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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유머가 숨 쉬는 임상수의 세계... 하녀
ldk209 2010-05-24 오후 3:24:32 1693   [6]
서늘한 유머가 숨 쉬는 임상수의 세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영화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 그러니깐 이번 2010년작 <하녀>의 원작을 얘기만 들었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가끔 영화 관련 TV 프로그램을 통해 몇 장면을 본 기억은 난다) 그럼에도 덜 안타까운 건, 여러 영화 평론가들의 의견이 두 영화의 비교는 무의미할 정도로 다르다는 것과 2010년작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의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전적으로 새롭게 재창조된 임상수의 세계라는 것이다. 마치 전작 <오래된 정원>이 황석영의 원작과 별 관계가 없듯이 말이다.

 

<하녀>의 오프닝은 매우 인상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쾌락을 쫓는 도시의 환락가. 그 속을 누비며 노동하는 여성들을 카메라는 한 동안 비춘다.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고, 전단지를 뿌린다. 모두 여성이다. 심지어 뛰어오는 경찰조차 여경이다. 카메라는 노동하는 여성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향유하는 일단의 여성들을 비춘다. 역시 모두 여성이다.

 

그러한 쾌락의 거리에 한 여성(!)이 투신을 한다. <시>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칸영화제에 동반 진출한 두 감독의 오프닝이 모두 누군가의 투신으로 시작한다는 건 꽤나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시>의 투신이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계속된 성폭행으로 인한 자살이라면, <하녀>에서의 투신은 정확히 설명되진 않지만, 영화 전체적인 논리 속에서 유추 가능하다. 신자유주의 세계, 더욱 더 강화되어 가는 부익부 빈익빈,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으로 노동력을 구매하지만, 단지 노동력만이 구매되는 건 아니며, 노동력을 갖춘 특정인의 인격과 가치관 등도 대형마트의 묶음 상품처럼 거래된다. 이 체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경제 활동의 가장 하단부를 차지하고 있으며(그 중 더 하단부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일 것이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는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누군가에 의해 메워진다. 한 여성의 투신자살 후 은이(전도연)는 하녀로 그러한 체제에 편입되었고, 은이의 죽음 이후에도 역시 그 빈자리는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되었다)

 

오프닝에서 느껴지듯 <하녀>는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다. 말이 결코 적은 건 아니지만, 말로서 별로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 대신 상상해볼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 등을 툭툭 던져 놓는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은이의 감정 변화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유아교육학과를 다닌(중퇴) 학력, 나미(안서현)에 대한 과도한 애정 표현, 그리고 해라(서우)의 임신한 배에 대한 반응, 그리고 화상 자국이 있는 은이의 다리 등에서 약간은 맹하고 수더분한 성격의 은이가 아이 문제에 대해선 왜 그토록 독하게 돌변했는지 나름 이해될 여지는 있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하녀>는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에 주력하는 듯 보이는데, 이는 영화에서 대부분의 사건이 벌어지는 훈(이정재)의 대저택이 주는 압도적인 이미지가 주는 영향 때문이다. 원작 <하녀>를 보진 못했지만, 원작에서의 저택은 거대한 부의 상징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원작이 상영되던 당시엔 하녀 내지는 가정부를 둔다는 것이 특권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능했던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2010년의 대한민국에서의 하녀는 어떤 의미인가? 최소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가정에서 하녀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직업이다. 하녀의 업무는 파트타임 파출부(비정규직)로 이전되었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 <하녀>를 현실을 반영하고 조롱하기 위한 일종의 무대 연출로 바라보는 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일종의 판타지.

 

하지만, 나에게 <하녀>는 뚜렷한 현실이다. 그다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짧은 인생 속에서 남들은 해보기 힘든 나만의 독특한 경험이 존재한다. 군을 제대한 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어떤 놀이공원의 야간 경비를 지원했는데, 사정이 생기면서 도심지의 거대한 저택으로 보내졌고, 알바가 아닌 각종 보험이 적용되는 정규 경비직원으로 6개월간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 최상위 특권 재벌가의 집이었고,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지금까지 언론 등에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그 저택은 주위에 사는 사람들조차 담벼락을 축대로 생각할 정도로 거대하다. 당시엔 보기 드물었던 CCTV가 집 외곽과 내부 요소요소를 담아내고 있었고, 거대한 정원이 3개, 거대한 저택이 3채, 미사일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은 거대한 지하 창고 등이 있었다. 집 내부엔 상당히 진귀하게 보이는 도자기들과 그림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었고, 마당엔 엄청난 고가의 외국 자동차들이 즐비했다. 가장 저렴한 차는 현대의 그랜저였는데, 그 그랜저는 하녀(!)가 장보러가는 용도로만 활용되었다. 그 저택은 낮에는 4명, 저녁엔 6명의 가스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근무를 했고, 마침 빈자리가 생겨 급하게 사람을 찾다가 엉뚱하게 그나마 군대를 제대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떨어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입법기관인 국회에서의 경험이다. 몇 년간 국회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가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국회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권위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중앙의 거대한 자동문은 의원님들만이 이용할 수 있고, 직원들은 양 옆의 조그만 회전문으로 입장해야 한다. 지금은 개선됐지만, 일반 국민들은 아예 지하 뒷문으로만 입장이 가능했던 시스템이었다. 엘리베이터도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의원 전용과 직원 및 민원인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로 구분되어 있었고, 의원회관은 의원 한 명이 사용하는 공간과 직원 6명이 사용하는 공간이 동일할 정도로 철저하게 의원 위주의 건물이었다. 런던의 영국 국회를 방문했을 때, 당시 보수당 당수가 혼자서 가방을 들고 택시를 타고 와서는 의원회관 건물에 일반 민원인과 똑같이 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갔던 모습은 나에겐 정말 놀랍고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하녀>의 여러 장면에서 바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등장한다. 사실 영화 속 거대한 저택은 내가 경험한 저택에 비하자면 오히려 왜소해 보인다. 그러나 하녀들만 별도로 출입하는 쪽문, 하녀들만 다니는 좁은 복도 등의 세밀한 설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하녀를 존중하듯 하면서도 내려다보는 그들의 태도까지도.(나미의 대사)

 

어쨌거나 임상수는 훈의 저택이라는 자신의 세계를 축조해 놓고는 서늘하고 냉소적인 유머로서 특권층과 당대의 현실을 씹어대고 조롱하고 비웃어댄다. 클래식과 와인을 즐기는 일상사, ‘웁스’라며 놀래는 과장된 표현들, 훈과 은이의 첫 정사장면에서 두 팔을 벌리며 만끽하는(?) 훈의 태도, 장모에게까지 ‘이보세요!’라며 자기들 내부에서의 역관계를 강조하는 장면들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다. 오프닝 장면에서도 그랬듯 훈의 대저택에서도 노동하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은 정확히 구분되어 있다. 은이가 욕조를 닦는 장면과 훈과 해라가 와인을 마시며 즐기는 장면을 정확히 이등분하듯 한 장면에 배치해 놓은 건 대단히 인상적이다. 쾌락을 즐기기 위해선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훈의 대저택과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신자유주의 세계의 축소판이다.

 

그렇다면 <하녀>의 결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원작이 주인에 대한 하녀의 실제적 복수를 그렸다면, 2010년 하녀는 실제적 복수 대신 그저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 대신한다. 은이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나미에게 보여주는 것이 훈과 해라에 대한 가장 끔찍한 복수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는 임상수가 실제적 복수의 현실 불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병식(윤여정)과 은이를 대체한 다른 하녀들 속에 화려한 생일파티를 여는 훈, 해라, 나미의 기괴한 모습은 특권층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극단으로 이해된다.

 

※ 예전에 자주 불렀던 노래 중에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조금 개사한 <늙은 노동자의 노래>라는 게 있었다. 병식이란 캐릭터를 보며 이 노래가 떠올랐다. 병식은 오랫동안 체제에 적응해 온 하녀로 일종의 계급적 배반자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은이를 집안에 들여 복수를 수행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병식(늙은 노동자)은 체제의 유지와 변혁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 김용철 변호사 저 <삼성을 생각한다>에 보면 삼성가라는 대한민국 최고 특권가의 일상이 일부 소개된다.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와인이라든가 양복 이야기는 일반적인 명품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어, 왠지 딴 나라 얘기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김용철 변호사에 의하면 수천만원 한다는 양복은 쉽게 쭈글쭈글해져 한 번 이상 입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양복을 입는 사람들은 대신 노동을 해주는 사람들(하녀!)을 항시적으로 필요로 한다.

 

※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된다. 특히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 서려 있는 시니컬함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어떤 경우엔 거의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임상수 감독의 영화와 인터뷰 등을 보자면, 타인의 비판으로 임 감독이 자신의 세계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행이도(?) 나는 임상수의 세계에 호의적이다.

 

 


(총 2명 참여)
kwakjunim
나름 괜찮을거 같아요   
2010-05-28 11:11
freebook2902
잘 읽었습니다.   
2010-05-26 10:27
ekduds92
기대되는 작품이다.   
2010-05-25 22:59
skysee331
재밌을 것 같은 영화~   
2010-05-24 18:01
boksh2
감사   
2010-05-24 17:40
1


하녀(2010, Housem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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