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책마다 히트를 치며 탄탄대로를 걷던 베스트셀러 작가 백희수. 그녀의 네번째 책 역시도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킨다. 하지만 곧 그녀의 책은 신인작가의 원고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게 되고
화려했던 그녀의 명성은 그 높이만큼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남편조차 자신을 믿어주지않자
부부의 관계마저도 틀어져버린다. 그렇게 2년, 평소 절친했던 편집장에게 영감을 얻을만한 장소를
소개받은 그녀는 재기를 위해 딸 연희와 그곳으로 향한다.
2년 전의 표절시비로 인해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온 희수는 노트북 모니터가 백지로
변하며 머릿속에는 단 한글자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것은 편집장에게 소개받은 베이츠
선교사 사택에서도 마찮가지다. 그렇게 책상머리에 앉아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머리를
쥐어뜯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딸 연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듣게 된다.
놀라운 창작능력으로 인기작가 반열에 올라섰던 희수에게는 누구나 예측할만한 자존심이 있다.
신인작가와의 표절시비는 그런 그녀의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힌다. 평생 자기편일거라던 남편
역시도 그녀의 읍소를 하찮은 변명처럼 치부한다.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녀에게 이번
작품은 단순한 신작이 아니다. 세상을 놀라게 해야하고 이전의 표절시비를 떠들기 좋아하는 대중
의 모함으로 만들어줄 역작이어야만 한다. 그런 부담감, 강박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창의력
을 갉아먹었다. 세상 그 어느 책과도 겹치지 않는 백희수만이 창작할 수 있는 것. 그 벽은 너무
높았다. 그런 고통이 반복되던 어느날, 그녀는 딸 연희의 이상행동을 질책하고 사랑하는 딸과의
사이마저 소원하게 된다. 단순히 딸에게 미움받지 않으려 들어주었던 이층방 언니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그녀의 머릿속에 끝내주는 원고를 써내려가게 해준다. 창작하고자 했던 갈망에 물을
축여준 딸의 이야기. 하지만 원고는 또 어느 부분에선가 더이상 진척이 없다. 책을 완성하기위해
희수는 딸 연희에게 나머지 이야기를 재촉한다. 그렇게 끝없이 딸을 다그치던 어느날 그녀는
나머지 뒷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고 드디어 그녀의 역작, 신작 [심연]을 출간한다.
[베스트셀러]는 초반부터 백희수(엄정화 분)의 광기를 부각하고 있다. 표절논란으로 그녀는
사람들이 싫어졌고 창작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책을 써냈고 또 표절시비가 일었다. 그녀조차도 자기자신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다.
백희수는 미쳤고 나쁜 엄마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녀가 딸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것의
진원지를 잘 안다. 희수 자신도 스스로의 결백을 의심하지만 관객은 이번만은 그녀가 결백함을
안다. 그녀는 책을 써냈던 광기에 필적하는 집착으로 진실에 다가선다. 이 영화는 스릴러와 심령
물의 중간쯤에 있다. 미스테리 추적극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극 초반 저택의
스산함은 희수의 광기와 결합하여 공포를 조장한다. 이층의 이상한 방이라는 컨셉은 매우 흔한
설정이지만 덕분에 천장의 소음, 1층과는 격리된 장소라는 공포의 요소를 만들어내기 쉬웠다.
게다가 다른 공포물에 비해 긴장감을 끄는 길이가 더 길었는데 이점이 신선했다. 공포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적정 타임에서 뭐가 나올 것인지를 느끼는데 이 영화는 그 시간을 끌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끌어서 사람을 놀래키는 전법을 쓰고 있다. 이쯤이면 뭐가 나올 거 같은데 하고
있기를 한참 그래야 뭐가 나온다. 무엇보다 귀신이 막 튀어나오는 스타일이 아닌 희수가 느끼는
공포를 그대로 관객도 느끼게 하는 연출이 좋았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끌어다 쓴
것 같은 소재와 전개가 신선함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후반부 책과 관련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과 결말은 미국드라마 콜드케이스+공포영화 같았다. 특히나 범인들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뭐 흔하다면 흔한 기법이지만)이 그렇게 느껴
졌다. 그리고 겹겹이 쳐놓은 소소한 반전이 별반 신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다.
전개상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대로 설치한 느낌은 아니었다. 특히 극 초반과 후반이 1부와
2부처럼 이야기가 딱 나뉜 것 같은 느낌이 별로였다. 표절에 대한 희수의 강박, 딸 연희와의
관계, 또다른 표절시비와 사건의 진실 이 세가지가 절묘하게 버무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에 엄정화라는 배우가 들어서면 얘기가 다르다. 그녀는 정말
신들린 연기를 해냈다. 연기하다가 진짜 조금은 미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녀가 연기하는
희수 때문에 관객은 조금 뻔하고 약간 덜 완성된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 매우 탄탄한 구성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시 좋은 배우는 몸값을 해낸다^^
대체로 모두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엄청 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약간 잔인할 수는 있으므로(필자는 괜찮았지만) 임산부나 물건 떨어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분들은 좀 고려를^^;; 최고는 아니어도 돈내고 본게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러닝타임이 좀 더 길어져서 이야기가 더 짜임새 있고 반전의 설치도 더 교묘했으면 진짜 작품
이 될 수도 있었을 거 같아 너무 아쉽다. 엄정화의 연기는 이보다 더 좋은 순 없을 것 같고 이
영화 이후로 그녀의 원톱 영화가 더 많이 나올 듯. 추리소설이나 탐정만화를 많이 보는 분들은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눈치를 많이 채실 것 같네요. 그만큼 약간 뻔한 인물설정, 전개. 그래도
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물으시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근래에 본 한국 스릴러 중에
는 중상에 드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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