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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혹적인 잔혹동화라니... 푸른 수염
ldk209 2010-04-12 오후 5:17:22 799   [3]
이토록 매혹적인 잔혹동화라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많은 동화들이 사실은 매우 끔찍한 묘사들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녀를 화덕 속에 넣어 불태워 죽인다든지, 구두가 벗겨지지 않아 발목을 자른다든지 등등등. 샤를 페로의 원작 <푸른 수염> 역시 마찬가지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큰 성에 살고 있는 영주 ‘푸른 수염’의 아내들은 어찌된 일인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종된다. 푸른 수염은 새로운 부인과 결혼했고, 멀리 떠나기 전 신부에게 열쇠 뭉치를 맡기면서, 어떤 방문이든 들어가도 좋지만 마지막 작은 방만은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작은 방에 들어갔다가 옛 아내들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이 신부 역시 푸른 수염에 의해 죽으려던 찰나 신부의 형제들이 나타나 푸른 수염을 죽이고 그녀를 구한다는 얘기다.

 

괜한 호기심에 대한 경고의 이야긴가? 암튼 영화 <푸른 수염>의 이야기는 두 갈레로 진행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동화 ‘푸른 수염’과 동일한 두 자매 이야기다. 아직 어린 두 자매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수녀원에서 쫓겨난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푸른 수염이 살고 있는 큰 성을 보게 된 동생 카트린느는 ‘커서 저런 큰 성에서 살겠다’고 의욕을 보이는 반면, 언니는 푸른 수염의 아내가 매번 실종된다는 얘기에 겁을 낸다.

 

이후 진행은 원작 동화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반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변주되어 나타난다. 원작에서 운명을 기다리는 순종적인 동생은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모험심 강한 소녀로, 포악하고 위협적인 푸른 수염은 늙고 추레한 이빨 빠진 호랑이로 묘사된다. 거기에 카트린느는 어림에도 매우 영악하다. 아직은 어리다는 이유로 잠자리를 거부하고, 별도의 침실을 만들어 달라고 하며, 바람피우는 현장이라고 의심 받을 상황에서도 남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말솜씨로 위기를 넘긴다. 작은 방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벌며 결국엔 스스로의 목숨을 지켜내는 재기를 발휘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다락방에서 동화 ‘푸른 수염’을 읽는 두 자매의 이야기다. 동생 이름은 여기서도 카트린느(감독 이름)이며, 성격도 첫 번째 이야기 속 동생과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 데, 언니는 끔찍하다고 싫어하는 ‘푸른 수염’을 동생은 굳이 읽어주려 한다. 언니는 자신이 동생을 돌봐야 하는 입장임을 몇 차례 강조하는 반면, 동생은 언니를 상대로 묘한 경쟁심을 표출한다. 바로 첫 번째 이야기의 흐름은 다락방에서 동생이 언니에게 읽어주는 동화의 흐름과 동일하게 진행된다.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들었던 생각은 카트린느 브레야의 영화가 15세 관람가라는 점에 대한 의문이었다. 금기에 도전하는 기괴하고 노골적인 표현들 내지는 이야기로 대표되는 그녀의 영화가 15세 관람가라고? 혹시 그녀가 유순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유순해지는 따위의 변화는 없었다. 15세 관람가라는 건 단지 푸른 수염과 결혼한 카트린느의 영악함의 결과로 인해 노골적 표현이 사라진 것에 대한 형식적 결과물일 뿐이었다.

 

우선 <푸른 수염>은 대단히 깔끔하고 매끄럽다. 꼭 하고자 하는 이야기 외에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그 큰 성에 마치 푸른 수염과 카트린느 만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필요한 상황에선 어디선가 꼭 필요한 인원이 등장하기는 한다. 이야기도 외곽을 돌지 않고 바로 정곡으로 돌진한다. 숨기는 것도 없고 속이는 것도 없다. 상영시간도 80분으로 짧은 편이다.

 

반면, 몇몇 장면에선 딱히 할 얘기가 없는 듯 영화는 그저 푸른 수염과 카트린느의 일상을 느리게 보여준다. 둘의 식사 장면이라든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누는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느리게 복기한다. 보통 동화들이 일상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음을 환기한다면, 이러한 장면은 동화 속 인물들에게도 역시 지루한 일상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마지막에 등장할 장면을 좀 더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인 것 같기도 하다.

 

후자의 차원에서 보면 이는 분명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화면 자체가 주는 강렬함을 떠난 평이한 일상 끝에 발견하게 되는 작은 방의 묘사와 곧 이은 다락방에서의 사고, 그리고 카트린느가 쟁반 위에 올려진 푸른 수염의 얼굴을 쓰다듬는 영화의 엔딩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괴하며 매혹적이지만, 일상과 대비되어 더욱 극명하게 선연한 이미지를 남긴다.

 

카트린느 브레야는 <푸른 수염>이라는 잔혹동화에 자매간 갈등, 특히 동생의 언니에 대한 경쟁이라는 요소를 삽입시켰고, 이는 영화 전반을 끌고 가는 묘한 긴장감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보통 언니가 동생을 위해 머리를 만져주고 책을 읽어 준다면, 다락방 속 자매는 반대로 겁을 내는 언니를 동생이 다독이며, 머리를 만져주고 책을 읽어 준다. 이런 일종의 도치된 관계는 보는 관객을 조금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다락방에선 그저 책을 읽는 행위만이 반복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으며, 영화의 마지막에 와서야 긴장감과 불안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격한 파국으로 확인된다.

 

마지막으로 과연 카트린느 브레야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감독이 결국엔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함인지 종잡기가 좀 힘들었다. 어쨌거나 열쇠는 호기심에 있는 건 확실하다. 거기에 카트린느 브레야가 강력한 여성주의자임을 고려한다면 그녀가 동화의 주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동화는 결국엔 여성에게 있어서 과한 호기심은 금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라면 어떨까? 열쇠를 주면서 열지 말라는 이야기는 사실은 열라는 얘기와 동일하다. 만약 열지 말아야 한다면 열쇠를 주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건 호기심을 이용해 죽이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비열한 영주. 동일하게 성경의 창세기를 인용해 보면, 신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능적 호기심을 잘 알고 있을 신이라면 이는 곧 먹으라는 명령이나 마찬가지 소리다. 결국은 인간에게 원죄를 만들어 에덴에서 쫓아내겠다는 비열한 의도. 그런 비열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인류사의 출발과 푸른 수염의 연쇄 살인을 저지한 것은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카트린느 브레야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닐까.

 

 


(총 0명 참여)
kkmkyr
무섭네요   
2010-04-22 12:21
ldk209
제가 카트린느 브레야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요... 그런데... 그녀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더군요...   
2010-04-14 21:41
kooshu
전 좀 많이 아쉽던데ㅠㅠㅠ   
2010-04-12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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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2009, Blue Beard / Barbe 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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