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은 불에 탄 채 폐허가 되어 버린 작은 마을을 비춘 후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과연 이틀 동안 이 마을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건을 시간대별로 정리하자면 미군이 개발한 치명적인 세균성 독소(바이러스)를 싣고 가던 군수송기가 마을 인근 하천에 추락해 바이러스가 유출된 이후, 야구장에 총을 들고 왔다가 사살당하거나 부인과 아내를 불에 태워 죽이는 등 마을주민들은 하나 둘씩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정부는 미군을 투입해 마을 전체를 폐쇄하고 바이러스 유출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보안관 데이빗(티모시 올리펀트)은 임신한 아내 쥬디(라다 미첼)와 함께 감염자들과 미군을 피해 인근 도시로의 탈출을 꾀한다.
<크레이지>는 말 그대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광기에 휩싸여 공격성이 강화된 감염자들을 다룬 영화로서 감염자들의 증세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좀비의 일종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영화는 좀비 영화의 거장인 조지 로메로 감독의 <분노의 대결투>를 리메이크한 것이라 하는데, 원작을 보지 않아 두 영화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크레이지>의 전반적인 전개 과정은 <레지던트 이블>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고의든 실수든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출되고 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부대가 투입되며, 상황을 전반적으로 체크하고 있는 조직(정부 또는 대기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바이라스의 유출 방지에 실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는 좀비 영화들은 많다. 이런 점에서 <크레이지>가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 보이거나 두 주인공이 살아남는 과정에서 어설프고 허술한 측면이 존재한다. 한 마을을 폐쇄한다면 당연히 도로가 먼저 폐쇄되고 감시당하기 쉬운 지점이라는 건 당연한 사실임에도 당당히 차를 타거나 걸어서 도로를 이동한다는 것은 그저 화면에 멋지게 보이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거기에 가끔씩 서정적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며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한 몇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간지러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크레이지>는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로서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영화인 것도 분명하다. 특히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치고 빠지는 카메라를 이용한 깜짝 효과는 매번 가슴을 쿵하고 놀라게 하며, 몇몇 액션 시퀀스들은 나도 모르게 의자 손잡이를 꽉 잡게 되는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이러한 시퀀스 중에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집에 도착한 쥬디가 아기 방에 들렀을 때 카메라가 회전하며 구석에 서 있는 감염자를 비추는 장면과 상황을 분간하기 힘든 세차장에서의 공격 장면일 것이다. 거기에 중간 중간 아주 잠깐 늘어지는 순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적절한 리듬감을 타며 계속되는 공격은 관객의 편안한 관람(?)을 방해하기에 충분하다.
주인공 일행은 감염자만이 아니라 군의 공격도 피해야하며, 심지어 동행자의 감염 여부에 대한 의심까지 더해지는 사면초가의 상태로 내몰려진다. 감염자를 피해 세차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군의 공격으로 자동차가 터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조금의 안전지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상징인 듯싶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면, 주민들을 학살하고 불에 태우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약간 원경에서 대단히 무심한 듯 촬영되어 오히려 더 섬뜩하고 더 잔인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이 영화를 국가기구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춰 바라볼 때 이를 가장 대표하는 장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