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 해 극장에서 접한 영화 중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걸작이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전쟁 영화였다는 이유로, 집에서 몇 번 봤지만 스크린에서 보면 집에서 보는 것과는 분명히 틀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생과 극장가서 어렵게(?) 봤던 영화였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 역시 스크린으로 보는 건 뭔가 틀려도 한참 틀리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왔었다. 분명히 그 이전에도 봤던 영화였지만, 극장에서 대했을 떄에 난 처음 봤을 떄와 거의 동등한 수준의 공포와 전율을 느꼈었다.
<허트 로커>도 이와 비슷한 부류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작년 1월이었을 것이다. 그 때 이 영화의 이름을 처음 듣고, 스샷을 보았을 때에는 무슨 비디오 용 영화인 줄 알았다. 게다가 미국에서 만든 영화면서 미국에서도 개봉을 안 했었으니 말이다. 그 떄는 그러면서 넘겼었다. 그러다가 6월 말에,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또 다시 들려왔다. 그 당시 <트랜스포머 2>에 대해 대놓고 두뇌도 없이 부술 줄만 아는 시끌벅적한 끔찍한 영화라고 경멸하던 미국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영화를 적극 지지하며 <트랜스포머 2>에 대한 온갖 불쾌함을 다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오죽하면 이 영화가 올해의 최고 액션 영화가 아니라면 내 차를 폭파시켜버리겠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이러다 아카데미상까지 노려볼만하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봐 버렸었다. 그 때, 정말 대단하고 음침한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고 3번 씩이나 보면서도, 과연 이게 우리 나라에서 개봉을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에 미국 평론가 상의 작품상, 감독상을 거의 몰표 수준으로 받고, 아카데미까지 휩쓸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이건 어찌보면 감독의 명성에 비해 소품과도 같은 영화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바타>의 손을 들어준 골든 글로브상이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결국 국내에서 개봉을 개봉했을 때, 시험 끝나기 전에 극장 상영 내리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을 하다가, 결국 시럼 끝나는 날에 극장에서 상영을 하길래, 학교 끝나고 바로 보러갔다. 그리고 나서, 난 <지옥의 묵시록>을 봤던 것과 비슷한 것을 느꼈다. 집에서 몇 번 보긴 했어도 이런 영화는 자고로 스크린으로 봐야하고, 확실히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걸 말이다.
2. 그걸 느끼게 했던 요소는 바로 사운드와 극도로 섬세한 영상이고, 그 요소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엄청난 서스펜스에 있다. 먼저 음향에 대해서. 집에 있는 5.1 스피커도 결코 약하다는 생각은 없지만 집에서 스피커 음량을 맘껏 키우고 보는 것과 극장에서의 엄청난 사운드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질적인 차이가 느껴지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들려지는 폭발음, 격발음은 정말 엄청난 리얼리티를 자랑하고, 이 영화에 사용된 효과음, 음항효과 역시 정말 훌륭하다. 이 영화의 음향 감독은 효과음과 배경 음악을 사용해서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장면과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쥐락펴락하는 장면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 어떠한 장면에서도 결코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적게 사용했다는 느낌을 주질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 극도로 섬세한 영상. 처음 보고 나서 이 영화의 감독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선 굵은 전쟁 영화는 거칠고 현실적이고 남성적이다.(여성 감독다운 섬세함도 물론 느낄 수 있긴 하지만...) 최근에 나왔던 <그린 존>과 같은 사람인 배리 에크로이드가 찰영했는데, 이 영화는 그보다 더 아찔한 사실감과 현장감을 준다. 아찔할 정도로 사실적인 헨드헬드 기법과 폭발할 때의 미세한 모레알 하나 하나를 잡아내는 세심한 카메라 테크닉이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을 넘어서는데, 이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폭발 장면에서도 바로 그것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존의 전쟁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디테일한 장면의 위력과 생생함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최근에 나왔던 수많은 영화와도 비교 할 수 없는 엄청난 수준에 도달한다.(비교한다면 배경 음악을 단 하나도 사용 안 하고도 정말 엄청난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대단한 테크닉을 구사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도....) 여기에는 정말이지 여러 가지 종류의 해체하기 힘든 폭탄들이 나오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 폭탄을 해체해야만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한 폭탄을 해체하는 동안에 주위의 누군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고 누군가는 그들을 카메라로 찰영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이 해채하는 동안에 핸드폰을 사용해서 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다. 언제 다가올 줄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공존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폭탄을 해채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정말 피가 말리게 한다.(이러한 폭탄 해체 장면에서, 주인공은 정말 무모한 행동을 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서스펜스를 주기도 한다.) 폭탄을 해채하는 장면들 말고도 중반부에 사막 한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저격전이 한 번 있는데, 배경 음악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영상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떠한 저격전 장면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스릴을 느낄 수 있다.
3. <지옥의 묵시록>처럼, 시종 일관 강렬한 이 전쟁 영화 역시 전쟁 영화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휴머니즘과 반전 메시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은 밝은 햇살 아래에서 진행되지만, 다른 걸작 전쟁 영화처럼, 이 영화에서의 전쟁터는 어둡고 음울한,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이 영화는 지옥 같은 전쟁으로 인해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폭력성에 대한 탐구이다. 여기에는 특정한 정치적인 입장이 존재하질 않는다. 그저 그는, 살아있기 때문에, 이 지옥과도 같은 곳에 더욱 더 크게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는 전쟁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빠져나올 수 없는 정도로 중독된다. 전쟁은 마약이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주인공인 제임스 병장은 이미 이 말대로, 전쟁의 치열함, 그 중에서도 폭탄 해체에 중독되어있다.폭발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 나오는 첫 장면차럼, 이 일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873개의 폭탄을 해체했다고 말하는 제임스 병장은 결코 전쟁 영웅은 아니다. 그 많은 폭탄을 해체한 것도, 그가 능력있기도 하지만, 폭탄으로 인해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많은 폭탄을 해체하면서, 그는 이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이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을 통해 옮겨오는 스릴이나 생성되는 아드레날린에 마약처럼 종독되어있다. 어떻게보면, 그는 그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의 침대 밑에는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던 솜씨 좋은 폭발물의 장치가 한 상자 가득하게 있다. 이러다보니, 그는 가정에 돌아가서도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질 못한다. 시리얼 고르는 거도 힘들어한다. 그는 애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장난감도 좋아하고 엄마도 좋아하고 아빠도 좋아하지만 너도 세월이 지나가면 좋아하는게 점차 줄어들거야. 내 나이가 되니까, 나에겐 좋아하는게 한 개 밖에 없다. 그의 머릿 속에 있는 것, 그가 좋아하는 것. 제임스에게 그것은 폭탄 해체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다시 전쟁터로 돌아간다. 영웅을 되기 위함도 아니고, 그가 유일하게 잘 할 수 있고, 유일하게 그가 빠져있는 것이고 그에게 유일하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폭탄 해체를 위해서. 그리고 중대 로테이션이 365일 남은 상황에서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서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보여지는 건, 여유와 미소이다.
4.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캐스팅에 대해. 첫 장면과 중간 장면에 각각 깜짝 출연하는 가이 피어스와 랄프 파인즈도 좋은 인상을 남기지만, 가장 대단한 인상을 남긴 건 역시 제레미 레너다. 폭탄을 해체하는 그의 모습이나 폭탄을 향해 걸어갈 때의 그 표정. 이 영화는 그 표정을 통해 보여준다. 전쟁이라는 지옥에 마약처럼 중독되서 헤어나오고 싶어하면서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