구의 사찰에 응하는 등 사실상 백지 투항했다는 것도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미국은 이유 불문하고 이라크를 침공했고, 전쟁의 이유가 됐던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결정난지 오래며,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세력은 정권재창출에 실패했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둘러싼 음모를 다룬 스릴러 영화로 관람하기엔 너무 심심하고 뻔한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영화는 그저 이라크 전쟁을 모티브로 한 폴 그랜그래스표 액션 영화라고 보는 게 더 가까울 것이다.
실화를 주제로 한 폴 그린그래스표 영화의 특징은 <블러디 선데이>, <플라이트 93> 등을 통해 봐왔다 시피, 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 실제 현장에 와 있는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다. <그린 존>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시종일관 들고 뛰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어 화면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출렁대고, 인물들의 대화 장면이든 액션장면이든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입회해 있는 듯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상당히 복잡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는 것도 <그린 존>의 강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고, 결국엔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의로운 편(?)이건 아니건 이라크의 미래를 이라크인의 손이 아닌 미국이 좌지우지하려는 것에 대한 비판도 뻔하긴 하지만 날카로운 편이다.
※ 관객의 긴장감과 아드레날린 수치를 급격히 고양시키는 음악의 사용도 흥미롭다. 물론 음악의 느낌은 <본 얼티메이텀>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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