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거짓말...★★★☆
거짓말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물론 있다.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환상을 주입시켜야 한다는 말처럼 주로 이런 거짓말들은 위정자, 권력자들의 주요 레퍼토리 중의 하나이다. 한국 사회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대로 권력에 저항하는 세력 또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은 상대적으로 과도한 도덕적 기준을 제시받는다. 조금의 거짓말이나 조금의 비도덕적 행동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거짓말로 글로벌 자본을 비웃으며, 그 빈틈을 파고들어 민중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골 때리는 단체가 있다. ‘예스맨’ 앤디와 마이크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다국적 기업 다우의 대변인으로 사칭해 20년 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대참사에 대한 책임과 거액의 보상을 약속하는 인터뷰를 실시하고, 이를 <BBC 방송>은 특종이라며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보도하는 해프닝을 연출한다. 즉각 다우에선 이러한 내용을 부정하고 <BBC 방송>은 엄청난 방송 사고에 아연실색한다. 방송의 결과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건 인도 보팔에서의 대참사와 거대 기업의 책임 방기에 대한 환기다. 잠시나마 사람들은 보팔의 참혹한 현실에 눈을 돌리고 다우의 비인간적 처사에 분개한다.
이런 비난에 대해 다우는 ‘다우는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라는 식의 이미지 광고로 대응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태안 앞바다 유조선 사고 및 삼성의 책임, 부도덕성 문제와 ‘인간을 생각하는 삼성’을 강조하는 광고의 문제? 삼성 광고 이면에 감춰진 삼성의 추악한 모습? 최근 발간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이런 점에서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들은 다양한 국제기구와 정부조직의 일원을 사칭해 관련 회의장에서 말도 안 되는 연구 결과 등을 발표하며 글로벌 자본과 시장 경제 체제를 비웃고 조롱해댄다. 이들의 계획은 알고 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기업이나 단체의 홈페이지와 비슷한 홈페이지를 개설해 기다린다. 진짜 홈페이지라고 착각한 이들에 의해 국제회의에 초청되거나 인터뷰 요청이 있으면, 이를 수락한 후 사고(!)를 친다.
다우의 보상 건 외에 화석 연료를 남용하는 엑슨사의 대리인을 사칭해 사체를 원료로 하는 ‘친환경 초’를 개발했다며 발표하고, 재난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를 사칭해 엉터리 개인용 대피 장비를 소개한다. 정부 조직을 대리해 서민들이 원하는 임대 아파트 문제 해결을 공언한다. 물론 이들의 거짓말은 대부분 현장에서 발각되고 이들은 쫓겨나거나 거짓말쟁이로 비난받는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들의 허황된 거짓말이나 발표가 이들이 내세운 단체나 기업의 유명세에 가려져 현장에 있는 참석자들 대부분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가장 압권은 개인 재난 물품의 소개 장면이다. 그저 코미디에 불과한 상품에 대해 참석자들의 반응은 ‘군사용으로 더 적당하겠다’ ‘돈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만이 살 수 있겠다’며 우호적 관심을 내비친다. 흔들림 없이 단단해 보였던 그들의 체제가 이토록 허술한 것인지 기가 찰 정도다.
이들을 비난하는 논리는 대체로 피해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들의 거짓말은 현안에 대해 주위를 환기시키고 좋은 대책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실제 다우 건 보상 거짓말 이후 인도 보팔 현지를 찾은 이들은 참사 피해자들로부터 잠시라도 희망을 갖게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대체 이들은 왜 유명 기업이나 단체를 사칭해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것일까? 이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거대 기업과 자본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민중이,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을 위해 이들이 내세우는 방법은 ‘거리로 나서라, 시민단체에 가입하고 기부금을 내고 활동하라’ 라는 것이다. 세계화 체제의 빈틈을 공략하는 이들의 참신한 행동에 비춰보면 좀 구태의연하고 뻔한 주장이긴 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에 이론은 있을 수 있어도 행동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이 진리라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 이들의 거짓말로 다우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의 피해를 끼쳤음에도 이들은 고소되지 않았다. 우리라면 수도 없이 감옥에 갔을 이들은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여러 단체를 사칭해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미네르바의 구속이라든가 최근 김연아 회피 동영상으로 인한 고소 등을 고려해볼 때 어쨌거나 그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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