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간의 스포일러성 느낌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1. 일단 이걸 보기 전에 김기영 감독님이 예전에 만드신 걸작인 원작 <하녀>를 다시 보려다가 보지 않았다.(그것도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대해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건 일단 정말 대단하고 파격적인 영화였다는 것과 마지막에 나오는 그 문제의(!) 계단 장면 뿐이었다. 원작을 다시 안 본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걸작을 리메이크한 영화 치고 원작과 비교했을 때 “리메이크를 정말 잘 했구나”라고 느낀 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작의 아우라 속에서 보다 보니 그렇게까지 이상한 영화는 아니었는데도 ‘‘별로다’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까.
2.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보고 나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정말 돈 벌기로 작정하고 한 홍보구나 이거였다. 에로틱 서스펜스라며. 내 친구들은 ‘전도연 벗는 거 보니까 좋겠다. 열라 야하다던데 극장 가서 보다니... 나도 좀 데려가주지 ㅠㅠ’ 이려면서 부러워(?) 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까, 생각만큼이나 선정적이진 않았다. 수위를 높이라면 더 높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영화에서의 그러한 장면들은 비주얼보다는 사운드를 더 많이 의존하는 듯했고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사운드의 자극 수준이 더 높았다.(시각적으로 자극하는 건 이정재의 몸매 정도....) 그리고 사실상 서스펜스는 거의 없다. 아니, 애시당초에 그런 걸 개입시킬 생각이 감독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냉소와 조롱으로 일관짓는 영화니까.
영화가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격스럽지 않은 영화가 되버렸다. 한 상류층 집에 은이가 하녀가 들어온다. 은이는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그 집의 주인집 남자인 훈과 성적인 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 임신까지 하게 된다. 그걸 알게 된 늙은 하녀은 병식은 주인집 아내 헤라의 어머니인 미희한테 그걸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이는 결국 그들의 계획하에 임신한 아이를 잃게 되고 은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복수를 감행한다. 한 2~3년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파격적인 이야기겠지만, 아내의 유혹과 같은 드라마가 대박을 친 이후 이러한 이야기는 이제 익숙해졌다. 조금만 더 발전시킨다면 일일드라마로 해도 될 이야기랄까.
3. 겉이 정말 번지르르한 영화다.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주인집 세트는, 내가 여지껏까지 봤던 한국 영화에서의 세트 중 5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소품을 적당한 곳에 배치하고, 구조도 영화의 성격과 딱 맞는 것 같다. 공간 활용 역시 대단했고. 그리고 주인집을 비추는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충격적이거나 그로테스트한 느낌은 적어도, 상당히, 뭐랄까.... 품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집에서 주인들은 엄청나게 있어보이려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인 듯 오페라를 틀어놓거나 피아노를 친다. 이러한 장식과 치장은, 약간은 지나친 듯 했어도 (세련되고 약간은 - 절대로 지나치지 않은 - 자기과시용 카메라워크과 기교 있는 배경 음악이 있는) 이런 종류의 연출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나한테, 이 점은 확실히 만족이다. 대신 번지르르한 장식이 좋다보니,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속은 약간 부실했다는 느낌이다. 정교한 맞물림이 없었달까. 중간 중간에 왜 이렇게 전개되는 건지 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4, 캐스팅이 정말 잘 되어있다. 전도연이 아니었다면 확실히 은이라는 캐릭터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설사 존재했다고 할 지라도 이 정도로 살아있는 캐릭터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애시당초 이 캐릭터는 이해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으니...) 밀양에 이어서 하녀에서도 이 정도 모습을 보여주다니. 이제 그녀는 정말 연기의 신의 자리에 다 올라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재도. 약간 마초스러웠던 태풍에서의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정말 새로웠고 강렬했다(특히 그 몸매. 정말 탐나드라 ㅠㅠ). 젊은 나이에 맞지 않는 듯한 캐릭터를 자꾸만 맡으시는 서우 역시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선사한다. 병식으로 나오는 윤여정은 이 영화를 코미디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는 말이면 충분할 거 같다. 어쩌면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해라의 엄마로 나오는 박지영은, 정말 짜증나는 캐릭터를 맡아서 정말 치가 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5. 이 영화는 끝까지 냉소로 일관하는 영화다. 화려하게 장식한 삼류 막장 드라마의 탈을 쓴 인간의 욕망과 추함, 속물스러움에 대한 조롱, 사회 계급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보여주는 영화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 영화는 정치에 대한 조롱과 정권, 위정자들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페라와 클래식과 화려하게 꾸며진 집으로 대변되는 그들의 품위있는 삶 속에 있는 온갖 추잡하고 이기적인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훈이 은이와 관계를 맺은 후 돈을 주고, 아기를 낙태하면 1억을 준다고 하는 등... 그들은 돈으로 모든 걸 덮으려고 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그래도 안 되니까, 그들은 같은 인간으로서 정말 치가 떨리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 집에서 가진 자들은, 그 가진 것을 지켜내기 위해 가지지 않은 자를 파멸시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또 누군가의 하녀 신세가 되고,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기생충처럼 붙어서 번식한다.
(누군가 건물 위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하는) 오프닝 장면에서 비추는 사회는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현실 속 모습이다. 그 뛰어내린 사람을, 사람들은 묵묵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 은이가 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백치 같은 그녀는, 이러한 아더매치(극중 대사다.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한 사회 속에서 있다가 부잣집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가 있었던 현실과 비교하면, 이 곳은 그야말로 신세계 같다. 더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동시에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가 차갑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조롱한다. 주로 병식을 통해서다. 침대에 누워서 아더매치를 외치는 모습은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지지만, 훈과 헤라가 나간 후 해방이다 이러면서 기뻐하는 모습은 정말 통쾌하다. 이러한 블랙 코미디가 정말 잘 먹히는 장면이 몇 장면 더 있는데, 출장을 갔다가 공항으로 들어오는 훈의 뒤에 같이 들어오던 정장입은 그의 부하(다른 표현을 찾지 못해서 걍 부하...)가 미끄러지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은이가 복수하러 집에 들어와서 헤라가 낳은 아기를 만질 때 어쩔 줄 몰라하는 훈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병식이 훈과 헤라에게 멋지게(?) 한 마디 하는 장면도 그러한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장면에서 누군가 자살했을 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것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은이가 보여주는 행동 역시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마치 아무도 없었던 것 마냥. 그녀에게 있는 것을 다 빨아먹은 그들에게, 은이가 그런 행동을 보여준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 사건 이후, 그들의 삶은 다시 평범하게 돌아간다. 있어보이는 삶. 아들 생일 때 샴페인을 터뜨리는 모습. 그러면서 감독은 보는 이들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던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이런 곳이다고 말하는 듯이.
p.s 1. 이제 기억 속에 얼마 없는 원작 하녀를 제대로 보는 일만 남았구나...
2. 마지막으로 극중에서 헤라의 딸로 나오는 이 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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