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 먼저 자기자신에 대해 자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로 진짜사랑을 해 보았는가?!"
1997년 초록물고기, 2000년 박하사탕. 단 2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이창동 감독! 하지만 그 2편의 영화는 우리들의 마음을 열고, 정화시키는데 충분했다. 그 이창동 감독이 2002년 오아시스와 같은 사랑이야기를 가지고 우리들 곁에 다가왔다. 박하사탕에서의 설 경구와 문소리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만들어 낸 작품은 '오아시스'
뺑소니 교통사고를 일으킨 형 대신 교도소에 있다가 나온 남자 홍 종두, 교통사고로 죽은 환경미화원의 딸이자 중증 뇌성마비장애인 한 공주! 이들이 엮어 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시가 영화의 주된 스토리이다.
홍 종두역할을 맡고 있는 설 경구는 이미 박하사탕과 공공의 적에서 그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오아시스에서도 그는 강간과 폭력, 뺑소니의 전과3범이면서 가족들과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격리되고 있는 이방인과도 같은 역할을 잘 소화해 내고 있다. 허둥대는 몸놀림, 불안정한 시선, 어눌한 말투 등으로 사회의 부적응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박하사탕에서 설 경구의 첫사랑으로 잠깐 출연했던 문소리는 뇌성마비장애인의 불안정한 행동거지를 연출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사실, 기자시사회장에서는 문소리가 실제 장애인인줄 알고 착각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단지 장애인의 행동만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여러 번의 탈진과정을 거쳐 혼신의 연기를 다하는 문소리의 연기는 여배우 기근현상을 맡고 있는 우리의 영화계 현실 속에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감독 이창동은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과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에 걸맞게 작가 주의 적 정신이 강한 보기 드문 한국감독중의 하나다. 전작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이 그렇듯 오아시스도 이 감독의 작가 주의 적 색채가 강하게 들어 나 있는 작품이다. 전작에서는 절망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작품은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으며, 허식이나 오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 사회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극중 설 경구의 가족이나 문소리의 가족은 우리를 대표하는 물질만능주의의 대표적 산물이 아닐 수 없다.
크라이막스 부분에서 서로가 원하는 섹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강간이라고 몰아붙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시킨다. 연인들의 비밀스런 언어를 타인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다수의 사람들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하지 못한다라는 사실로도 재해석 할 수 있다. 그들의 가족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냉정해 질수록 그들은 그러한 사막과도 같은 사회에서 서로에게 오아시스를 만들어준다.
요즘 많은 영화관계자나 관객들은 영화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과거에 영화들을 모방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풍토 속에 영화 오아시스는 나름대로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독창적이면서도 우리에게 계속적인 질문을 던져내는 색다른 멜로 영화다. 챔피언이 한국영화의 터닝포인트와 같은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이번 오아시스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줄 것이라 기대를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